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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손

1기회장 무우와 맘맞는 도반 성조와 한자리에 모였다. 오랜만에 병원에서 탈출한 나를 위한 일종의 위안행사의 성격이다 대한민국 어느 산인들 좋지 않은곳 있으랴 만 전망이 아주좋아 속이 확 틔인다 여름 한 철을 감옥소같은 병원에서 보내고 나왔으니 느낌이 각별하다 고맙고 고마운 마음 그지없다 동읍 아파트 단지 뒤로 보이는 정병산의 위용이 우뚝하니 백옥같은 구름을 내뿜고있다. 백월산 주변을 산행중 부처손 군락지를 발견하였다. 보고 그냥 올수는 없는지라 군데군데 손을 내밀어 몇송이 솎아왔다. 그런데 낭패다. 무우도 성조도 몇송이씩 뽑아왔는데 죄다 내게 주면서 퇴원기념이라나 뭐라나 ㅋㅋ 양이 상당하다 집에와서 화분이란 화분은 다 끌어다 심어놓고보니 이렇게나 많다 물을 흠뻑 주고 한 밤을 자고났더니 이렇게 활짝 날개..

흙냄새 땀냄새 2023.09.12

꽃놀이패 / 권수진

꽃놀이패 / 권수진 . . 너에게 승부를 거는 동안 늘 우아한 자태를 뽐내려고 노력했지만 당신 앞에 추악한 내 모습을 들킨 적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범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꽃잎 띄운 술잔을 정중히 건넸으나 당신은 한 번도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낸 적 없었다 . 당신을 만나 당신의 터전 위에 뿌리내리고 집을 짓고 사는 동안 웃는 날보다 싸운 날들이 더 많았다 . 길 위에서 낭창대는 삶을 살았으니 그동안 당신 마음 어디에 두고 있었는지 감히 안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 긴 세월 돌아보면 모든 게 일장춘몽이었으니 더는 사랑이라 부르지도 않겠다 . 고립무원의 꽃 진 자리는 항상 내 몫인지라 간밤에 우수수 떨어진 바둑돌 낭자하고 패를 뒤집듯 밤새도록 이불을 뒤척인다 . 하루를 천년같이 고뇌하며 살았으나 대마가 ..

必死 筆寫 2023.09.01

날개, 리모델링

어깨를 다쳤다 창원 파티마병원에서 당장 수술을 종용하였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날짜 잡히는대로 보훈병원으로 왔다. 날짜를 보니 5월10일, 그러니까입원한지 달포가 지났다. 일주간의 예비단계를 거쳐 수술을 하고보니 상당한 시일을 두고 기다려야 하는 대수술임을 알겠다. 필사적인 생의 원천인 날개를 다쳤으니 그럴법도 하련만 애초 생각했던 수련의 범위를 넘기는 장기간의 고행이 필요한 지경이다 널따란 주차장엔 삼삼오오 산책하는 무리들이 붐비고 있다. 그들의 틈새를 걷다가 보니 전장에 온듯 분주하고 경쟁적이다 ㅇ완전무장을 한 역전의 용사는 적을 향해 내닫는다 전열을 정비하고 죽기살기로 내달리는 저 기상을 따라 덩달아 막무가내로 내달리다 보니 아이 숨차다. 고개를 들고 시선을 바꾸자 저기 저 위에 높다란 산책길에 누군가..

흙냄새 땀냄새 2023.06.12

고성 운흥사

느닷없이 다가온 운흥사를, 태워다 주는대로 들어가 안아볼까 보제루 일곱칸 보옥이 위세를 드날린다 불사리를 모신 3층 석탑, 2005년 초파일 준공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고산스님의 위엄이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안내하신 이달균 회장께 부탁하노니 고산 큰스님의 원력으로 조성하셨다는 연화도 불국정토로 부처님을 뵈러 갑시다. 매년 3월3일(음)에 치러지는 영산재를 앞두고 축제 준비에 분주한 대웅전 참배도 생략하고, 스님과의 인사도... 국가 지정 보물이 있고 경남 도 지정 문화재도, 어딜 가나 부처님 품안이라 둥둥둥! 날렵한 범종루에 날개를 얹어본다 다시 봐도 보제루 기둥은 크기만 하다. 그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이 장독과 견주어 볼만 하다

흙냄새 땀냄새 2023.05.09

깨부수기/임지은

남편은 벽을 바라봤다 벽 속에 뭐가 있나요? 벽 속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남편은 저녁도 먹지 않고 주말 영화를 시청하듯 벽을 바라봤다 여보, 오늘은 월요일이잖아요 그는 이제 벽 속에서 내일을 보고 있다고 했다 잠도 자지 않고 벽을 바라보던 남편은 벽에 기대었다 그의 입술이 살짝 벽에 닿았다 대체 무슨 맛이죠? 그는 벽 안쪽의 깊은 고독이 느껴진다고 햇다 깜빡 잠이 든 내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을 때 남편이 벽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흐름이 조금 밀리고 그는 벽의 일부가 되었다 뺨일 거라고 만진 곳은 엉덩이고 진심이라고 만진 부분은 주로 거짓인 벽 나는 벽 안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었다 망치를 들고 와 깨부수기 시작했다 벽이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튀어나온 못..

必死 筆寫 2023.05.08

새와 의자/송찬호

그 의자가 만들어지기 전 나무였을 때 가지에 날아와 앉던 어떤 새를 의자는 기억하고 있다 ​ 새벽을 깨우며 지저귀던 깃털에 찬 이슬이 묻어있던 꽁지 짧은 어떤 새를 잊지 않고 있다 의자라는 직업을 갖기 전 의자라는 형벌의 정물로 만들어지기 전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21년 가을호 ------------------ 송찬호 / 1959년 충북 보은 출생.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10년 동안의 빈 의자』『붉은 눈, 동백』『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분홍 나막신』 등

必死 筆寫 2023.05.08

버드나무와 오리/남현지

여름을 좋아합니다 야구를 좋아합니다 아마도 늙어가고 있습니다 집 앞 개천을 따라서 바람이 두드리는 이파리들은 자신을 반복하며 가볍게 흩날리고 그것이 오락은 아니지만 물에서 오리를 반복해보는 일 오리의 웃음을 기다리면서 늙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놓쳐버린 순간의 현기증처럼 햇빛 아래를 구부리며 그 빛을 내버려두듯이 다리를 건너면 약국과 시장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월간 《現代文學》 2021년 12월호 ------------------- 남현지 / 1977년 출생.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21년《창작과비평》신인상 당선.

必死 筆寫 202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