시인의 시 250

이규리 시인의 대표 시 모음 (10편)

레고나라에서 우리/이규리 ​ ​ 식상하게 이유를 길게 말 할 필요가 없어요 대신 레고 블록을 주세요 ​ 레고나라에도 이합집산이 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일찍 철이 드는지 빨강과 파랑을 달리 끼워도 살짝 돌아보고 웃음 지을 뿐이에요 앞바퀴와 뒤 바퀴를 바꾸면 조금 투덜거리지만 이내 굴러 가고 있으니까요 ​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바꾸어 사용하더라도 이유를 모르지는 마세요 이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늦지는 마세요 ​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야 하니까요 ​ 블록과 블록, 새와 구름 화면과 화면을 터치 터치 상상을 끼우고 빼고 조립하며서 ​ 어느 별은 태어나고 어느 별은 추락해도 끄떡없어요 ​ 이별도 다시 끼우면 되니까요 빨강은 다 타버린단 말이야 파랑을 줘 그런 동안 ​ 꿈이 ..

시인의 시 2023.05.04

『원숭이의 원숭이』-김륭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김륭 시집 해설:문학평론가 조강석 지옥과 음악이 한 풀무에서 나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슬픔과 냉소가 서로를 부양한다. 슬픔은 거리의 소멸이고 냉소는 거리로 섭생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시집은 배덕자의 독백이라기보다 독신자(瀆神者)의 냉소적 저항으로, 그리고 이를 환원하여 독신자의 방어적 사랑으로 읽는 게 옳다. 세계가 주관 안에서 모두 소화되지 않고 언제나 잔여물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부분)

시인의 시 2021.06.15

김륭 시 읽기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1) 시집 해설-김문주 (시인, 문학평론가) “김륭의 시는 말의 길, 길에 이르는 徑路가 아닌 다양한 해찰의 방식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 그것은 매우 자주 말을 넘나드는 유희의 방식으로, 때때로 말의 길과 무관해보이는 엉뚱한 문장들로, 그리고 결합할 수 없는 언어의 배합과 무심해 보이는 표현들로서 나타나지만, 여전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닿을 수 없음, 그 未達과 缺落을 형상한다. 하여 김륭의 시는 정서적 자질로는 넘치도록 서정적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서는 실험적인 것처럼 보인다”, 시를 사는 자를 시인이라고 한다면, 김륭은 그야말로 시인이다. 그는 시에서, 비로소 생각하고 말하는 자이다. 때로 ‘운다’고 말하기도 한다. “중심을 잃은 내가 나를 걸어보는 이야기” 라고 자신의..

시인의 시 2021.06.15

이관묵 시 3편

어떤 낭인(浪人)을 위하여 (외 2편)/이관묵 버즘나무는 근처에 버스 정류장을 데리고 삽니다 이발소도 키웁니다 무허가 복덕방도 심었습니다 이제 보니 버즘나무의 둥근 둘레와 높이가 훌쩍 자란 것이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노래 속에 넣어 둔 노래 절반은 가슴이고 절반은 등뿐인 서로 윤곽이 다른 걱정 입구와 출구가 바뀐 이별 사람 끝에서 캔 사람 버즘나무는 저 혼자 버즘나무가 된 게 아니었습니다 버즘나무 아래서 세계는 자애롭고 버즘나무가 버즘나무로 충분해질 무렵, 나는 무애(無碍)와 환절(換節)과 연(緣)이라는 말들이 멀리 내다보이는 곳에서 한 철을 노숙했습니다 반지하 갓 여남은 살이나 되었을까 사내아이가 반지하 단간 방 찬 바닥에 새우처럼 구부리고 잠을 잔다, 며칠 전 병원으로 실려 간 할머니의 잠을 둘둘 말아..

시인의 시 2021.04.21

이서화 시 모음(9편)

서 있는 것은 무겁지 않다/이서화 모든 것들은 서 있는 무게와 누워 있는 무게가 다르다 서 있는 무게들의 흔들리는 힘은 누우면 감당의 힘이 된다 서 있는 철근은 건물을 지탱하는 힘 자잘한 흔들림을 견디는 힘 그렇다면 세상의 집은 그 철근의 힘에 기대고 있는지 혹은 감당하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지구에 서 있는 나무들의 무게를 잴 수 없지만 벌목된 나무들을 실어 나르는 트럭을 재면 세상의 이동하는 무게들을 잴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서서 걸어 다니면서 자신의 무게를 소진하고 간다 그런 한 사람이 죽고 몇 명의 장정들이 들어야 하는 저 무게는 사람이 사람을 버린 무게 그 어떤 미련도 없는 무게다 흔들림이란 지탱하려는 중심이다 서 있을 때 가족을 끌고 가지만 누우면 가족의 처지에 끌려가는 무게 흔들면, 흔..

시인의 시 2021.04.21

최승자, 여섯 편의 시

박진성추천 0조회 27121.02.08 17:22댓글 0 북마크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개 같은 가을이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최승자, 시집 『이 時代의 사랑』(1981) 중. __________ 20년 후에..

시인의 시 2021.03.28

이문재의 시 다섯 편

박진성추천 0조회 29021.02.01 03:29댓글 0 북마크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농담 –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____________ 오래된 기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시인의 시 2021.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