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관련글

[스크랩] 시인 이시하의 시세계

시치 2006. 9. 26. 20:28

▒ 시인 이시하(李翅河)
▒ 1967년 경기도 연천 출생. 현 경기도 의정부 거주.
▒ 제 18회 월간 문학 저널에 '패랭이꽃'외 2편이 당선되어 등단.

▒ 2005년 시집 '푸른 生으로의 집착; 출간

▒ 현재 「빈터」동인으로 활동중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탐구

           -이시하 시집 해설

 

         황정산 (문학 평론가)

 

이시하의 시들은 모두 아름답다.아니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말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와 이미지를 통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재현해 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시하 시인이 시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 듯하다.하지만 그의 시들이 단지 아름다움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를 그의 시는 우리에게 새삼 일깨워 준다.

 

쏟아지는 언어의 붉은 꽃들,

저 정갈한 흰 천 우에 쏟아지는

꽃잎들을 보아라

이것은 시작과 끝이다

가벼워진 가슴 한켠.

 

애증의 눈길로 그것들을 보느니

그런대로 아름다워라

흩어지는 그대로,

흩날리는 그대로,

 

베어낸 가슴 한 장 맑게 걸어 놓으니

아침이 파랗다.

-(시를 쓰다),부분

 

 

시인은 자신의 시어들을 꽃잎 하나 하나로 보고 있다.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시인으로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만들고 잇다고 생각하고 있다.밤을 새는 고투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파란 흐망과 생명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 언어들이 주는 꽃 같은 아름다움 때문이라는 것을 시인은 알고 있다.이렇듯 이시하의 시의 출발은 아름다움이라는 화두에 놓여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름답다고 말해지는 것이 참으로 많다.특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모든 상품들이 아름다움의 탈을 쓰고 우리의 욕망충족을 위해 우리들의 귀와 눈을 사로잡고 있다.백화점의 쇼윈도에는 아름다운 옷들이 걸려있고 아름다운 빛깔의 온갖 먹을거리들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한 온갖 생활용품들, 그뿐이랴, TV등의 대중매체 속에는 사람들마저 아름다운 상품으로 만들어져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하지만 이 모두는 우리의 욕망을 부추기는 유혹일 뿐이지 진정한 아름다움은 아니다.이렇듯 아름다움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사실 소중한 아름다움을 잊어가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시하의 시는 바로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그럼 그의 시가 말해주는 아름

다움은 어디에 있을까? 먼저,그것은 살아있는 것에 있다.

곧 그의시에 있어 아름다움은 생명과 동의어이다.

 

 

그리하여 끝내는

남이 버린 생명들을 불러들여

홀대받는 모든 것들을 넉넉히 품고

휘파람 소리로 숲을 이루더라

네게로 흘러간 실개천들은 휘파람을 배우고

숲이라 말하면 휘파람소리 나고야 말더라

바다가 되지 못한 실개천들아,숲으로 가자

혹은 나무라고도 불리는 성자에게로 가서

우리들은 천 개의 강물이 되고

푸른 수맥을 타고 하늘로 흘러 잎으로 피면

새와 바람을 불러 어깨동무하고 휘파람을 불자

그날이 오면

천지 사방에 휘파람소리 흩날리고

나무는 또 나무를 낳고 숲은 또 숲을 낳으리니

우리 사는 이 황폐하고 거친 세계가

신들의 성전보다 아름다울 날 오고야 말 것이니.

-(숲을 부르면 휘파람소리가 나),부분

 

 

 

 시인은 신들의 성전보다 아름다운 것을 소망하며 시를 쓰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숲에서 본다.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생명들을 품는 살아 있음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버려지고 핍박받는 작은 생명들을 다시 살게 하고 그리하여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와 사랑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숲이고, 그것은 또한 바로 생명의 힘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스스로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다짐하고 있다.

 

 

 

그저 벌 나비만 같아라

꽃수를 놓듯 하늘을 날며

어여쁜 생명들 무수히 퍼뜨리어

끝내 아름다운 별무리 흐르게 하여라.

      -(시인에게), 부분

 

 

이렇듯 시인은 아름다운 생명을 퍼뜨리는 자이다. 이 아름다운 생명의 정점에는 '여자'가 있다.

 

 

꽃,

식물의 생식기관

 

각진 사전의 한 귀퉁이에

너는 흑백의 차림새로

부끄러움 다 드러낸 채 누워 있었다

애써 감추는 우리들의 그것과 같은 레벨이라니,

누가 그토록 눈부신 이름을 지어주었던가

꽃이라고!

온갖 아름다운 것들과

온갖 아름답고 싶은 것들이

갚지도 않을 너의 이름을 빌어쓴 것이

이미 오래.

가만, 생명을 키우는 모든 것들이

아하, 꽃이로구나

처녀여, 어머니여, 헤라여, 은하수여

아, 여자여!

모든 꽃은 여자로구나

모든 여자는 꽃이로구나

 

시들어 갈,

슬픔.

  -(꽃), 전문

 

 

 꽃이 라음다운 것들의 대명사가 된 것은 바로 그것이 여자이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그것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본원적인 여성성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또 한편으로 그 아름다움이 시들어 갈 운명을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  아름답고 그것을 잉태하고 키우는 여

성이 아름다운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시들고 죽어갈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생명이 죽음을 항상 품고 있듯이 아름다움은 그 안에 

슬픔을 담고 있다.

 

 

 이시하 시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또 하나의 모습은 작은 것이다. 작고 나약하고 비루한 것들이 아름다움일 수 잇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세상이 크고 힘센 것들을 추구할지라도 진실로 아름다운 것들은 작은 것들에 있음을 시를 통해 설득력 있게 말해주고 있다.

 

 

 

희고 조그만 꽃들이

목을 기일게 빼고, 그러나

여전히 작은 키로 허공을 흔들고 있다

가녀린 목 줄기를 뒤채이며

초록의 동그란 손들을 활짝 펴서

간신히 제 몫의 허공을 얻은 그들이

이상하게 자신만만한 것이다

 

 

------중략-------

 

강냉이 튀밥 같은 가벼운 배부름이

툭툭 터지며 올라오는 들판,

행복이 한가득 이다.

 -(클로버 꽃), 부분

 

 

시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위의 시에 표현된 클로버처럼 작고 가녀린 것들이다. 그 작은 것들이 자신의 생명력을 맘껏 자랑하며 자신만만하게 커가는 장면에서 시인은 행복과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지배하려 고 하는, 크고 강한 대단한 것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들의 작은 생명에서 볼 수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다음시에서는 이점을 좀더 설득력있게 표현하고 있다.

 

 

 

 

허공에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

나비의 날갯짓을 보아라

하늘의 살점 한 끝도 베어내지 않는

나비의 부드러운 날갯짓을 보아라

소란함 하나 없는 그 가벼움을 보아라

날갯짓 한번에 봄바람은 불어오고

발갯짓 한번에 버들개지 꽃다지 피는 걸 보았느냐

우리가 한 마리 나비가 될 수 있다면

우리의 詩가 그 날갯짓일 수 있다면

세상은 지금쯤 또 얼마나 따스하겠느냐

날마다 남의 가슴 베어내는

우리의 소란하고 무거운 언어들은

천년의 세월 지나야 풍경소리로 태어날 수 있으리

 

나비는 풍경 위에서 쉬고 있는데.

     -(나비), 전문

 

 

 

 

 

 소란하고 무거운 언어는 '남의 가슴을 베어내는' 죽음의 경계로 우리를 내몰고 있다. 하지만 작고 가벼운 나비의 날갯짓은 이미 '풍경 소리' 라는 아름다움의 경지를 획득하고 있다. 그것은 '하늘의 살점 한 끝도 베어내지 않는' 가벼움을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란하고 무거운 언어들

은 남을 지배하고, 폭력으로 다스리려 한다. 모든 이데올로기와 윤리적 도그마들이 바로 이런 것일 게다. 그것들은 모두 선과 아름다움을 표방하고 있지만 우리들을 죽음으로 내어몬다. 하지만 작고 가볍고 약한 생명들이 우리의 황폐해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작은 것들이 일으키는 반란을 꿈꾸고 있다.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 살듯

들판에는 개망초들이 몰려 산다네

그들이 날마다 무더기로 태어나서

흐드러지고 번성하면 나 정말 좋겠네

어느 순간 개망초들이 떼로 일어나

도시를 침략햇으면 좋겠네

아스팔트를 점령하고

빌딩을 덮어 버렸으면 좋겠네

푸르고 하얀 그 고운 것들이 점점이 퍼져나가

도시란 도시를 에워싸고

석 달 열흘 넘게 시위라도 했으면 좋겠네

나는 나비 떼를 불러들여 개망초를 응원하려네

도시의 역적이 되어 손가락질 받아도 좋을

개망초들의 반란이 일어나면 좋겠네

밤 새 얼마나 흐드러졌는지

도시를 향해 얼마나 진군했는지 보러 가야겠네

개망초들의 반란을 꿈꾸는 내 전생은

개.망.초이었을지 모르네.

   --(반란), 전문 

 

 

 

 

 '도시' 로 상징되는 우리의 삶이란 무엇일까? 돈과 효율성이 지배하는 삶의 공간이다. 거기에서는 돈과 권력이라는 힘센 것이 세상을 다스린다. 그것들은 우리를 바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뭔가에 사로잡히게 하고 너와 나의 경계를 만든다.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가

되게 한다. 그래야 더 큰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결국 우리를 폭력과 죽음의 세계로 내 몰고 만다. 허나 작고 가녀리지만 무더기로 피어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라나는 개망초는 이런 것들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개망초는 작고 가벼워서 아무것도 해하지 않지만 스스로 번창하는 생명력을 표현하기도 하고, 모든 담장과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존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이야말로 자유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은 이런 아름다운 반란이 쉽게 일어나지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강고한 일상의 삶이 그것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의 힘에 휘둘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우리의 일상의 삶과 그 상투성이 아름다움에 대한 근원적인 우리의 지향을 가로막고 있다. 다음의 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를 가슴아프게 한다.

 

 

 

언덕을 오르는데 말이지 겨드랑이가 환해지는 거야.

밥사발들이 벌떡벌떡 걸음마다 쫒아오잖아

밥물 냄새 화악 풍기는 고것들이

밤새 짓까불며 간질간질 웃다 터져버린 고것들이

거짓부렁 하잖아, 밥인 양, 밥인 양......

 

꽃이 밥으로 보일 때는 꽃 같은 거 보지 마.

   -(꽃 같은 거 보지 마), 부분

 

 

가난 때문에 친구에게 돈 빌리러 갔다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팝나무 꽃이 밥으로 보였다는 내용을 담은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인간다운 고귀함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강고한

폭력성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폭력을 깨닫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하루하루에 스며들어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허기가 진다

이것이 순수한 허기인지 의심스럽다

담백하게 한점의 살덩이가 그리운

그 투명한 허기인지가 못내 의심스럽다

이유를 알아야겠다

이 야릇하고 헛헛한 공복의 정체를 알아채야 한다

저녁 무렵이고

해서, 배고플 다른 이유가 없다면

늘상 속을 갈구는 이 뻔뻔한 통증은 무엇인가

팍팍하게 내장을 부풀리고도

끝내 알싸하게 치미는 이 헛헛함이란!

   -(통증), 전문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이유는 바로 욕망 때문이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무엇을 추구하게 만든다. 더 돈을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야 한다고 우리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그걸 통해 우리를 완벽하게 채울 수는 없다. 욕망은 욕망을 낳아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불행과 죽음의 근원은 다 여기에서 나온 것일 게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러한 폭력성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슬픔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기도 하다. 이 시집 2부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이러한 아름다운 것들의 슬픈 운명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만을 살펴보자.

 

 

새벽.

하얀 안개 춤추는

새벽꿈이 차가웁다

일어서려는,

몸부림

약간의 두통이 무릎을 세우다 찡그린다.

 

낮.

가위귀신에 겁탈당한 낮 꿈은

노랗게 질려 나른하다

병색이 완연한 오후,

방물나무가 비손 하며 운다.

 

밤.

 

바람 할미가

시샘 눈꽃을 뿌려대는 깊은 밤 

놀란 봄이 도망친다

동백꽃 화다닥 떨어지고,

잎은 피다 지고,

 

잠.

까마득 절벽 아래로

어둑새벽이 뛰어 내리더니

다리를 절면서 기어오르고

동서남북

방향을 잃은 잠들이 엉켜있다.

  -(잠,꿈), 전문

 

 

잠과 꿈의 기록이지만 사실은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기록이다. 알지 못할 공포에 떨고 있는 듯하다. 살아있는 것들은 병들고 시들어 가고 가야할 길은 방향이 잡히지 않은 채 절뚝거리며 절벽을 기어 올라야 한다. 이 모두는 가혹한 삶의 현실에 내몰린 우리의 일상적 삶의 모습과 결코 다르

지 않다. 하지만 시인이 몸부림치며 깨어나 일어서려고 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짜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출처 : 시창작마을
글쓴이 : 한명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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