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모음 67

[중앙 시조 백일장-8월 수상작]

마스크로 얼굴 가린 지금은 ‘눈빛의 시대’ 장원 눈빛의 시대/정병삼(한경대 미디어문예창작과 졸업. 현재 평택시청 근무). 온전한 얼굴은 이곳에선 금물입니다 지금은 눈빛의 시대 서로를 살피세요 불신이 팽배하군요 입을 가리세요 떠다니는 소리를 붙잡지 마세요 입술은 총알이 되어 우리를 겨눠요 미소가 궁금하군요 식사 한 끼 할까요 표정을 벗는다는 건 여전히 낯설어요 마음을 세우세요 눈을 크게 뜨세요 숨긴 속 보이지 않아도 자꾸자꾸 보여요 차상 고속도로를 달리다/김재건 돌아서 갈 수 없는 생각을 부려놓고 우린 늘 앞차의 꽁무니를 보며 달리지 평원의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누 떼처럼 둥그런 쟁반 안에 달궈진 제한 속도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액셀을 밟으면 충동은 시린 결말을 명치끝에 가져오지 상처 입은 짐승이 맹수 ..

시조 모음 2022.08.29

가람 이병기 추모 전국시조 현상공모

제2회 장원작 공단의 봄 / 김병환 꽃가루가 눈처럼 날면 강물도 되돌아와 어둠 속 붙박혔던 헤머 스패너 공구들도 철조망 벽을 허물며 나요나요 손 흔든다. 눈 못뜨는 황사바람 끝은 아직 보이지 않고 스크럼 짜 달려가는 기름 띠 역류 앞에 피 흘린 장미 한 송이 군화발에 짓밟힌다. 기계 톱날에 맞물려 삐걱대는 노동의 시간 불야성 환한 공단 그 진실의 대역사로 철탑에 치솟는 불기둥 하늘 밟혀 놓는다. 미명의 선잠을 털며 젖어오는 아침 햇살 폐혈증 앓는 가로수 푸릇푸릇 살아난다. 신발끈 고쳐 메며는 눈빛 주는 질갱이 제3회 장원작 옹 이 / 심 석 정 (장원作) 네게도 가 닿아야할 그리움이 있는 게다 밤마다 덧난 상처 그 파동 극점을 향해 끝내는 건너가야할 그리움이 있는 게다 찔려온 눈엣가시 가슴팎이 더 아파 ..

시조 모음 2022.08.18

2022 제 26회 <울산시조>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T-600*/전 영 숙(울산 중구 신기11길) 골목길 알전구가 달무린 양 흐릿한 밤 버거운 등짐 지고 걸어오신 아버지 뒷굽이 닳아서인지 신발조차 헐겁다 박물관 한 귀퉁이 칠 벗겨진 세 발 짐차 한때는 띠띠빵빵 웃음 가득 실었겠다 오르막 치고 오르며 헐떡이는 엔진소리 요철을 더듬느라 은지팡이 앞세우고 급커버 꺾어 돌다 위태위태 멈춰섰나 녹슬고 찍힌 흔적들 훈장 같은 모델명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삼륜차

시조 모음 2022.08.18

중앙시조백일장 7월 수상작

장원〉 여름밤 조성연 뜰안채 우방 화성 금류 한일 아파트호 고층 선실 불을 켜는 크루즈 출항 준비 거리의 상가 선박도 집어등을 밝힌다 열대야 강을 건너 열섬으로 잡은 항로 삶은 흘러 삼면 바다 뱃길 저어 돌아오듯 시원한 닻을 내리는 내일 아침 향해 간다 강아지풀 꼬리 젓는 저물녘 강변에서 하늘 길 등대로 뜬 달을 보고 흔들 때 바람은 상류 쪽으로 등을 밀고 있는 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조성연 조성연 경북 김천 거주. 담우미술학원 원장. 10여 년 시조 습작. 2017년 청풍명월·이은방시조백일장 장원 〈차상〉 무화과꽃 여인 전미숙 꽃 지는 소리에도 명치끝이 아렸다 골목이 깊을수록 묻어둔 속내는 구겨서 접어둔 종이처럼 꽃물이 쉬이 배었다 버석대는 마른 가지 바람이 일 때마다 ..

시조 모음 2022.07.31

[중앙 시조 백일장-6월 수상작]

수박 고르는 과정, 상상적 변용 돋보여 장원 수박을 썰다 한명희 몇 번을 두드린다 네 문을 열기 전에 손가락 움켜쥐고 가만히 귀 기울여 쓰라린 햇살을 찢는 바람 든 숱한 날들 붉은 살에 까만 사리 콕콕 박힐 때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속으로 울었을까 그 소리 발효된 자리 통통통 꽃 핀 공명 문 열어도 좋다는 맑고 고운 호흡들 한 입 가득 붉은 말이 달디 달게 스민다 내 안의 울음을 품고 수박을 쪼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한명희 한명희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재학 중. 2021년 한국방송통신대 문연학술문학상 수상. 차상 붓 김영희 한 획을 잘못 그어 얼룩진 화선지에 새 붓을 바꿔들고 마음잡고 앉았지만 비껴난 작은 획 하나 얼룩으로 남았다 지나온 걸음마다 궤적이 그려..

시조 모음 2022.07.04

[중앙 시조 백일장-5월 수상작]

노랑무늬영원, 빗자루별…예사롭지 않은 시어들 모란이 왔다 권규미 그이는 곡비였다 늘 환생을 소원했다 시나브로 발이 젖는 해사한 그믐으로 잔잔히 면벽을 두른 노랑무늬영원, 처럼 찢어버릴 시간과 꿰매야 할 시간들을 아득한 전생부터 알고 있는 바람처럼 한 촉의 심장을 지핀 델포이 무녀였다 척애를 새기듯이 획을 치는 빗자루별 허공이 제 몸 그어 밝혀 든 生이듯이 다복솔 어둠이 외려 생생한 부표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권규미 권규미 2013년 월간 유심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ㆍ경주문인협회 회원 탱자향 첫사랑 김은희 숨었던 수줍음이 볼연지 같던 시절 울타리 사이사이 수놓던 노란 향기 수틀에 흰 박동소리 가시처럼 박혀있네 나이테를 깎는 남자 오가을 말라버린 나이테는 둥그러진 사연 하나..

시조 모음 2022.07.04

2022 제12회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대상

피 혹은 꽃 피는 속도/김수형 1. 레미콘이 뒤뚱거리며 언덕길을 오른다 만삭의 배를 돌리며 조금만, 조금만 더! 두 손을 움켜쥘 때마다 떨어지는 링거의 수액 피와 살이 섞이고 심장마저 꿈툴대는 안과 밖을 둘러싼 호흡들이 숨 가쁘다 뜨겁게 쏟아지는 양수 꼴나무에도 피가 돈다 2. 직진하려다 본능적으로 핸들을 우로 돌렸지 운전석 백미러를 툭 치며 달리던 트럭 수천의 새 떼 날아와 등골에서 깃을 털던 3. 백미터를 3초에 달려 톰슨가젤 목을 물고 거친 술 몰아쉬는 치타의 퀭한 눈동자 죽음과 마주하는 건 늘 한 호흡의 속력이다 ―시선집『제12회 천강문학상 수상작품집』(경남, 2022) 2022년 5월 28일 오후 6시 15분 조치원鳥致院 김수형 새 꿈을 꾸고 나면 깃털들이 흩어진다 피가 잘 안 통하는 구름은 하..

시조 모음 2022.06.04

[중앙 시조 백일장-4월 수상작]

장원 벚꽃 퇴고(推敲)/김정애 원고지 빈 여백을 겨우내 궁글리던 청사로 왕벚나무 초장을 쓰고 있다 음이 다 소거된 폭죽으로 후끈 달뜬 몸짓으로 배란 앞둔 여인네 주체 못할 격정 같은 연분홍 도화살이 만개한 4월 근처 모질게 끓고 밝혔다 사그라들 중장 무렵 절정을 안다는 건 허무를 담보하는 것 슬픔 또는 기쁨은 모두 한때 꽃일 뿐 해마다 첫 경험 앓듯 종장을 진술한다 김정애 제주시조시인협회 회원. 2017년 제주일보지상백일장 차하. 2019년 8월, 2021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차상 소금 창고/김현장 짜고도 비릿하게 빛나는 바다의 맨몸 살아온 생채기 보며 하얗게 죽어갔을까 비워낸 그 자리마다 붉디붉은 갯내음 누룩의 꽃처럼 핀 염전 보며 알았다 그리움의 끝단도 여며야 한다는 걸 망막의 실핏줄 속에 ..

시조 모음 2022.05.12

유종인 시조 읽기

[이달의 시인] 유종인 신작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한 파반느 / 월척 / 안경을 바라보며 자선시: 마음 / 답청(踏靑) [시인론] 정수자 "답청 혹은 독필을 위한 파반느" 신작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시인을 위한 파반느 백발의 저 노인은 백 년 전도 백발 같아 앞서 가 뒤돌아보니 자작나무 풍채인 게 거뭇한 옹이 마디에 웅숭깊은 눈을 떴네 공중의 어느 좌표에 화장실을 세워놓고 새들은 꼭 그 자리서 뒷일을 보는갑다 흰 새똥 뒤집어쓴 바위가 천년 가는 혼수(婚需)같네 잎새가 죽은 난과 새 촉이 돋는 난(蘭)은 한 바람에 다른 결로 햇빛 속을 갈마들며 터 잡은 고요의 심지에 수결(手決)하듯 꽃을 버네 남녘의 섬 한 귀퉁이 나를 번질 터가 있어 독필(禿筆)의 그 날까지 번민을 받자 하니 툇마루 볕 바른 ..

시조 모음 2022.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