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시론

정진규의 시론(30) -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시치 2008. 8. 18. 01:14
정진규의 시론(30) -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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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바예호 시에 대한) 정현종의 시 번역은 투명하다.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대로 생동이다. <번뇌는 열반>이다. 파블로 네루다와 함께 오랫동안 초현실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를 지나 인간적인 단순성에 이르렀다는 페루의 시인 세사르 바예호는 우리의 감성에 직핍하는 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어인 까닭일까. 그의 시 한 편과 역시 정현종의 번역으로 되어 있는 바예호에 대한 네루다의 언급 한 대목을 그대로 다음에 옮긴다.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시구로 스스로를 매질하고 시대에 총총히 쫓기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어깨에 망토 대신 계란을 올려놓고 있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살아 있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죽어가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눈이 있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영혼을 갖고 있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내 동료는 나한테서 끝나고 바람의 소임이 내 뺨에서 시작되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내 두 눈물을 헤고 있으며 땅을 흐느껴 울고 또 지평선을 목매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울지 못하는 것 때문에 울고 내가 별로 웃지 못했음에 웃는가?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나는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가?
- 세사르 바예호,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작가세계}, 1991. 겨울.

<바예호는 보통 아주 진지했고, 아주 근엄했고, 대단한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아주 높은 이마를 갖고 있었고 체구는 작았으며, 경원한다고 할까 떨어져 있는 듯이 아주 서름서름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도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우리와 있을 때는 그랬는데 행복해서 펄쩍펄쩍 뛰는 걸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적어도 그의 두 가지 면을 알고 있다.>

<바예호에게 있어 그것은 미묘한 사고방식, 직접적이 아니고 간접적인 표현방식으로 드러난다. 나한테는 그게 없다. 나는 카스틸랴 시인이다. 칠레에서 우리는 인디언을 옹호하며 모든 남미 사람은 어느 정도 인디언 피를 갖고 있는데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나는 내 작품이 어느 모로도 인디언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파블로 네루다, [양과 솔방울], 로버트 블라이와의 대담,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사랑의 노래}, 민음사, 1990.

<뭐가 내 속에 들어왔길래>. 현상의 근원에 대한 반복적 질문이 지루하지 않고 리드미컬하다. 올 한 해를 이렇게 찡그리지 않고 리드미컬한 질문으로 보냈으면 한다. 사물과, 상황과, 우주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숙명이니까. 기쁨의 충동이 내재된 세사를 바예호의 아주 높은 이마, 그리고 인디언적인 피, 그처럼 진정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리고 뜨거운 피를 지닌 질문. 선도鮮度 있는 신선한, 그런 질문을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