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관련글

[스크랩] 제2강] 1.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 이승훈

시치 2007. 2. 26. 02:33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 우산을 들고 나온다.  하늘을 보는 것은 감각적 만남이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런 만남을 토대로, 매개로, 기초로 하는 관념, 사유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와의 만남이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시인이 자신의 관념을 직접 전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관념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1. 세계에는 관념이 아니라 사물이 있다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많은 인간들과 만나고 사물들과 만나는 일이다. 하루의 삶이 그렇고 1년의 삶이 그렇다. 만나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만남은 헤어짐을 동반하고 따라서 우리의 삶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는 그런 과정이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나는 먼저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이 흐리면 오늘은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집으로 들어가 우산을 들고 나온다. 하늘을 보는 것은 감각적인 만남이고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은 이런 만남을 토대로, 매개로, 기초로 하는 관념, 생각, 사유이다. 따라서 우리이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와의 감각적 만남이지 추상적 관념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만남, 곧 세계와의 만남을, 감각적 만남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하늘이 흐린 것보다 오늘 할 일, 지난 밤의 악몽, 오늘 만나야 할 사람들, 그들을 만나 무슨 말을 하고 하루를 어떻게 마칠 것인가 하는 계획으로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유야 많겠지만 결국은 사는 게 그만치 힘들기 때문이고 우리가 만나는 세계가 새로운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 같은 하늘 같은 골목, 같은 거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세계와의 감각적인  만남이 중요하고, 이런 1차적인 경험이 중요하고, 이런 싱싱한 만남이 중요하다. 세계에 대한 무슨 생각은 그런 점에서 2차적 경험에 지나지 않고, 이 2차적 경험이 죽은 경험이라면 1차적 경험은 산 경험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2차적 경험이고 세계와의 관념적 만남이다. 1차적 경험이 구체적이고 개별적이고 감각적이라면 2차적 경험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이고 관념적이다. 말하자면 나의 몸, 나의 감각, 나의 실존이 제외된 삶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미없고 지루하고 멀미가 나는 삶이다. 이 지루함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이 지루함, 권태, 피로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나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루하기 때문에 존재하고, 이 지루함을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여행을 하고 시를 쓰고 시를 읽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이런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고 해방되기 위해서이고 좀더 자유롭고 싱싱한 삶을 살기 위해서이다.  결국 시쓰기는 우리가 상실한, 망각한, 놓쳐 버린 이 1차적 경험의 세계와 만나는 일, 말하자면 이 세계와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만나는 일이다. 요컨대 시는 세계와의 추상적 만남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살아있는 감각적인 만남을 노리고 그런 만남의 세계를 보여 준다. 이런 만남이 중요한 것은 첫째로 이 세계에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들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로 우리의 삶이 1차적 경험, 곧 사물들과의 구체적 감각적인 만남을 상실하고, 따라서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쓰기에는 관념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감각이 중요하다. 이미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계속)

출처 : 안개섬
글쓴이 : 안개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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