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시론

정진규의 시론(36) - 송찬호 시의 부정정신(2)

시치 2008. 8. 18. 01:26
정진규의 시론(36) - 송찬호 시의 부정정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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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러한 그의 부정정신의 맥락에서 행해지는 그의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시적 행위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궁극의 장소로 선택하고 있는 그 자유의 <감옥>과 함께 <구부리다>라는 동사와 <둥글다>라는 형용사를 자주 쓰고 있음이 그것이다.

a.
나무가 구조적인 척추동물임을 알았다
나무의 중심을 지워 없앤다
오, 놀라워라 나무가 둥글어진다

- [공중정원3]부분

b.
내 몸을 감는 수천 수만의 불의 고리들
어머니는 둥글다
어머니는 끊을 수 없다
-[ 어머니는 둥글다]부분

c.
고정된 자리에서 나무들은 운동을 한다
가지와 줄기를 뒤틀고 비틀어
비체계적으로 보이는 운동들, 지금도 여전히 스스로를 구부려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정치적 낭만주의자들
-[공중정원2]부분

앞의 시들을 찬찬히 읽어 보면 <구부리다>라는 동사는 결국 그의 궁극인 자유의 <감옥>을 묘사하는 동의어임을 알게 될 것이다.
실제 <구부리다>라는 동사가 나오고 있기도 하지만 (c의 <구부려>), a의 <척추동물>, <중심을 지워 없앤다>, c의 <운동>, <뒤틀고 비틀어> 등이 모두 <구부리다>라는 동사적 속성을 수용하고 있는 말들이며, 그 행위 뒤에 나타나는 세계들이 곧 <둥글다>의 그것이다(a의 둥글어진다, b의 둥글다, c�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둥글다>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세계로 절대화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화의 인식은 역시 일상적인 세계에 대한 그의 부정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우리는 삶을 진행적인 <기다란 형상>, 직선적인 것으로 이해, 수용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 당도해야 할 곳을 향해 걸어가는 <길>, 서로 다투어 달려가는 <마라톤>따위의 1차적인 상징 속에 삶을 관념적으로 가두어 왔다. 그러나 그는 그런 관념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문명이 그 동안 우리는 무엇인가를 향하여, 어떤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설득 또는 억압해 온 그 획일적이고 표피적인 <길들여짐>으로부터의 해방을 그는 아름답게 획책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한 해방의 세계, 절대적인 세계는 둥근 이미지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그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세계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모든 것의 세계이지 어느 하나로 한정된 세계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생명의 궁극으로 선택하고 잇는 그의 세계가 둥근 것으로 정의되고 있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의 그러한 총체적인 시각을 통해 우리도 함께 극복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둥글다>의 세계를 사물화할 경우 <태양>이나 <신>을 관행적으로 선택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의 일련의 시들에서 <달빛>에 크게 기대고 있는 점이다.


어두운 밤 아이가 잠을 깨어 운다 그 때다
구름 뒤에서 달이 불쑥 고개를 내밀 듯
어미의 옷깃을 헤치고 출렁 솟아오르는 뭉실한 젖통
아이가 달빛을 빤다
달빛이 온 세상에 환히 퍼져 흐른다
어두운 밤길을 가던 사내가 갑작스런 달빛에 찔려 비틀거린다
달빛, 달빛, 칼빛

(중략)

밤길을 걷는다 옆구리에서 새어 나오는 달빛을 움켜쥐고
휘청거리며 걸어간 그 옛길을
달빛이 무뎌질 때까지 달빛을 밟으며 오늘밤도 그 길을 간다
- [달빛 밟으며]부분

<아이가 달빛을 빤다>에서 보듯 <달빛>을 그는 생명의 근원으로 동일시하고 있다. 그가 어머니를 둥글다로 정의한 대목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여기서 발견한다.
달빛=어머니=생명의 등식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이는 우선 둥글다라는 형상적 이미지로 일체화되기도 하지만, 생명 배태의 실체인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와 달의 인력현상과의 어떤 관계를 우리는 여기서 암시받는다. 정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달의 운동현상과 여자의 달거리, 그 생리현상이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생명읜 근원 상징으로 말해지는 물, 바다의 밀물과 썰물의 현상이 달의 인력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는 점은 과학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달이 떠오르는 데 따라 밀물이 일어나고 그 달이 자오선을 지난 후 지게 되면 썰물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달이 지구의 반대편 자오선에 가까워짐에 따라 또 밀물이 일어난다는 것이 그것이다. 나의 지식으로는 충분한 예증을 들 수가 없지만 그의 시 도처에서 조용히, 또는 폭력적으로 잡입. 출몰하고 있는 달빛 상상력은 그의 궁극적 세계인 둥글다, 또는 생명의 근원에 근거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