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다시보기

차라리 풀이 되어버리자/차창룡(동명)

시치 2022. 4. 15. 23:44

 

어쩌면 삶은 견디는 것이다.

윤회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는 한

삶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기조 시인의 풀과 함께라는 시를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평생 풀을 매시던 어머니가 무릎수술 후 말씀하셨다.

풀처럼 살아라

내가 이기지 못한 것은 저 풀밖에 없다

어머니는 풀 외에는 모든 것을 다 이겼다는 뜻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어머니는 다 견딜 수 있었을 뿐이다.

남편의 건강도 아들의 가난도 당신의 고달픔도.

다만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마당이며 밭이며 논이며 길바닥에 풀이 무성해지는 것,

그래서 어머니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풀이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보다도 강한 어머니가 이기지 못했다는

풀처럼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기름진 땅에서는 물론이고

바위에 조금만 틈이 있어도 깃들어 살고

자갈밭 사이에서도 모래밭 사이에서도 살아내고

보도블록에 때처럼 낀 흙 속에도 뿌리를 내리면서,

그렇게 살다 보면 꽃필 날도 오겠지만,

꽃필 날을 기다려서가 아니라

쉬 멈추지 않을 윤회의 굴레를 견뎌내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어머니의 호미를 견뎌낸

풀이 되는 것도 괜찮으리.

그래, 밟혀도 일어나고

뽑혀도 다시 뿌리내리고

짓이겨져도 다시 싹을 틔우자.

윤회의 수레바퀴가 멈추지 않는 한

삶은 계속될 것이고,

삶이 계속되는 한

열반의 희망도 계속될 것이니

구름이 죽어도 죽지 않듯이*

풀처럼 끝까지 견뎌 보는 것이다.

⸺⸺⸺⸺

* 틱낫한 스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화두 중에 “구름은 죽지 않는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