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관련

[스크랩] 다신전

시치 2009. 8. 21. 00:51

 

  다신전(茶神傳)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차문화가 다소 쇠퇴했으나 사찰을 중심으로

  그 전통이 이어졌다. 19세기초에 이르러 다도(茶道)가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되는데,

  바로 초의선사(艸衣禪師 : 장의순 張意恂 1786-1866)가 전남 해남 대둔산에 일지암

  (一枝庵)을 세우고『다신전(茶神傳)』과 『동다(東茶頌)』을 지어 차를 재배하고

  만드는 방법 등 다도의 이론과 실제에 대해 크게 정리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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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의선사는 1828년(순조28년)에 한국 차의 근원지인 경남 하동군 지리산 칠불암

  (七佛庵) 아자방에 참선하는 여가에 중국 청나라의 모환문(毛煥文)이 엮은 백과사전

  겪인 『만보전서(萬寶全書)』 가운데 『다경채요(茶經採要)』에서 『다신전(茶神傳)』

  을 초록하고 시자인 수홍(修洪)의 청에 의해 1830년 일지암에서 이를 정서(正書)

  였다. 『다신전(茶神傳)』 원본은 가로 14cm 세로19cm의 작은 책으로 한지 8장

  기술되어 있다.(현재 태평양박물관에 소장).
     발문에는 처음 칠불암에서 등초(謄抄)한뒤 정서하기까지의 경위와 등초하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특히 많은 승려들 중에 조주차(趙州茶)를 알고자 하여도 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초하여서 보이고자 한다고 하였다. 
     초의선사는 『다신전(茶神傳)』의 마지막 부분에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

  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자년(戊子年) 비오는 어느날, 스승을 따라서 지리산 칠불암 아자방에 갔다가

  이 책자를 등초(謄抄)하여 내려온 이후 다시 정서(正書)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으

  려고 하였지만 예기치 못한 신병(身病)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사미승 수홍(修

  洪)이 때마침 시자실(侍者室)에 있었다. 그가 다도(茶道)를 배우고자 하여 다시 정

  초(正抄)에 손을 대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그도 또한 몸이 편치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등초를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 때문에 좌선하는 틈틈이 짬을 내어 편치 못

  한 몸으로 힘겹게 붓을 들어 이를 완성한 것이다. 옛책에 "시작이 있고 끝맺음이 있

  다" 함은 어찌 유학자들만의 일이겠는가. 총림(叢林)에서도 조주(趙州)의 끽다선풍

  (喫茶禪風)이 있으나 모두가 다도(茶道)를 모르고 있다. 이에 이를 초록하여 후학

  들에게 전하는 바이다. 경인(1830) 2월에 휴암병선(休庵病禪)은 눈 쌓인 창가에서

  화로를 안고 삼가 이 글을 쓰다.」

 

    『다신전(茶神傳)』의 내용은 차따기(採茶), 차만들기(造茶), 차의 식별(辨茶), 차

  의 보관(藏茶), 불을 다루는 일(火候), 끓는 물의 분별(湯辨), 탕용노눈(湯用老嫩),

  차끓이는 법(泡法), 차를 넣는 법(投茶), 차 마시는 법(飮茶), 차의 향기(香), 차의

  색(色), 차는 잡된 것이 섞이면 진을 잃는다(點梁失眞), 변질된 차는 쓰지 못한다

  (茶變不可用), 물의 품평(品泉), 우물물은 차에 적당하지 못하다(井水不宜茶), 물의

  보관(貯水), 차도구(茶具), 찻잔(茶盞), 찻잔 닦는 행주(拭盞布), 깨끗한 차(茶衛)등

  22항목으로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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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통의 향기를 찾아서
글쓴이 : 침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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