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시론

정진규의 시론(34) - 천사들

시치 2008. 8. 18. 01:22
정진규의 시론(34) -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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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천사들이 끊임없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 전에 없이, 많은 오늘의 시인들이 쓰고 있는 시의 행간 속에서 나는 그들을 만나고 있다.
이 천사들은 우리네의 선녀들 그것과 오버랩되는 이미지, 그런 감성의 물결로 내 안에 흐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어린 아기들의 향내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발그란 입술로 소리내는 그들만의 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내게 있어 익숙한 기호가 아니다. 해독할 수 없는 리듬 그 자체이다. 꿰맨 흔적이 보이지 않는, 잘라 낸 가위질 자국도 보이지 않는 무봉의 원단이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하루 종일 만나고 있었다. 혹은 혼자서 먹이를 줍고 있는 한 천사를 인사동 음식점 골목길, 한 마리 비둘기의 빠알갛게 언 맨발에서 만나기도 했고, 술에 취해 잇몸을 그대로 다 드러낸 채 웃고 있는 함민복 시인의 웃음 사이에서 한참 동안 만나기도 했다. 어느 소녀가 하루 종일 혼자서 노는 소년과 같다고 말했다는 팔십 누구 구상 시인의 그 수염 사이에서도 얼핏 만나 보았으며, 신춘문예 당선 시인들의 어눌한 시의 그 행간에서도 만났다. 검게 썩어 얼어붙은 안양천에도 그들은 머물러 있었고, 수산시장 생선가게의 비린내 사이를 통과해 가고 있기도 했다.
더 분명한 그들의 모습은 요즈음 우리 집에 넘치고 있다. 우리 집 사람들은 요즈음 일상의 말이 내는 소리가 아닌 소리로 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한없이 놀라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한 천사가 우리 집에 당도해 있기 때문인데, 그는 생후 3개월의 아기이다. 우리 집안 사람들이 내는 그 소리는 아직 세상의 말을 모르는 아기와 교감하는 소리이다. 세상에 오염되지 않은 근원의 말, 그 첫 물줄기이다. <옹알이>다.
이 천사들에 대하여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를 폴란드어로 번역한 홀레비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비가의 천사는 기독교적인 천상의 천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중략).....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에로의 변용을 완수한 피조물>이라고 쓰고 있다.
폴 발레리는 그의 시 [비유들]에서 이 천사들을 만나는 순간의 기쁨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끝없이 오래가는
내 황혼의 거울 위에,
하나의 소름이 끼쳤으니;
묻는 형상 하나가 순수한 시간의 이마 위를
세계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장의 잎사귀처럼 굴리며 달렸고;
어떤 힘이, 하나의 소리처럼,
뜻하지 않은 손처럼,
느닷없이 내 심장을 붙잡았다.

나는 내 시에서 이 천사들을 다음과 같이 쓴 적이 있다.

한 덩이의 빵이 어떠한 날보다도 아주 잘 구워졌음을 실로 기뻐함이 평화다 사랑이다 한 마리의 가녀린 새가 어떠한 날보다도 아주 잘 날아가고 있음을, 하느님의 아침 햇살 속으로 기쁘게 날아가고 있음을 기뻐함이 평화다 사랑이다 평화와 사랑은 크지가 않다 천사다 .....(중략)...... 맨발로 건너오는 천사의 누더기가 꽃이 된다
-[천사1]부분,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문학세계사, 1990.

왜 나와 우리 시인들은 이렇게 천사들을 열심히 만나고 있는가에 대하여 성실한 질문을 해야 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발레리가 쓰고 있듯 그것을 알자면 비길 데 없는, 모습 없는 몸 안에, 자리도 없는 그런 상태에까지 당도한 괴로움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천사를 찾아 한없이 야위고 있는 우리 시인들에게 <먹기는 정신을 놀라게 하고 잠자기는 정신에 창피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