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유홍준시모음(2)

시치 2006. 9. 7. 01:53

喪家에 모인 구두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 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가 구두를

짓밟는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건 亡者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내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뒤집는 구두들

밤 깊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 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자루 이야기

 

아버지,어머니자루를끌고다녔지,너덜너덜옆구리터진어머니자루,아버지패대기치던어머니자루,줄줄눈물이새던어머니자루,길바닥에주저앉아터진옆구리를움켜쥐던어머니자루,어린내가바짓가랭이를잡고매달리자놔둬라,놔둬라머리카락을쓸던어머니자루,입술에피가나던어머니자루,누탱이가퍼렇던어머니자루,고구마로만배를채우던어머니자루,몰래들어내던참깨자루나를꼭끌어안고죽어버리자던자루,넝마같이덕지덕지덧댄자루,장터에서못본척외면한자루,꾸깃꾸깃자궁에서돈을꺼내던자루,자루에서태어난나는자루를까마득히잊고사는자루,자루가무언지도모르는,자루를놓은자루

 

 

흉터 속의 새

 

새의 부리만 한

흉터가 내 허벅지에 있다 열다섯 살 저녁때

새가 날아와서 갖혔다

 

꺼내줄까 새야

꺼내줄까 새야

 

혼자가 되면

나는 흉터를 긁는다

허벅지에 갇힌 새가, 꿈틀거린다

 

 

세탁소

 

人皮를 빽빽이 걸어놓은 세탁소

 

이건 네 거죽이고

저건 네 마누라 거죽이야 얇디얇은

비닐커버로 둘러씌워진 거죽마다 명찰을 달아놓은 세탁소

 

다리미질에 지친 사내 계단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데

똥 누는 폼으로 쪼그리고 앉아

사타구니 볼록하니 튀어나온 불알 두 쪽,

 

누가 너무 올라붙는 옷은 입지 말라고 했지?

 

창문 열려진

세탁소에 온 동네 거죽들이 흔들린다

805호 여자 806호 남자 허리를 휘감고 있다

 

내복처럼

살갗에 너무 올라붙은 사람은

왜 입지 말라고 했지?

 

담배불에 지져진 구멍 때우려

나, 허름한 내 거죽 들고 세탁소 간다

 

 

아직 더 먼 길을

 

얼어죽은 여자를 본다

 

붉은 입과

다 감지 못한 눈동자에 허연 얼음이 박혀 있다

 

그녀의 입에서

자욱한 안개가 흘러 나온다

 

오직 맨발만이

아직 더 먼길을 가겠다는 듯이

댓잎처럼 새파랗게 살아있다

 

 

펌퍼

 

열다섯 살,

식어빠진 수제비를 퍼먹었다

 

봄날이었다

한낮이었다

빈집이었다

 

한 바가지 물을 목울대에 퍼 담고 펌퍼를 자아댔다 우리 집 펌퍼는 왜 이리 자꾸 물이 빠지는 거냐 어머니 푸념이 떠 올랐다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어서어서 고장 나 버려라 이깟 생, 갓 수음을 배운 나는 거칠게 거칠게 펌퍼를 자아댔다

 

살점을 모두 뜯어 수제비 끓여놓고

집 나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봄밤이었다

 

달빛이었다

 

헛짓이었다

 

펌퍼 탓이었다

 

 

가족사진

아버지 내게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운다 이놈의 새끼 화분을 내리면 죽을 줄 알아라 두 눈을 부라린다 내 머리위의 화분에 어머니 조루를 들고 물을 뿌린다 나는 챙이 커다란 화분모자 벗을 수 없는, 벗겨지지 않는 화분모자를 쓴다 바람앞에 턱끈을 매는 모자처럼 화분속의 뿌리가 내 얼굴을 옭아맨다 나는 푸른 화분모자를 쓰고 결혼을 한다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넝쿨을 뚝 뚝 분지른다 넝쿨을 잘라 새 화분에다 심는다 새 화분을 아내의 머리 위에 씌운다 두 아이의 머리 위에도 덮어 씌운다 우리는 화분을 쓰고 사진관에 간다 자 웃어요 화분들, 찰칵 사진사가 셔터를 누른다

 

 

출처: 유홍준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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