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으로 뛰어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재주는 개발하기 나름이다. 천재가 탁월한 재능를 타고났다고 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천재들은 재주에 앞서 일상인보다 더 노력한 사람들이고 고독한 사람들이고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재는 만들어진다. 영국 속담에 천재는 일종의 정신병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말이 암시하는 것은 천재는 일상인과 다르게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이런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는 자기의 능력을 특별한 렌즈로 초점에 맞추는 자이고, 재주를 낭비하지 않고 언제나 집중하는 자이고 남들이 볼 때 다소 이상한 자이다.
사실 상상력이란 일종의 정신병, 곧 표준적 사유에서 이탈하고 이성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들을 수용하고 종합하는 이상한 정신능력이다. 이런 능력도 일상적 시각에서 보면 이상하고., 이런 정신 세계를 탐구하는 자들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독하다. 상상력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점더 자세히 살피겠지만 말이 나온 김에 다음과 같은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어딘가
소리 있는 곳으로 귀 기울리는
예쁘디 예쁜
열린 창이여
꽃이슬에 젖은
새벽길 위에 서서
그 많은 소녀들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을까
단 한 번인 목숨
누구를 위하여도 죽을 수 없는
그 자라가는 소녀들의
열린 창이여
- 김춘수, <곤충의 눈> 전문
김춘수의 <곤충의 눈>이다. 필자가 고교 시절 애송하던 시 가운데 하나인데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대상은 '곤충의 눈'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이상하게도, 말하자면 일상인들과는 다르게 '열린 창'에 비유한다. 시인은 '곤충의 눈'을 보면서 '열린 창'을 상상하고, 2연에서 이런 상상은 '새벽길 위의 소녀들'로 발전하고 마침내 3연에 오면 '곤충의 눈'은 '자라고 있는 소녀들의 창'이 되고, 이때'창'은 물론 '눈'을 암시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는 것은 이런 상상력이 사물에 대한 고독한 관찰과 자신의 삶에 대한 지속적 성찰을 매개로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시의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쓰기를 좋아하고 꾸준히 시쓰기에 노력하고 언제나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독한 자가 있을 뿐이다. 물론 시쓰기에는 어느 정도 시에 대한 재능, 재주도 요구된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상상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노력과 훈련이다. 우리 시의 경우 이상, 서정주, 박목월, 김춘수가 그렇다.
따라서 재주라는 말보다 경향, 혹은 취향, 재미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사실 시는, 모든 예술은 고독한 놀이이고, 시인은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 자이다. 축구 선수는 축구가 좋아서 볼을 차고 과학자는 실험이 좋아서 밤 늦도록 실험실에 실험을 한다. 그러므로 재주보다 시인은 혹은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시쓰기에 취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를 느껴야 하고, 취향이 그래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기호나 취미가 다른다. 시인은 시에 취미가 있는 자이고, 이 취미를 단순한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마침내 창조의 세계로 지향하는 자이다. 창조란 무에서 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보고 이 사물들을 남들과 다르게 연결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적 재능의 문제는 왜 시를 쓰는가, 써야 하는가, 라는 시쓰기의 이유나 동기의 문제로 발전한다. 왜냐하면 그 많은 시간을 시쓰기에 소비하는 것은 그렇게 할 만한 무슨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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