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에 관한 기억 외 9편*
유 재 영
작자 미상 옛 그림 다 자란 연잎 위를
기름종개 물고 나는 물총새를 보았다
인사동 좁은 골목이 먹물처럼 푸른 날
일곱 문 반짜리 내 유년이 잠겨 있는
그 여름 흰 똥 묻은 삐딱한 검정 말뚝
물총새 붉은 발목이 단풍처럼 고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녹이 슨 갈대밭에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길 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온 물총새
*그 여름의 명상*
섬진강 물소리가 평사리를 지날 때
소린 없고 빛만 남아 마른 들을 적시더라
은어도 하늘빛 닮아 반짝이는 이런 날
지리산 어린 바람 오던 길로 달아나고
비 개인 대숲으로 맑게 트인 산새 울음
초록빛 오, 저 사투리 화두처럼 듣는다
*햇살들이 놀러 와서*
아가위 열매 익자 가만 휘는 무게여
잎사귀 뒤에 숨은 고 열매 빛깔까지
벌레에 물린 가을이 가랑잎처럼 울었다
보랏빛 여운 두고 과꽃으로 지는 하루
오늘은 한종일 햇살들이 놀러 와서
마른 풀 남은 향기가 별빛처럼 따스했다
*이 순간*
덩굴손
긴 봄날이
흘림체로
쓰여지고
뻐꾸기
울음소리에
번져 가는
푸른 적막
못 이룬
지상의
꿈이
메꽃으로
지고 있다
*추억에서*
한 줄의 줄글처럼 누워 있는 해안선
경사진 생각들이 외등처럼 밝아지고
바람은 흘림체로 와 은종 하나 흔든다
(부분 인용)
*깨끗한 슬픔*
눈물도 아름다우면 눈물꽃이 되는가
깨끗한 슬픔 되어 다할 수만 있다면
오오랜 그대 별자리 가랑비로 젖고 싶다
새가 울고 바람 불고 꽃이 지는 일까지
그대 모습 다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가
깨끗한 슬픔 하나로 그대 긴 손 잡고 싶다
(인용은 첫째 수)
*그 해 가을 월정리*
적막한 무게 이고 서서 피는 들꽃이여
투명한 기척으로 낯선 별이 지고 있다
-길 숨긴 잡목림 너머 등불 켜는 작은 집
어느 마을 누군가 이별을 하고 있나
가을새 날개 소리 먹물처럼 번져 가는
대숲은 음력달 한 채 가슴 속에 묻었다
(인용은 첫째 중.종장과 둘째 수 초장)
*저 경이(驚異)*
-김상유 <화개(花開)>
봄은 며칠 동안 햇빛만을 키웠다
어깨 넓은 나무와 창 밝은 집도 한 채
하늘엔 연기 한 줄기 단음절로 떠 있고
털갈이 마악 끝낸 부리 연한 새 두 마리
불현 듯 피어난 저 경이(驚異)를 보고 있다
그 시간 형용사처럼 날아가는 나비 한 쌍!
*어린 바람 한나절*
-햇빛시간.2
종이배 등 떠미는 어린 바람 한나절
아직도 일곱 살 때 헤어진 물소리가......
삘기꽃 목마른 언덕 은빛 새가 와서 운다
덩굴손 머문 자리 연둣빛 자국 같은,
관절 긴 생각들이 그렇게 물이 들고
키 낮은 무덤 너머로 낮달 하나 떠 있다
(인용은 첫째 수)
*둑방길*
-햇빛시간.4
개오동
밑둥 적시는
여우비도
지났다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
빨강머리물총새가
느낌표로
물고 가는
피라미
은빛 비린내
문득 번진
둑방길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인용은 둘째 수)
⊙유재영 시조집[햇빛시간], 서울: 태학사, 2001 ; (해설▶ '유재영의 시조를 읽는 즐거움'-신경림) 인용 작품
▣해설
물빛 '그리움', 혹은 햇빛 '따사로움'의 길
이 지 엽
(해설 一部)
유재영 시인이 펼쳐 보이는 '물빛' - '그리움'과 '햇빛' - '따사로움'의 세계, 어둠과 등불과 슬픔의 이미지와 가볍고 투명한 것으로의 차오름을 그는 사랑하고 있다.........그의 시에서 느끼는 차분하면서도(물빛 이미지) 톡톡 튀는 신선함(햇빛 이미지)은 바로 이 두 세계의 자유스러운 넘나듦에서 연유한다 할 것이다.
-유재영 시조집[햇빛시간], 서울: 태학사, 2001
유 재 영
작자 미상 옛 그림 다 자란 연잎 위를
기름종개 물고 나는 물총새를 보았다
인사동 좁은 골목이 먹물처럼 푸른 날
일곱 문 반짜리 내 유년이 잠겨 있는
그 여름 흰 똥 묻은 삐딱한 검정 말뚝
물총새 붉은 발목이 단풍처럼 고왔다
텔레비전 화면 속 녹이 슨 갈대밭에
폐수를 배경으로 실루엣만 날아간다
길 없는 길을 떠돌다 되돌아온 물총새
*그 여름의 명상*
섬진강 물소리가 평사리를 지날 때
소린 없고 빛만 남아 마른 들을 적시더라
은어도 하늘빛 닮아 반짝이는 이런 날
지리산 어린 바람 오던 길로 달아나고
비 개인 대숲으로 맑게 트인 산새 울음
초록빛 오, 저 사투리 화두처럼 듣는다
*햇살들이 놀러 와서*
아가위 열매 익자 가만 휘는 무게여
잎사귀 뒤에 숨은 고 열매 빛깔까지
벌레에 물린 가을이 가랑잎처럼 울었다
보랏빛 여운 두고 과꽃으로 지는 하루
오늘은 한종일 햇살들이 놀러 와서
마른 풀 남은 향기가 별빛처럼 따스했다
*이 순간*
덩굴손
긴 봄날이
흘림체로
쓰여지고
뻐꾸기
울음소리에
번져 가는
푸른 적막
못 이룬
지상의
꿈이
메꽃으로
지고 있다
*추억에서*
한 줄의 줄글처럼 누워 있는 해안선
경사진 생각들이 외등처럼 밝아지고
바람은 흘림체로 와 은종 하나 흔든다
(부분 인용)
*깨끗한 슬픔*
눈물도 아름다우면 눈물꽃이 되는가
깨끗한 슬픔 되어 다할 수만 있다면
오오랜 그대 별자리 가랑비로 젖고 싶다
새가 울고 바람 불고 꽃이 지는 일까지
그대 모습 다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가
깨끗한 슬픔 하나로 그대 긴 손 잡고 싶다
(인용은 첫째 수)
*그 해 가을 월정리*
적막한 무게 이고 서서 피는 들꽃이여
투명한 기척으로 낯선 별이 지고 있다
-길 숨긴 잡목림 너머 등불 켜는 작은 집
어느 마을 누군가 이별을 하고 있나
가을새 날개 소리 먹물처럼 번져 가는
대숲은 음력달 한 채 가슴 속에 묻었다
(인용은 첫째 중.종장과 둘째 수 초장)
*저 경이(驚異)*
-김상유 <화개(花開)>
봄은 며칠 동안 햇빛만을 키웠다
어깨 넓은 나무와 창 밝은 집도 한 채
하늘엔 연기 한 줄기 단음절로 떠 있고
털갈이 마악 끝낸 부리 연한 새 두 마리
불현 듯 피어난 저 경이(驚異)를 보고 있다
그 시간 형용사처럼 날아가는 나비 한 쌍!
*어린 바람 한나절*
-햇빛시간.2
종이배 등 떠미는 어린 바람 한나절
아직도 일곱 살 때 헤어진 물소리가......
삘기꽃 목마른 언덕 은빛 새가 와서 운다
덩굴손 머문 자리 연둣빛 자국 같은,
관절 긴 생각들이 그렇게 물이 들고
키 낮은 무덤 너머로 낮달 하나 떠 있다
(인용은 첫째 수)
*둑방길*
-햇빛시간.4
개오동
밑둥 적시는
여우비도
지났다
목이 긴
메아리가
자맥질을
하는 곳
마알간
꽃대궁들이
물빛으로
흔들리고,
빨강머리물총새가
느낌표로
물고 가는
피라미
은빛 비린내
문득 번진
둑방길
어머니
마른 손 같은
조팝꽃이
한창이다
(인용은 둘째 수)
⊙유재영 시조집[햇빛시간], 서울: 태학사, 2001 ; (해설▶ '유재영의 시조를 읽는 즐거움'-신경림) 인용 작품
▣해설
물빛 '그리움', 혹은 햇빛 '따사로움'의 길
이 지 엽
(해설 一部)
유재영 시인이 펼쳐 보이는 '물빛' - '그리움'과 '햇빛' - '따사로움'의 세계, 어둠과 등불과 슬픔의 이미지와 가볍고 투명한 것으로의 차오름을 그는 사랑하고 있다.........그의 시에서 느끼는 차분하면서도(물빛 이미지) 톡톡 튀는 신선함(햇빛 이미지)은 바로 이 두 세계의 자유스러운 넘나듦에서 연유한다 할 것이다.
-유재영 시조집[햇빛시간], 서울: 태학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