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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쓰기와 읽기 / 이승훈

시치 2007. 2. 26. 02:27
   3. 쓰기와 읽기 / 이승훈

 

                시인이 되기 위해 혹은 시인으로서 우리가 할 일은 시를 쓰는 일뿐만 아니라 시를 읽는 일이고, 그것도 잘 읽는 일이다. 잘 읽는다는 것은 시를 시로서 읽어야 함을 의미한다. 시는 신문이나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신문을 읽을 때 관심을 두는 것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그리고 이런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이고 과학 교과서를 읽을 때 관심을 두는 것은 과학적 진리나 법칙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시를 읽으며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나 과학적 진리나 혹은 법칙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시쓰기에 대해 공부하면서 주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를 읽지 않고는 제대로 시를 쓰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지 않고, 마치 그것이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시인 지망샏들이 많은데 이것은 마치 축구 구경도 한 번 안 하고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덤비는 것과 같다. 훌륭한 시인들은 훌륭한 시인들이 시를 읽고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는다.  시를 읽지 않고는 결코 시를 쓸 수 없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선배 시인들의 시를 읽어야 하고,  그 시인들의 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으며 우리는 시 쓰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조언자이며 선생이며 나아가 예술의 신 혹은 시의 신인 뮤즈라고 할 수 있다.

                시가 시를 낳는다. 시가 없다면 시가 존재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시가 있는게 아니라 시와 시 사이가 있고, 차이가 있고, 상호관계가 있다. 프랑스 철학자 크리스테바 식으로 말한다면 시라는 텍스트가 있는 게 아니라 시라는 상호 텍스트가 있다. 인간도 그렇다. 우리는 자아나 주체를 강조하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인 나, 절대적인 자아, 절대적인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자아와 타자.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있을 뿐이다. 네가 없다면 내가 없고 타가자 없다면 자아가 없기 때문이다.인간이라는 낱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은 절대적 자아나 주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 사이, 차이를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누구의 영향을 받는 일은 좋은 일이다.  많은 시인들, 그리고 시인 지망생들이 대체로 '나는 누구의 영향도 받은 게 없소'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말하는 당사자는 그것이 자랑인것처럼 말하고, 자신이 무슨 천재나 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무책임한 말이 또 어디 있는가? 사는 것은 영향 받는 데서 시작되고 이 영향을 극복하는 일이고 다시 영향받고 영향을 극복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천상 천하에 자기 것은 없다. 특히 우리 문인들이 그렇거니와 아무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영향은 모방이 아니다. 시쓰기는 누구에게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영향 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극복이 문제이다.

출처 : 안개섬
글쓴이 : 안개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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