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전(茶神傳)
1.채다(採茶:찻잎을 따는 법) 차를 따는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너무 빨리 따면 맛이 온전하지 못하고, 너무 늦게 따면 다신(茶神)이 흩어진다. 곡우(穀雨) 닷새 전에 딴 것이 제일 좋고, 곡우 닷새 후에 딴 것이 다음이며, 다시 닷새 후면 그 다음이다. 차싹은 자색(紫色)을 띠는 것이 가장 좋고 잎에 주름이 있는 것이 다음이요, 잎이 말려 있 는 것이 그 다음이며, 빛깔이 가는 대나무 잎 같으면 가장 질이 낮은 것이다. 밤사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에 이슬을 머금은 것이 상품(上品)이고, 한낮에 딴 차가 그 다음이며, 비가 내릴 때에는 따지 말 아야 한다. 산골짜기에서 딴 것이 제일 좋고, 대나무 밭에서 딴 것이 다음이요, 자갈밭의 차가 그 다음 이며, 황사(黃砂) 가운데 딴 것이 하품(下品)이다.
차나무에서 딴 찻잎 중에 늙은 잎, 줄기, 부스러기 잎을 잘 골라내고 넓이 두 자 네 치쯤 되는 가마솥 에 차 한 근 반을 넣고 덖는데, 솥이 잘 달구어졌을 때를 기다려 찻잎을 넣어 급히 덖되 이때 불을 느 슨하게 때어서는 안 된다. 잘 덖어지면 솥에서 꺼내어 멍석이나 돗자리에 털어 부어서 가볍게 비벼 몇 번 턴 다음, 다시 솥에 넣고 천천히 불을 줄이면서 덖고 말리는데 정도가 있어야 한다. 그 가운데 말 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적당한 불 조절이 잘 이루어지면 차의 빛깔과 향기가 지극히 아름답 다. 보이지 않는 차의 신비는 끝이 없고 다신(茶神)과 맛은 오묘하기 이를 데 없다.
차의 묘(妙)는 처음 만들 때 정성을 들여야 하며, 저장할 때와 물을 끓일 때 법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다. 차의 품질이 좋고 나쁜 것은 가마솥에 넣을 때 시작되고, 차맛이 좋고 나쁜 것은 물과 불에 관계된 다. 덖을 때 불의 온도가 알맞으면 차의 향이 맑고, 솥이 타면 차의 싱그러움이 떨어진다. 불이 너무 맹 렬하면 겉만 타고, 연료를 약하게 때면 푸른빛을 잃고, 검은빛이 띤다. 법제대로 순리를 따르면 차맛이 좋고 이를 거스르면 나쁘게 된다. 흰 반점이 있는 것 도 괜찮고 타지 않은 것이 제일 좋다.
차를 만들어 처음 말릴 때는 먼저 오래 쓰던 차합(茶盒)에 넣어 종이로 입구를 막고 사흘이 지나 차의 본래 성분이 회복되기를 기다린다. 다시 약한 불로써 살짝 덖어 말린 다음, 잘 식은 뒤 담에 넣되 가볍 고 성글게 채워 넣고 죽순 껍질이나 종이로 병 입구를 몇 겹 밀봉한다. 불에 구운 벽돌을 식혀 그 위에 얹고 다육(茶育) 안에 저장하며 바람을 쏘이거나 불기 가까운 곳은 피해야 한다. 바람을 쏘이면 냉해 지기 쉽고 불기에 닿으면 누렇게 변한다.
차를 달이는 요령은 불을 가늠하는 것이 먼저 중요하다. 화로에 불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다관을 얹고 가볍게 부채질 하다가 물 끓는 소리가 들리면 한층 세게 부치는데 이것을 문무지후(文武之候)라고 한 다. 불 기운이 너무 약하면(文) 물이 유연한데, 물이 유연하면 다신(茶神)이 가라앉는다. 불 기운이 너 무 세면(武) 불이 극렬한데, 불이 극렬하면 물이 너무 끓어 노수(老水)가 되고 차가 눌리게 된다. 이는 모두 중화(中和)를 잃은 것으로 다인(茶人)이 취할 바가 아니다.
물 끓이는 데에는 세 가지로 크게 구별하는 방법과 열다섯 가지로 작게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 첫째는 물 끓는 모양으로 알아내는 방법, 둘째는 물이 끓는 소리로 알아내는 법, 셋째는 끓어오를 때 김으로 알아내는 방법이다. 물이 끓는 모양은 안쪽을 분별하고(內辨), 끓는 소리는 바깥쪽을 알아차리며, 물 이 끓어서 김이 나면 재빨리 알게 된다. 물이 끓으면 모양이 마치 게의 눈알 같고, 새우 눈 같고, 물고 기 눈 같으며, 구슬이 이어진 모양은 모두 맹탕(萌湯)이다. 끓는 물이 용솟음치고 파도처럼 솟고 북 치 듯 해서 물 기운이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 이것을 순숙(純熟)이라 한다. 물이 끓을 때 나는 첫소리, 구르 는 소리, 떨리는 소리, 소낙비 같은 소리는 모두 맹탕이다. 끓는 물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이것을 결숙 (結熟)이라 한다. 물이 끓을 때 김이 한 줄기, 두 줄기, 서너 줄기가 떠오르고 어지럽게 실타래처럼 끓 어오르는 것은 맹탕이다. 그러다가 바로 김이 솟구쳐 오르면 이것이 순숙(純熟)이다.
채군모(蔡君謨)는 끓는 물을 쓸 때 눈(嫩)은 마시고 노수(老水)는 쓰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 이유로 옛 사람들의 차 만드는 방법은 반드시 맷돌로 갈고 체로 거르므로 미세한 가루가 맛이 있다. 이를 법제해 서 용단(龍團)을 찍어 만들면 탕를 끓이게 될 때 다신(茶神)이 강하게 떠오른다. 여기에 완전히 익은 눈을 쓰고 노수를 쓰지 않는다 하였다. 요즈음 차를 만들 때 맷돌질이나 체질을 하지 않고 덩어리 차 를 쓰므로 끓인 물이 순숙이라야 차의 싱그러움이 생긴다. 그러므로 탕은 다섯 번 끓어야 차의 삼기 (三奇)가 우러나온다 고 하였다.
탕이 완전히 끓은 것을 알았으면 곧바로 내려서 먼저 다관에 조금 부어서 냉기를 가신 뒤에 찻잎을 넣 되, 알맞게 넣어 중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차의 분량이 너무 많으면 쓴 맛이 나고 향이 묻혀 버리며, 물이 많으면 색깔이 묽고 맛이 싱겁다. 다관을 사용한 후에는 다시 물로 씻어 깨끗이 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향이 줄어든다. 다관의 물이 너무 뜨거우면 차가 싱그럽지 못하고 다관이 맑으면 물 맛이 좋아진다. 차와 물이 잘 어우러진 뒤에 약간 식혀 마포에 걸러 마시되, 너무 일찍 거르지도 말고 너무 늦게 마셔도 안 된다. 빨리 거르면 차의 싱그러움이 나오지 않고 너무 늦게 마시면 오묘한 향기 가 사라진다.
차를 넣는 데도 차례가 있으니 적절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다관에 먼저 차를 넣고 그 다음에 끓인 물 을 붓는 것을 하투(下投)라 한다. 다관에 끓인 물을 반쯤 붓고 차를 넣은 뒤 다시 끓인 물을 가득히 붓 는 것을 중투(中投)라 하며, 먼저 끓인 물을 붓고 다음에 차를 넣는 것을 상투(上投)라 한다. 봄 가을에 는 중투, 여름은 상투, 겨울은 하투로 한다.
차를 마실 때에는 사람 수가 적을수록 고귀하게 여긴다. 차 마시는 사람이 많으면 소란스럽고 소란스 러우면 차를 마시는 고상한 취미가 사라진다. 혼자 앉아 마시면 신비롭고, 두 사람이 함께 마시면 고상 하고, 서넛이 마시면 그냥 취미가 되고, 오륙 인이 모여 마시면 그냥 평범하고, 칠팔 인 이상이 마시면 서로 찻잔을 주고받는 것일 따름이다.
차에는 진향(眞香), 난향(蘭香), 청향(淸香), 순향(純香)이 있다. 안과 밖이 똑같은 것을 순향이라 하 고, 설지도 않고 너무 익지도 않은 것은 청향이라 하며, 불 기운이 고르게 든 것을 난향이라 하고, 곡 우 전 차의 싱그러움이 충분한 것을 진향이라 한다. 또한 함향(含香), 누부향(漏浮香), 간향(間香)이 있 으나 모두 좋지 못한 향기다.
차는 맑고 푸르러야 가장 좋고, 무노리는 연한 쪽빛에 하얀 빛이 도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누런빛, 검정빛, 붉고 어두운 빛깔은 품질이 낮아서 좋은 차에 들지 못한다. 찻잔에 하얀 구름과 같은 무노리 가 떠오르는 것은 상품, 파르스름한 것이 중품, 누르스름한 것은 하품이다. 신선한 샘물에 활활 타는 숯불로 차를 달이면 능통한 기술자(玄工)요, 품질 좋은 차와 거품이 잘 난 무노리는 명주(名酒)에 못 지 않은 맛을 내는 절묘한 기예이다.
차의 맛은 달고 윤기 나는 것으로 으뜸을 삼고, 쓰고 먹기 거북한 것은 하등이다.
차는 스스로 참된 향기와 빛깔, 맛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다른 물질에 오염되면 차의 참맛을 잃 게 된다. 만일, 차 끓이는 물에 소금기가 함유되어 있거나, 차에 다른 물감이 따라 붙거나, 차 사발에 과즙 같은 것이 붙으면 모두 차의 참됨을 잃는다.
차를 갓 만들어 놓으면 그 빛이 푸르다. 그러나 차의 저장법을 잘 갖추지 못하면 색깔이 변한다. 첫 번 째 변색은 녹색이 되고, 두 번째는 황색이 되고, 세 번째는 흑색, 네 번째는 백색으로 변한다. 만일 변 질된 차를 달여 마시면 위(胃)가 냉해지는 증세가 생기고, 심하면 기운이 없고 적병(積病)이 생기게 된 다.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본체다. 좋은 물이 아니면 신이 나타나지 않고 좋은 차가 아니면 본체 를 엿볼 수 없다. 산마루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맑고 가벼우며, 지하 샘물은 맑으나 무거우며, 돌 사이 에서 나는 석간수는 맑고 달며, 자갈샘은 맑고 차갑다. 땅 밑 샘은 담백하고 황석(黃石)에서 흘러나오 는 물은 좋은 품질이지만, 청석(靑石)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쓰지 말아야 한다. 흘러내리는 물은 고여 있는 물보다 좋고, 음지에서 나오는 물은 양지에서 나오는 물보다 참된 물이다. 오염되지 않은 참된 샘 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아무 맛이 없고, 참된 물은 아무런 향기가 없다.
우물물은 차 달이는 데 적당하지 않다. 다경(茶經)에 이르기를, 산에서 나는 물이 으뜸이고 강물은 하 등이며 우물물은 최하품이라 하였다. 다만 도시 가까운 곳에 산이 없고 좋은 우물물마저 없다면 봄의 매실(梅實)이 익을 때 내리는 빗물을 써도 괜찮다. 그때 내린 빗물은 맛이 달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모 든 생물을 길러 주는 생명수이기도 하다. 눈이 녹은 물은 맑기는 하나 물의 성질이 너무 차가워 비위 (脾胃)에 찬 기운이 들어가므로 많이 마시면 해를 입는다.
물 받는 항아리는 반드시 정원의 그늘진 곳에 두고 비단으로 덮어 밤이슬을 맞게 하면 물의 신령함이 흩어지지 않고 신통한 기운이 항상 남아 있다. 하지만 가령 이것을 나무나 돌로 누르고 종이와 죽순 껍 질로 봉해 햇살을 쏘이면 곧 밖으로 물의 신기(神氣)가 사라지고 안으로 살아있는 기운이 막혀서 수신 (水神)이 사라진다. 차를 마심에 오직 귀한 것은 신선한 차와 신령스러운 물이니 차가 신선하지 못하 고 물이 신령함을 잃으면 개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상저옹(桑苧翁)은 차를 달이는데 물 끓이는 그릇으로 은 제품을 썼으나 너무 사치스럽다는 생각에 도 자기 그릇으로 바꿨는데 오래 쓸 수가 없어 다시 은 제품을 쓰게 되었다. 나의 못난 생각으로는 은 제 품은 부잣집에서 장만하고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은 주석으로 만든 그릇을 써도 차의 빛깔과 맛에는 손 색이 없다. 그러나 구리 제품과 쇠 제품은 쓰지 말아야 한다.
찻잔은 눈처럼 하얀색이 가장 좋고, 푸른 빛이 감도는 흰색은 차의 빛깔을 해치지 않으므로 그 다음이 다.
차를 마시는 전후에는 모두 고운 마포(麻布)를 사용해서 잔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 다른 종류의 천은 쉬이 더러워져서 사용할 수 없다.
차를 만들 때는 정성을 다하고, 차를 저장ㆍ보관할 때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하며, 물을 끓여 차를 달 일 때는 청결하여야 한다. 정성 들여 만드는 정(精), 차에 습기가 들지 않게 하는 조(燥), 차를 달여 마 실 때 청결히 하는 결(潔)로 다도(茶道)는 완성된다.
무자년(戊子年) 비오는 어느날, 스승을 따라서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갔다가 이 책자를 등초(謄抄) 하여 내려온 이후 다시 정서(正書)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으려고 하였지만 예기치 못한 신병(身病)으 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미승 수홍(修洪)이 때마침 시자실(侍者室)에 있었다. 그가 다도(茶道)를 배우고자 하여 다시 정초(正抄)에 손을 대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도 또한 몸이 편치 못하여 뜻을 이 루지 못하고 등초를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 때문에 좌선하는 틈틈이 짬을 내어 편치 못한 몸으로 힘 겹게 붓을 들어 이를 완성한 것이다. 옛책에 "시작이 있고 끝맺음이 있다" 함은 어찌 유학자들만의 일 이겠는가. 총림(叢林)에서도 조주(趙州)의 끽다선풍(喫茶禪風)이 있으나 모두가 다도(茶道)를 모르 고 있다. 이에 이를 초록하여 후학들에게 전하는 바이다. 경인(1830) 2월에 휴암병선(休庵病禪)은 눈 쌓인 창가에서 화로를 안고 삼가 이 글을 쓰다.
|
'고전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정약용과 다산초당 (0) | 2009.08.21 |
---|---|
[스크랩] 초의선사와 일지암 (0) | 2009.08.21 |
[스크랩] 다신전 (0) | 2009.08.21 |
[스크랩] 동다송(전문 해설) (0) | 2009.08.21 |
[스크랩] 동다송 (0) | 2009.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