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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뼈의 단상 -복효근 복숭아를 먹다보면 필연코 단단한 씨를 만난다 그것은 말하자면 복사꽃의 끝 단맛으로 깊어가던 복숭아의 끝 끝나버린 복숭아씨, 그것은 또 꽃피울 복숭아의 머언 먼 시작이려니 귀 기울이면 그 속에 비가 내리고 새가 울리라 나에게도 복숭아 뼈라 부르는 씨 하나가 있어 살아버린 나는 무엇인가의 맛 나는 과육이 되어야겠다. 언젠가 내 과육을 다 먹은 시간이 그 끝에 만나고야 말 그 씨는 나의 시작인지도 모르는 일이어서 들으면 들리리라 비 내리는 소리 내 안에서 우는 새소리 꽃 피는 소리 끝이 시작으로 이어지는 지점 내게도 복숭아씨가 있다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