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모음

박재삼 시조모음

시치 2006. 10. 4. 21:43
박재삼 시조시집[내 사랑은] ▶<해설:김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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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10/03, 22:03:56
수정일: 2002/10/03, 22:06:29
작성자: 샘지기 (http://sijosam.com

*江물에서 외 13편*

                                            박 재 삼

무거운 짐을 부리듯
江물에 마음을 풀다.
오늘, 안타까이
바란 것도 아닌데
가만히 아지랑이가 솟아
아뜩하여지는가.

물오른 풀잎처럼
새삼 느끼는 보람,
물같은 그 세월을
아른아른 어찌 잊으랴,
하도한 햇살이 흘러
눈이 절로 감기는데.....

그날을 돌아보는
마음은 너그럽다.
반짝이는 江물이사
구름살도 아닌 것은,
눈물이 아로새기는
내 눈부신 자욱이여!


*구름결에*

어질고 기쁜 이의
눈망울을 흐르던 것이
구석진 설움에까지
천년토록 어리어
임 마음 내 마음이 시방
구슬 꿰어지누나.

사랑은 마지막을
언짢다 치부하고
戴天之怨讐는
같이 살아 용타마는
엄두도 안 갈 하늘에
높이 높이 뜬 구름.

마음이 허울 벗기어
아리아리 서러우면
살얼음 풀리는 밑에
흔들리는 기운을 보듯
그 온갖 狼藉턴 것이
얼비치어 오누나.

어린 예닐곱 살의
맑은 시냇물에
손발 담그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뒷덜미 가려운 곁에
하도 희게 느껴라.

평생 빠안한 죽음의
한자락에 이었기로,
땅 밟은 우리 목숨이
말짱히 눈물 가시고
머언 그 하늘 뒤안에
볕들 듯이 가리아.


*攝 理*

그냥 忍苦하여,
樹木이 지킨 이 자리와
嫩葉이 봄을 깔던
하늘마저 알고 보면
무언지 밝은 둘레로
눈물겨워도 오는가.

新綠 속에 감추인
恩惠로운 빛깔도
하량없는 그 숨결
아직은 모르는데
철없이 마음 설레어
微笑지어도 보는가.

어디메 물레바퀴가
멎는 餘韻처럼
걷잡을 수 없는 슬기
차라리 盞으로 넘쳐
憧憬은 原始로웁기
길이 임만 부르니라.


*떠나는 기러기*

떠날 臨時해서는
울먹이며 흐르더라,
기러기 날개 밑이
비어나는 정든 나라,
강물을 차마 질러서
갈 수 없는 마음이여.

지내보면 흥부동네
가난키야 했지만,
발톱에 묻은 흙이
바람에 떨어질까,
공중에 지는 그 눈물
繡실 뜸뜸 놓다가.

밀물로 산그늘이
밀려오는 해질녘을,
사람은 언제부터
돌에 恨을 새겼던가,
九萬里 끝없는 하늘
날개짓이 아롱져.


*蘆 雁*

그 많은 기러기 중에
서릿발 깃에 짙은
애비도 에미도
그 위에 누이도 없는
그러한 기러기놈이
길을 내는 하늘을!

하늘은 비었다 하면
비었을 뿐인 것을
발치에 가랑가랑
나뭇잎 묻혀 오는
설움도 넉넉하게만
맞이하여 아득하여.

사람이 지독하대도
저승 앞엔 죽어 오는
南쪽 갈대밭을
맞서며 깃이 지는
다같은 이 저 목숨이
살아 다만 고마워.

그리고 저녁서부터
달은 밝은 한밤을
등결 허전하니
그래도 아니 눈물에
누이사 하마 오것다 싶어
기울어지는 마음.


*내 사랑은*

한빛 黃土재 바라
종일 그대 기다리다,
타는 내 얼굴
여울 아래 가라앉는,
가야금 저무는 가락,
그도 떨고 있고나.

몸으로, 사내 장부가
몸으로 우는 밤은,
부연 들기름불이
지지지 지지지 앓고,
달빛도 사립을 빠진
시름 갈래 萬갈래.

여눌 바닥에는
잠 안 자는 조약돌을
날 새면 하나 건져
햇볕에 비쳐 주리라.
가다간 볼에도 대어
눈물 적셔 주리라.


*물 옆에 노는 아이*

물 옆에 노는 아이는
물빛 닮은 마음일레.
햇살도 잘 받고
바람 또한 잘 받고
종일을 지치지 않고
살에 차는 기쁨을.

풀잎에 이슬모양
손 끝에 물방울 달고
빛나는 하늘 속에
퍼지는 네 웃음이
멀찍이 꽃으로 서서
시름 잊게 하노나.


*酷暑日記*

잎 하나 까딱 않는
三十 몇度의 날씨 속
그늘에 앉았어도
소나기가 그리운데
막혔던 소식을 뚫듯
매미 울음 한창이다.

계곡에 발 담그고
한가로운 부채질로
성화같은 더위에
달래는 것이 전부다.
예닐곱 적 아이처럼
물장구를 못치네.

늙기엔 아직도 멀어
靑春이 萬里인데
이제 갈 길은
막상 얼마 안남고
그 바쁜 조바심 속에
絶壁만을 두드린다.


*不 在*

다 나가고 없는 뜰에
木蓮花가 피었네.

반쯤은 가지를 이승에
나머지는 저승에

골고루 사람이 없는 데 따라
고이 여는 꽃이여!


*無 心*

가다간 파초잎에
바람이 불어오고

덩달아 물방울이
찬란하게 튕기고

無心한 이 한때 위에
없는 듯한 세상을.


*飛龍瀑布韻*

하늘의 소리가 이제
땅의 소리로 화해도

雪嶽山 飛龍瀑布는
반은 아직 하늘의 것

어둘 녘 결국 밤하늘에
내맡기고 내려왔네.


*神仙바둑*

바둑 한 수에는
千年이 흘러 갔는데

그 다음 한 수에는
千年이 지나도 아직

판 위에 돌 떨어지는
소리가 아니 나네.


*東鶴寺 一夜*

눈녹은 물과 봄밤을
나란히 묻어버리면

저승 어디선가
낙숫물이 뚝뚝 지고

그대의 먼 입술가에
지금 天地가 무너진다.


*가을에*

가다간 밤송이 지는
소리가 한참을 남아
절로는 희뜩희뜩
눈이 가는 하늘은
그 물론 짧은 한낮을
좋이 淸明하더니라.

省墓 공손하니
엎드린 머리에도
하늘은 드리운 채로
諱日같이 서글프고
그리운 이름 부르기
겨워 이슬 맺히네.

세상이 있는 법은
가을 나무 같은 것
그 밑에 우리들은
과일이나 주워서
허전히 아아 넉넉히
어루만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