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시

이면우시모음

시치 2006. 9. 6. 00:55

거미

오솔길 가운데 낯선 거미줄

아침 이슬 반짝하니 거기 있음 알겠다

허리굽혀 갔다, 되짚어오다 고추잠자리

망에걸려 파닥이는걸 보았다

작은 삶 하나, 거미줄로 숲 전체를 흔들고 있다

함께 흔들리며 거미는 자신의 때를 엿보고 있다

순간 땀 식은 등 아프다.

 

그래, 내가 열아홉이라면 저 투명한 날개를

망에서 떼어내 바람 속으로 되돌릴 수 있겠지

적어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라면 짐짓

몸 전체로 망을 밀고 가도 좋을게다

그러나 나는 지금 마흔아홉

홀로 망을 짜던 거미의 마음을 엿볼 나이

지금 흔들리는 건 가을 거미의 외로움임을 안다

캄캄한 뱃속, 들끓는 열망을 바로 지금, 부신 햇살 속에

저토록 살아 꿈틀대는 걸로 바꿔 놓고자

밤을 지새운 거미, 필사의 그물짜기를 나는 안다

이제 곧 겨울이 잇대 올것이다.

 

이윽고 파닥거림 뜸해지고

그 쯤에서 거미는 궁리를 마쳤던가

슬슬 잠자리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허리굽혀, 거미줄 아래 오솔길 따라

채 해결 안된 사람의 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더지

비 갠 아침 밭두둑 올려붙이는 바로 그 앞에

두더지 저도 팟팟팟 밭고랑 세우며 땅 속을 간다

꼭 꼬마 트랙터가 땅 속 마을을 질주하는 듯하다

야, 이게 약이 된다는데 하며 삽날 치켜들다 금방 내렸다

앞뒤발 팔랑개비처럼 놀려 제 앞길 뚫어나가는 열정에

문득 유꽤해졌던거다 그리고 언젠가 깜깜한데서 내 손 툭 치며

요놈의 두더지 가만 못있어 하던 아내 말이 귓전을 치고와

앞산 울리도록 한번 웃어젖혔다.

 

 

매미들

사람들이 울지 않으니까

분하고 억울해도 문 닫고 에어컨 켜 놓고 tv 보며

울어도 소리없이 우니까

 

요렇게 우는 거라고

목숨이 울때는 한데 모여

숨 끊어질락 말락 질펀히 울어젖히는 거라고

 

옛날 옛적 초상집 마당처럼 가로등 환한 벚나무에 매달려

여름치 일력 한꺼번에 찌익, 찍 찢어내듯 매미들 울었다

낮 밤 새벽 가리잖고 틈만 나면

 

 

술병 빗돌

그 주정뱅이 간경화로 죽었다 살아 다 마셔버렸으니 남은건 고만고만한 아이 셋, 시립 공동묘지 비탈에 끌어묻고 돌아 나오는데 코 훌쩍이 여섯살 사내애가 붉은 무덤 발치에 소주 병을 묻는다 그것도 거꾸로 세워 묻는다

 

그거 왜 묻느냐니까 울어 퉁퉁 분 누나들 사이에서

뽀송한 눈으로 빤히 올려다 보며 말했다

나중에 안 잊어버릴라구요

 

 

아무도 울지않는 밤은 없다

깊은 밤 남자 우는 소리를 들었다 현관, 복도, 계단에 서서 에이 울음소리 아니잖아 그렇게 가다서다 놀이터까지 갔다 거기, 한 사내 모래바닥에 머리 쳐박고 엄니, 엄니, 가로등 없는데서 제 속에 성냥불 켜대듯 깜박깜박 운다 한참 묵묵히 섰다 돌아와 뒤척대다 잠들었다.

 

아침 상머리 아이도 엄마도 웬 울음소리냐는거다 말 꺼낸 나마저 문득 그게 그럼 꿈이었나 했다 그러나 손 내밀까 말까 망설이며 끝내 깍지 못 푼 팔뚝에 오소소 돋던 소름 안 지워져 아침 길에 슬쩍 보니 바로 그기, 한 사내 머리로 땅을 뚫고 나가려던 흔적, 동그마니 패었다.

 

 

입동

무우속에 도마질 소리 꽉 들어찼다

배추꼬랑이 된장국 안에 달큰해졌다

어둔 부엌에서 어머니, 가마솥 뚜껑 열고 밥 푸신다

김이 어머니 몸 뭉게구름 둘렀다 우리는

올망졸망 둘러앉아 한 대접씩 차례를 기다린다

숫가락 한번 들었다 놓고 젖가락 줄 맞추고

크고 둥그런 상에서 가만히 기다린다

근데 오늘은 왜 이리 더디냐

 

현관문 찰칵 열리며 찬바람 휘이익 들어오고

다녀왔습니다 외치며 아이가 따라 들어선다 그때

주방 김 말끔히 걷히자 거기, 아내가 구부정이 서서

등 보이며 압력솥 뚜껑을 열고 있다.

 

 자료 출처:이면우시집 "아무도 울지않는 밤은 없다" 창작과 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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