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다시보기

함기석의 「서해에 와서」 해설 / 반경환

시치 2022. 3. 28. 08:00

 

 

 

서해에 와서/함기석

 

 

1

방파제에 기린이 서 있다

 

무얼 바라보는 걸까

누굴 생각하는 걸까

 

날마다 목이 길어지는 키다리 등대 아저씨

 

2

바다에 심장이 둥둥 떠 있다

 

누가 던진 걸까

누구 몸에서 떨어진 흰 살점 나비들일까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예쁜 국화꽃들

 

3

바닷속에서 계속 총소리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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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울음소리 같고 비명소리 같은 찬 물소리

 

        ⸻시집 음시』 2022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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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전 인류의 스승으로서 꿈과 희망이 가장 큰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유교사상을 창출해냈던 공자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고이상국가를 창출해냈던 플라톤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다전지전능한 신과 맞서서 인간의 삶을 옹호했던 호머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고영어와 영국인의 영광은 물론전인류의 대서사시를 창출해냈던 셰익스피어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다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철폐했던 만델라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이상국가를 창출해냈던 이광요 수상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사람이었다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은 가장 크고 힘이 센 “키다리 등대 아저씨와도 같은 사람이며그는 그 어떤 사납고 험한 파도에도 두 눈 하나 끄덕하지 않는 백절불굴의 용기를 지녔다고 할 수가 있다.

   날이면 날마다 목이 길어지는 키다리 등대 아저씨는 기린이 되고기린은 전인류의 이상적인 모델이 된다기린은 꿈과 희망으로 날이면 날마다 목이 길어지고 키가 큰다키다리 등대 아저씨는 남북통일의 꿈을 가져다가 주고한국어의 아름다움으로 고귀하고 위대한 시인의 꿈을 가져다가 준다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그들의 사랑이 더욱더 무르익어 달콤해지도록 가르쳐주고이 세상의 소년과 소녀들에게는 넓고 넓은 바다로 나아가 더 넓고 아름다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가르쳐 준다.

 

   심장은 가슴 왼쪽에 있고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기관으로 1분에 60회에서 100회 정도의 수축으로 온몸에 혈액을 공급해 준다심장은 2개의 심방과 2개의 심실로 이루어져 있고이 사이에 판막이 있어 피가 역류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순환계통의 중추기관이라고 할 수가 있다.

   함기석 시인은 서해 바다에 심장이 둥둥 떠 있다고 말하고그것은 “누가 던진 걸까라고 묻는다그러나 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생략한 채, “누구의 몸에서 떨어진 흰 살점 나비들일까라고 물으면서도이번에는 또다시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예쁜 국화꽃들이라고 말한다함기석 시인은 아마도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수장된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며그 세월호 사건의 어린 영혼들을 추모하고자 이 시를 썼는지도 모른다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은 예쁜 국화꽃이 되고예쁜 국화꽃들은 어린 영혼들의 심장처럼 둥둥 떠 있다가너무나도 가엾고 나약한 흰 살점 나비들처럼 떨어져 나간다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이 예쁜 국화꽃이 되고예쁜 국화꽃들은 어린 영혼들의 심장이 되고어린 영혼들의 심장은 흰 살점 나비들이 된다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예쁜 국화꽃들바다에 둥둥 떠 있는 심장들너무나도 가엾고 나약한 흰 살점 나비들이 일련의 이미지들은 함기석 시인이 자유연상의 대가이자 상징의 대가라는 것을 말해준다기호는 사물을 지시하지만상징은 인간의 의식을 지시한다.

   시는 삶에의 의지의 가장 아름다운 수단이다예술은 쓸모없는 것도 아니고무관심하게아무런 목적도 없이 순수하게 즐길 대상도 아니다아름다움은 끊임없이 세월호의 어린 영혼들을 미화하고 찬양하며이 세상의 삶의 의지를 북돋아준다.

 

   바다는 삶의 바다이고바다에서는 끊임없이 총소리가 울려퍼진다아들이 부모에게 패륜의 방아쇠를 당기고부모가 자식에게 비정의 방아쇠를 당긴다친구가 친구에게 배신의 방아쇠를 당기고이웃이 이웃에게 끊임없이 음모의 방아쇠를 당긴다.

   탕!

   삶은 파도이고파도는 울음소리이고울음소리는 비명소리이다함기석 시인은 [서해에 와서깨닫는다이 세상의 삶은 총격전이고모든 사건은 비극적이라는 것을……

 

  반경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