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

무비스님의 直指<119〉■ 남양혜충 국사① - 타심통이 어디에 있는가?

시치 2011. 4. 16. 15:54

무비스님의 直指<119〉■ 남양혜충 국사① - 타심통이 어디에 있는가?|* 直指 연재(불교신문)
文殊法供養會 | 조회 60 |추천 0 |2010.12.23. 17:11 http://cafe.daum.net/yumhwasil/8ROv/122 

〈119〉남양혜충 국사 ① - 타심통이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자신은 어떤 경계가 아니다”

 

忠國師 因西天大耳三藏 到京云 我得他心通 肅宗帝 請國師試驗 師問 汝得他心通耶 曰不敢 師云 汝道老僧 卽今 在甚處 曰和尙 是一國之師 何得去西川 看競渡船 師良久 又問 汝道老僧 卽今 在甚處 曰和尙 是一國之師 何得向天津橋上 看弄師 第三問 三藏 罔知去處 師叱之云 這野狐精 他心通 在什處 三藏 無對

-如云 自處之際 不露心跡 諸天捧花無路 魔外 潛不見 乃至佛眼也不見 又世尊三昧를 迦葉不知 迦葉三昧 世尊不知 世尊三昧 世尊亦不知也

 

텅 비어 공적한 자리에 있을 뿐

삼세제불도 ‘그것’ 찾을 길 없어

 

남양혜충 국사가 인도의 대이 삼장이 중국의 수도에 와서 말하기를, “나는 타심통을 얻었노라”라고 함을 인하여 숙종황제가 혜충 국사를 청하여 시험하게 하였다. 혜충 국사가 물었다. “그대는 타심통을 얻었는가?” “예, 그렇습니다.” “그대는 말하라. 노승이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 “화상께서는 일국의 스승으로 어찌 서쪽 냇가에 가서 배 젓는 경기를 하는 것을 구경하십니까?” 혜충 국사가 잠깐 있다가 또 물었다. “그대는 말하라. 노승이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화상께서는 일국의 스승으로서 어찌 천진교 위에서 원숭이 장난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까?” 혜충 국사가 세 번째 물음에 삼장이 국사의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혜충 국사가 그를 꾸짖으며 말씀하였다. “이 여우 귀신이여, 타심통이 어디에 있는가?” 삼장이 대답이 없었다.

-예컨대 스스로에게 처해 있을 때는 마음의 자취가 드러나지 않으니 천신들이 꽃을 바치려 하여도 방법이 없으며 마군들과 외도가 몰래 엿보려 하여도 보지 못한다. 내지 부처의 눈으로도 또한 엿볼 수 없다. 또한 세존의 삼매를 가섭 존자가 알지 못하고 가섭 존자의 삼매를 세존이 알지 못하며 세존의 삼매를 세존이 또한 알지 못한다. /백운

해설 : 남양혜충(南陽惠忠) 국사와 대이삼장(大耳三藏)의 이 대화는 매우 유명하여 오랫동안 여러 선사들의 입에 회자되는 바다. 혜충 국사가 두 번까지는 자신의 마음을 경계에 두었다. 그래서 대이삼장이 그 마음의 자취를 알아볼 수 있었으나 세 번째는 그 마음을 자신에게 두었다. 그것을 자수용신삼매(自受用身三昧)라 한다. 진정한 자신은 어떤 경계가 아니다. 텅 비어 공적한 자리다. 이와 같이 텅 비어 공적한 자리에 안주하면 어느 누구도 찾을 길이 없다. 실은 공적한 자리에 안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적할 뿐이다. 설사 삼세제불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찾을 길이 없다. 석가 달마도 찾을 길이 없다. 다만 그 마음이 작용을 하고 있을 때는 그 작용의 자취를 알아 볼 수가 있다.

이것이 이 마음의 불가사의한 이치이다. 아무리 타심통(他心通)을 얻어 남의 마음을 훤하게 알아볼 수 있는 신통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수용신삼매에 안주해 버리면 공적하면서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靈知)의 경지라 이 경지는 이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이 서로 묵묵히 통할 뿐이다. 그래서 <직지>를 편찬한 백운 선사가 착어를 하기를, “부처의 눈으로도 또한 엿볼 수 없다. 또한 세존의 삼매를 가섭 존자가 알지 못하고 가섭 존자의 삼매를 세존이 알지 못하며 세존의 삼매를 세존이 또한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실로 부처와 부처도 서로 알지 못하는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의 경지다. 남의 생각하는 바를 추적하는 알량한 신통으로 어찌 무심의 경지를 짐작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