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

무비스님의 直指<121>■ 흥선유관- 분별심을 없애라, ■ 염관제안- 저승

시치 2011. 4. 16. 16:05

무비스님의 直指<121>■ 흥선유관- 분별심을 없애라, ■ 염관제안- 저승사자도 못 찾다|* 直指 연재(불교신문)
文殊法供養會 | 조회 59 |추천 0 |2010.12.29. 14:04 http://cafe.daum.net/yumhwasil/8ROv/124 

<121> 흥선유관 선사 - 분별심을 없애라

“금가루도 눈동자에 들어가면 병”

 
 
惟寬和尙 因白居易問 旣無分別 何以修心師云 心本無損傷 云何要修理 無論垢與淨 一切勿起念 又問 垢則不可念 淨無念可乎 師曰 如人眼睛上 一物不可住 金屑雖珍寶在眼亦爲病 又問 無修無念 又何異凡夫 師曰 凡夫無明 二乘執着 離此二病 是爲眞修 眞修者 不得勤 不得忘 勤則近執着 忘則落於無明此爲心要
 
  
유관 화상에게 백거이가 물었다. “이미 분별이 없다면 어떻게 마음을 닦습니까?” “마음은 본래 손상이 없거니 어떻게 닦을 필요가 있겠는가? 더럽고 깨끗한 것을 논하지 말고 일체에 생각을 일으키지 말라.”
 
또 물었다. “더러운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깨끗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까?” 유관 화상이 말씀하였다. “예컨대 사람의 눈동자에는 아무 것도 둘 수 없다. 금가루가 비록 진귀한 보물이지만 눈동자에 들어가면 또한 병이 되느니라.”
 
또 물었다. “수행도 없고 생각도 없으면 또한 범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범부는 밝음이 없고 성문과 연각은 집착하니 이 두 가지의 병을 떠나면 이것이 참다운 수행이니라. 참다운 수행이란 부지런해도 아니 되고 잊어버리고 있어도 아니 되나니 부지런하면 집착에 가까워지고 잊어버리고 있으면 무명에 떨어지느니라. 이것이 마음의 요긴한 점이니라.”
 
수행은 부지런해도 집착이 되고
 
잊어 버려도 무명에 떨어진다
 
해설 : 흥선유관(興善惟寬, 755~817) 선사는 중국 당나라 때 스님이다. 남악 선사 문하로서 13세에 출가하여 승숭(僧崇)스님에게 구족계를 받고 승여(僧如)스님에게 율을 배웠다. 마조도일 선사에게 참학하여 도를 이루었으며 원화(元和) 12년(817)에 입적하였다. 유관 선사에게 마음 닦는 일을 물은 백거이(白居易, 772~846) 라는 사람은 호를 낙천(樂天)이라 하는데 당 나라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불광여만 선사, 흥선유관 선사, 귀종지상 선사, 조과도림 선사 등 많은 선사들에게 참학하였다.
 
백거이가 마음 닦는 일을 물으니 마음은 본래로 손상된 바가 없기 때문에 닦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더러운 것과 청정한 것의 문제도 거론 하였다.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와 같다. 일반적인 불교 상식으로 더러운 것은 잊는다 하지만 청정한 것까지 잊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라는 의문에 대하여 명쾌한 비유를 들어서 깨우쳐주었다.
 
 
■ 염관제안 선사 - 저승사자도 못 찾다
 
 
鹽官和尙會下有一主事僧將死 鬼使來取 僧告云 某甲 身爲主事 未暇修行 乞容七日得不 鬼使曰 待爲白王 王若許之 則七日後來 不許則須臾便來言訖去 至七日後方來 覓其僧不得見[如云 牛頭見四祖後 百鳥含花覓不得 一般 /백운]
 
 
염관 화상 회하에 사중의 일을 맡은 어떤 주사승(主事僧)이 있었다. 그가 임종하려할 때 저승사자가 와서 데려가려고 하였다. 그 스님이 말하기를, “내가 사중의 일만 맡아서 하느라고 수행을 하지 못하였다. 7일간만 기다려 줄 수 있겠는가?”
 
저승사자가 말했다. “기다리시오. 저승의 왕에게 여쭈어보겠습니다. 왕이 만약 허락하신다면 7일 후에 다시 올 것이고 허락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곧 돌아오리라.” 그 말을 마치고 돌아가서 7일 후에 비로소 돌아왔다. 그 스님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예컨대 우두 선사가 4조 도신 선사를 친견한 뒤에는 온갖 새들이 꽃을 물고 선사를 찾았으나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와 같다.]
 
해설 : 염라대왕이나 저승사자가 사람을 잡아간다는 이야기는 경전에는 볼 수 없지만 중국이나 한국에는 가끔 있는 이야기다. 평소에 선한 일을 하지 않거나 수행자로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데는 매우 좋은 방편이 된다. 출가를 한 승려로서 승려의 본분인 수행은 하지 않고 사찰을 운영하는 주지나 원주 등의 소임을 맡아서 사찰을 관리하는 일만 하다가 세월이 흘러 죽음이 당도하게 되면 여기에 예로 든 이야기와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 다행히도 7일 동안 정진을 열심히 하여 저승사자가 다시 데리려 왔지만 그 사이 공부가 깊어져서 저승사자의 눈으로는 찾을 수 없는 경지가 되어서 끝내 끌려가지는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수행을 위해서 출가를 하였으나 출가인의 본분인 공부는 하지 않고 잡다한 일로 세월을 보낸다면 당연히 염라대왕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