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05/01/14, 15:44:06 작성자: 샘지기 ( http://sijosam.com) *보리밭 서경(敍景) 외 5편*
김 정 희
봄바람 스칠 때면 파도 치던 청보리밭 그 밭머리 자지러지던 종달새 노래 소리 강 건너 저편 언덕에 신기루로 솟았다.
풋보리 꺾어먹던 흥부네 가난살이 누더기 이불 같은 밭고랑들 사이로 가난도 따스하도록 햇볕에 널어 말렸다.
보리타작 마당에 함께 치던 도리깨질 눈매 어진 이웃들은 한솥밥 식구였고 사람이 모여 사는 곳 더운 김이 올랐다.
지금은 오물에 가위눌려 기진한 들녘 풀잎도 참새들도 멀리 떠나 버리고 문명은 떠밀려와서 재를 뿌리고 갔다.
(인용은 둘째 수)
*아버지*
녹두꽃 진 자리에 일어선 한 줄기 바람
세상을 바꾸려는 뜻 천지를 휩쓸었건만
소나무 휘인 가지에 옹이로 굳어 있다.
*찻잔 . 4*
솔바람 불어 오는 그윽한 골짜구니
산여울 물소리도 안개로 실려오고
자연은 숨결로 다가와 입술가에 맴돈다.
*입춘 무렵*
아득한 어느 산골 후미진 계곡에
여울은 얼고 또 멎었는가 내 몸에 소름 끼치고
그 물살 언제쯤 풀리려나 내 눈빛 밤을 지킨다.
*화도(花禱) . 2*
한 번 눈을 뜨면 이대도록 밝은 세상
봄은 가지마다 소명(召命)의 등을 달고
다시금 살아 숨쉬는 은혜로운 후광(後光)에.
*별후(別後)*
밀물이 휩쓴 자리 물보라로 이는 얼굴
꽃이 외면해 피는 뜻을 처음으로 느껴 보는
여울 속 깊은 조약돌 너무 희고 차구나.
⊙김정희 시조선집[歲寒圖 속에는], 서울 : 월간문학 출판부, 2004 ; (해설▶ 담백의 시학을 위한 美的인 想念 -김정희의 시 세계 -김열규) 인용 작품
▣해설
담백의 시학을 위한 美的인 想念 -김정희의 시 세계 -
김 열 규
(해설 一部)
김정희 님의 작품 세계는 다양하다. 주제나 분위기로는 비장(悲壯)과 비창(悲愴)이 있고 애잔함과 서러움이 서려 있기도 한다. 기법이며 문체도 결코 외가닥은 아니다. 역설과 대비의 묘는 묘사의 섬세와 더불어서 두드러져 보인다. 환상적일 만큼의 연상 작용이 빚어내는 비유법과 이미지는 때로 현란을 극하기도 한다.
-⊙김정희 시조선집[歲寒圖 속에는], 서울 : 월간문학 출판부,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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