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진이정
흐르는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꽃이라고 별이라고 그대라고 명명해도 좋을까요 그대가 흘러갑니다 꽃이 흘러갑니다 흘러흘러 별이 떠내려갑니다 모두가 그대의 향기 질질 흘리며 흘러갑니다 그대는 날 어디론가 막다른 곳까지 몰고 가는 듯합니다 난 그대 안에서 그대로 불타오릅니다 그대에 파묻혀 나는, 그대가 타오르기에 불붙어 버렸습니다 지금 흘러가는 <이때>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의 허락도 없이 잎이라고 눈이라고 당신이라고 명명해봅니다 당신에 흠뻑 젖은 내가 어찌 온전하겠습니까 아아 당신은 나라는 이름의 불쏘시개로 인해 더욱 세차게 불타오릅니다 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꽃 별 그대 잎 눈 풀씨 허나 그러나 나도 세간 사람들처럼 당신을 시간이라 불러봅니다. 꽃이 별이 아니 시간이 흐릅니다 나도 저만치 휩싸여 어디론가 떠내려갑니다 아아 무량겁 후에 단지 한줄기 미소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그대와 나의 시간, 난 찰나를 저축해 영겁을 모은 적이 없건만 이 어이된 일입니까 미소여 미소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솜털 연기 나비라고 명명해봅니다 엉터리 작명가라 욕하지 마셔요 당신이 흐르기에 나는 이름 지을 따름입니다 흐르는 당신 속에서 난 이름 짓는 재주밖엔 없습니다 때문에 난 이름의 노예, 아직도 난 이름의 거죽을 핥고 사는 한 마리 하루살이에 지날지 모릅니다 아아 당신은 흐릅니다 난 대책 없이 당신에게로 퐁 뛰어듭니다 당신은 흐름, 난 이름, 당신은 움직임 아주아주 미세한 움직임, 나는 고여 있음 아주아주 미련한 고여 있음, 멀고먼 장강의 흐름 속에서 무수히 반짝이는 <나>의 파도들이여 거품 같은 이름도 흐르고 흐를지면 언젠간 당신에게로 다가갈 좋은 날 있을 것인가요 그런가요 움직임이시여 어머니 움직임이시여 고여 있는 <나>의 슬픈 반짝임, 받아주소서 받아주소서
어느 해거름/진이정
멍한,
저녁 무렵
문득
나는 여섯 살의 저녁이다
어눌한
해거름이다
정작,
여섯 살 적에도
이토록
여섯 살이진 않았다
---------------------------------------------------------------------------------------------------------------------------------------------
울적한 주말이다.
요절시인 진이경의 시를 읽는다. 이토록 하고싶은 말들을 마저 하고 갔으니 아쉽지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가을이 다가 오는가 하더니 가을이 가는 듯하여 안절부절 초조하게 시간을 쫓아 헤매이는 기분이다.
2024년 이라는 새해가 밝았다고 새해 인사를 하고 다짐을 하고 이 해에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듯 마음을 다잡아도
보았지만 역시 금년 농사도 허사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한 달 밖에 남지않은 2024년의 각오와 바램이 스러질대로 스러져 그저 그렇게 무사하기 만을 바란다면 이 무슨 삶의 행적이란 말인가?
요즘 부쩍 요절시인의 시에 관심이 가는 건 그들이 남긴 시의 족적이 워낙 뚜렷한 점도 있지만 이미 그들의 시적 성취이자 인생의 성취에서 정점을 찍었기 때문은 아닌지?
그렇다면 나의 이 못 이룬 꿈이, 인생의 못 이룬 성취로 해서 아직껏 기회의 시기를 늦춰주는 건 아닌지?
나름의 당위를 찾자는 것이기도 하리라. 옹색한 노년의 변명이라도 이 쯤 되면 내년을 기약할 명분일 수도 있음을...
'좋은시 다시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차도하 시 읽기 (0) | 2024.11.18 |
---|---|
차라리 풀이 되어버리자/차창룡(동명) (0) | 2022.04.15 |
함기석의 「서해에 와서」 해설 / 반경환 (0) | 2022.03.28 |
빨래 걷는 여인들⸻하동송림/이 경 (0) | 2022.01.27 |
타령조(3)/김춘수 (0) | 2017.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