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복효근시모음

시치 2006. 9. 15. 19:27
 

복숭아 뼈의 단상

                 -복효근

복숭아를 먹다보면

필연코 단단한 씨를 만난다

그것은 말하자면

복사꽃의 끝

단맛으로 깊어가던 복숭아의 끝

끝나버린 복숭아씨, 그것은

또 꽃피울 복숭아의 머언 먼 시작이려니

귀 기울이면

그 속에 비가 내리고 새가 울리라

나에게도

복숭아 뼈라 부르는 씨 하나가 있어

살아버린 나는 무엇인가의 맛 나는 과육이 되어야겠다.

언젠가

내 과육을 다 먹은 시간이 그 끝에 만나고야 말 그 씨는

나의 시작인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들으면 들리리라 비 내리는 소리

내 안에서 우는 새소리

꽃 피는 소리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지점

내게도 복숭아씨가 있다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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