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沿岸’의 운명과 초월의 시
- 유병근의 시세계
1. 고석규의 죽음과 ‘沿岸’의 인간
유병근 시인1)의 이름을 처음 접한 계기는 그의 글 「고석규씨와의 인연」(《오늘의 문예비평》93년 겨울호)이다. 이 글에 드러나는 고석규와의 애잔한 추억과 상념, 그리고 고석규 주간의 《삼천리》를 통해 등단한 그의 이력은 ‘고석규 시대’의 문학적 아우라를 떠올리게 하였다. “신이 나를 녹이는 것은 신의 필연이며 내가 신의 열을 빼앗는 것은 나의 행위이다”라는 고석규의 묘비문. 그의 묘비문은 치열했던 문학정신의 당대적 상징인 동시에, 소멸해가는 문학정신의 현재적 상징이 아니겠는가. “시는 죽었다”라는 탄식조차 무미건조해진 시대에 고석규와 같은 문학정신을 기대하는 일조차 허무한 일이고 보면, 고석규의 시대를 고스란히 거쳐 온 시인에 대한 애정은 이제 늙어버린 아버지의 쇠락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정과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고석규와 교유했던 그로부터 고석규로 상징되는 당대의 치열한 실존성과 문학정신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감상(感傷)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첫시집 『沿岸集』(1978)조차도 고석규의 뜻을 마음 속에 품은 결과인 점을 생각할 때, 유병근의 초기 활동은 고석규의 문학적 아우라와 겹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무렵 그는 징역, 형벌, 연안, 벽, 실존주의, 릴케, 로댕 등의 단어를 자주 썼다. 또 어느날은 「沿岸」이란 소재로 연작시를 구상중이라고도 했다. 연안이란 말에 대하여 나에게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말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인간이 사는 길 또한 연안을 걷는 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내 첫시집의 제목을 『沿岸集』이라고 한 것은 순전히 그의 연안에 대한 애착때문이었다. 첫시집을 간행할 때 나는 그를 생각했다. 그의 연안을 굳이 제목으로 삼은 뜻은 그를 내 마음 속에 묻어두고자 한 개인적인 욕구이기도 했다. 또한 그가 추구하다가 이루지 못한 시에의 꿈을 내가 이루어보고자 한 소박한 꿈이기도 했다.2)
유병근 시인은 1958년 2월 15일 고석규로부터 『詩的 想像力』을 우편으로 증정받고 두 달 뒤 그의 부음을 접해야 했다. 이로 인해 군대에서 얻은 동상 후유증으로 가뜩이나 몸이 좋지 않았던 그는 더욱 앓아 눕고 말았다. 우연이었을까? 그가 “문학에의 어떤 열망도 서서히 끊고” 있을 즈음에 고석규는 죽어버린 것이다. 문학이 가지는 허망함은 문학적 열정의 다른 이름이 아닌가.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가상(假想)일 뿐, 결코 삶의 실재를 드러내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은 삶의 허무를 말끔히 소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양시킬 뿐이지 않는가 말이다. 고석규의 죽음으로 인해 문학과 삶의 덧없음은 유병근에 뇌리에 더욱 깊이 각인되었다. 그리고 무려 12년 뒤에야 그는 《월간문학》을 통해서 시작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허망한 문학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최영철의 말3)처럼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괴롭히는 시와 삶에 대한 허망과 상실감에서 탈출하고자 몸부림”이고, “그 허망과 상실감은 부지런히 쓰고 살아내는 것으로 밖에는 달리 헤어날 길이 없는 수렁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이 사는 길 또한 연안을 걷는 한 모습”이라는 고석규의 말에 깊은 인상을 받은 시인 역시 문학과의 인연을 끊은 후, 물과 뭍의 경계인 ‘沿岸’을 걷는 인간의 절절한 고독감을 언어로써 털어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 통영 또한 ‘연안’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에게 있어 고석규가 남긴 죽음의 여운은 아마도 그의 첫시집에 등장하는 ‘연안’의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발등에 앉은/ 눈발/ 느린 맥박이 떨어진다/ 현기증 일고/ 한 순간 뒷굼치가 비칠거린다/ 비칠거라는 노래/ 겨울은 눈구덕에 이마를 찍고/ 흰 宣紙 마흔 장을 다 적신다/ 남방산 그늘도 다 적신다/ 저문 바다/ 어등도 끄고/ 竹島는 팔베개를 베고 눕는다
-「忠武에서 Ⅰ」전문(1978)
연안을 걷듯 허무한 삶의 언저리를 “비칠거리”는 시적 자아는 맥박조차 느려지고 현기증이 이는데 급기야는 눈구덕에 이마를 찍는다. 시적 자아의 내면은 어등(漁燈)조차 없는 적막한 어둠으로 가득 채워진 저문 바다인 것이다. 이처럼 뭍과 물의 경계 이미지는 그의 초기시를 아우르는 지배적 이미지가 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시 「赤岐」(1978)에서 뭍은 “검은 꼬리 감추고/ 화차는/ 거센 울대를 바다에 쏟”으며, “맨발의 아이들이 뛰어가고/ 근육을 들어낸 목도꾼의 어깨는/ 늦은 햇발로 가득 타고 있”는 세계다. 그러나 “칠흑의 갈앉는 바다 뒤꼍”이라는 물의 세계에서는 “숱 짙은 음모가 일렁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물과 뭍의 대비는 ‘햇발/칠흑’, ‘아이들의 맨발/ 숱 짙은 음모’라는 이미지의 대립을 통해 시인의 내면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허무의 세계다. 그는 제4시집 『지난 겨울』(1988)의 「시를 위한 단상」에서 “허무의 깊이는 끝이 없다. 허무를 보는 시인의 눈도 끝이 없다. 끝 없는 끝에서 건져올린 한 편의 허무. 그것은 새로운 허무다. 시인에겐 새로운 허무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고백한다. 끝없이 솟아나는 새로운 허무를 향해 시인은 다시 시의 비수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를 죽이는 시적 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신이 나를 녹이는 것은 신의 필연이며 내가 신의 열을 빼앗는 것은 나의 행위이다”라는 고석규의 묘비문은 시인이 왜 허망한 자기죽음을 향해 몸부림치는 역설적 존재인가를 아프리오리(a priori)하게 보여준다. 유병근 시인은 고석규가 살았던 시대의 문학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沿岸’을 서성이는 허무의식과 불안은 그의 시적 탯줄이 되는 셈이다.
2. ‘埋築地’의 현실과 ‘沿岸’의 안개
유병근의 초기시가 보여주는 또다른 내면 풍경은 죽음의 세계다. ‘연안’이 품고 있는 경계 이미지는 곧 죽음을 함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첫시집 『沿岸集』의 「風琴」에서 죽음은 지배적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젖은 달무리가 걸린다/ 소복의 여인을 데불고 간다/ 검은 잇바디 감추며/ 죽은 사내들이 뒤를 밟는다”와 같은 이미지는 “자정도 지날 무렵/ 가라앉는 바다의” “희푸른 밑바닥이/ 달무리 속으로 잠겨 든다”는 이미지와의 병치를 통해 죽음의 몽환적 세계를 그려낸다. 뿐만이 아니다. 죽음은 무속의 세계로 뻗어나가 그 자체로 “이야기의 꽃”이 된다.
그대의 영결은 이야기의 꽃이다. 도처에 넘치는 사자밥 홍수를 용하게 빠져나온 이야기나 쑥덕이며 그대의 상여를 멀리 보낸다. 강물이 되어서 그대는 가고 흐르는 소리만 남아서 돈다. 때로는 먹구름의 소낙비 되고 천둥의 이를 갈며 굴러 다닌다 막막한 한이 되어 굴러 다닌다. 바람에 흐득여 산발이 되고 찢여진 목청으로 손짓을 한다. 이윽고 우리도 죽어서 간다. 그대의 마을로 방 얻어 간다. (중략) 기웃한 지게의 불안한 힘이 자꾸만 등더리에 처져 내린다. 끝없는 한쪽 짐이 나를 누르는 내 절름거림의 지게에 묶여 우리가 얻은 것이 얹히어 간다.
-「今女抄」부분(1978)
죽음이라는 “이야기의 꽃”은 무궁무진하다. “이야기의 꽃”을 피운 “그대의 상여”는 멀리 보낼지라도 그대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남아 떠돌면서, 때로는 “먹구름의 소낙비”가 되기도 하고 “천둥의 이를 갈며 굴러 다니”는 “막막한 한”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도 죽어서”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그대의 마을로 방 얻어 가”게 될 운명! 유병근의 초기시에서 이러한 허무의식은 매우 뿌리깊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허무의식은 시적 자아의 어깨를 한쪽으로 기울게 한다. 그것은 “등더리에 처져 내리”는 “기웃한 지게의 불안한 힘”이다. 그러나 고석규의 말처럼 삶의 허무를 딛고 ‘연안’을 걸어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끝없는 한쪽 짐이 나를 누르는 내 절름거림의 지게에 묶여” 우리는 ‘연안’을 비칠거리며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비칠거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집을 떠난 자의 소리 들린다/ 어디로 헤매는가/ 집집마다 불은 이미 꺼지고/ 마귀의 집게손이 덮치고 있다/ 하늘도 안보이고// 목 마른 자여/ 馬蘭꽃 그늘에 자리를 턴다/ 해골을 베고 누우면/ 西風은/ 천리 밖/ 피리를 분다
- 「周易」부분(1978)
인간의 운명을 은밀히 내다보는 ‘周易’의 세계에서 결국 인간은 헤맴과 죽음의 운명을 타고났을 뿐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해골을 베고 누”울 수밖에 없으며, 죽음으로부터 불어오는 “西風”은 “천리 밖”까지 “피리를 부”는 세계인 것이다. 이는 너무도 자명한 운명적 사실이어서 “눈물 하나”조차 “저녁내 오지 않는다.”(「點燈」(1978)) 삶이란 “낯선 저승 길목에서의 서툰 걸음”(「진눈깨비」(1983))일 뿐이라는 분명한 운명 앞에서 허무의식은 격렬한 감정을 휘발시켜버리고 물기 없는 화석처럼 푸석거린다. 그리하여 화석화된 허무의식은 견딤의 힘이 된다.
『西神캠프』(1986)는 이 견딤의 힘을 통해 형상화된 죽음과 무속의 세계다. 유병근에게 시는 무속과 죽음의 세계를 드러내는 프리즘이다. 그는 “무당옷이 갖는 강열한 원색에서 나는 아름다움의 어떤 극치를 보는 듯도 하였다. 그것은 차라리 정한으로 엉킨 빛깔이었다”(「自序」)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의 프리즘을 통과한 무속적 세계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의 극치의 근저에는 죽음이 빚어내는 허무의식의 정화(精華), 그리고 이에 대한 위무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눈 뜨면 달에서 징소리가 징징 깨어집니다. 징소리가 깨어질 때마다 달은 조금씩 사그러지고 달이 벗어 놓은 동그만 고리짝이 중천에 뜹니다. 핏기 없는 여인의 손이 삭은 잿더미를 퍼석퍼석 뿌리고 있읍니다. 이 세상 가득 잿더미가 쌓이고 여인의 숨소리가 잿더미 깊숙이 묻혀갑니다. 밤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묻혀갑니다.
- 「西神캠프․47」전문(1986)
무속의 세계에선 “핏기 없는 여인의 손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육체의 삭은 잿더미를 퍼석퍼석 뿌려대고 있다. “이 세상은 잿더미가 쌓이고 여인의 숨소리”마저도 “잿더미 깊숙이 묻혀가”는 것이다. “밤마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말이다. 죽음은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존재이다. 죽음은 무속의 형식으로서 우리 문화에 오랫동안 깊이 젖어왔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이승과 저승을 오고가는 무속정신은 “우리 정신사의 원천이 아닌가”라고 「自序」(1986)에서 밝힌 시인의 말은 옳다. 허무의식의 견딤과 살풀이로서의 무속에 대한 시적 탐구는 시인에게 있어서 “점토로 빚은 얼굴을 벽에 거”(「얼굴․3」(1986))는 행위와 다름없는 것이다. 따라서 “점토로 빚은” 망자(亡者)의 얼굴은 허무의식의 화석화를 통한 견딤의 미학을 획득한다.
그렇다면, 죽음과 허무의식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전후시인의 허무의식을 전쟁체험으로 환원해왔던 해석들은 비평적 관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한 것만은 사실이다. 전쟁체험은 전후시인들의 허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좋은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 시대 대부분의 시인들처럼 유병근 시인 또한 한국전쟁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전쟁이 인간의 한계상황으로 작용하는 만큼, 전쟁체험이 시인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전쟁을 체험한 이들에게 전쟁의 상처는 문학적 자장의 중심이 된다. 첫시집 『연안집』에서 열 번째 시집 『엔지세상』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대한 상처가 다소 아무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전쟁의 체험이 그의 시세계를 형성하는 주된 테마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에게 전쟁의 기억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는가?
1. 육이오 때 다락에 숨어 산 당숙은 죽어서 다락방 같은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다락밖으로 숨소리가 샐까봐 다락 밑바닥엔 두터운 솜이불을 층층이 깔았다. 무덤을 쓸 때 재종동생은 흙에 횟가루를 섞어 관주위에 실하게 다졌다. 솜이불 같은 흙이 다져질 때 숨도 크게 못쉬던 당숙이 떠올랐다. 그 아픈 생애를 저승까지 가져간 당숙의 무덤가엔 피보다 더 진한 꽃이 사흘에 한번씩 지고 있었다. // 2. 다락을 뜯었다.(중략) 허리를 잘못펴던 당숙은 지금도 구부정한 자세로 기침소리를 죽이느라 입을 틀어막는 것 같다.
-「다락을 뜯으며」부분(1983)
시적 화자는 다락을 뜯어내면서 당숙의 죽음을 생각한다. “육이오 때 다락에 숨어 산 당숙은 죽어서 다락방 같은 무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외부에 들키지 않게 위해 다락 밑바닥에 두터운 솜이불을 깔았듯이, 다락방 같은 무덤을 쓸 때에도 흙에 횟가루를 섞어 관주위에 실하게 발라놓았던 기억의 상처는 다락을 뜯어내면서 그 환부가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죽어버린 당숙이 “지금도 구부정한 자세로 기침소리를 죽이느라 입을 틀어막는 것 같다”지 않은가! 다락을 뜯어내면서 오래되었지만 생생한 죽음의 기억들이 재생되며 먼지처럼 풀풀 날린다. 먼지 속에서 기침소리를 죽이는 당숙의 처절한 몸부림과 납득할 수 없는 전쟁의 현실은 그의 삶을 ‘잉여’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6. 운신하기도 힘이 든다./ 불끄고/ 창가에 기대 앉는다./ 한 시대는 죽어/ 허공 어디에 재를 날린다./ 앞산은 밤새/ 부리 묻은 새들의 꿈을 깁는다./ 책꽂에 꽂힌 가스똥 바슐라르/ 오늘은 물과 꿈을 다시 읽었다./ 지리산에서 딴/ 綠茶를 거푸마시며/ 찻 잔 가장자리로 날으는/ 雲鶴 무늬에 눈을 팔았다./ 훌쩍 떠나고 싶은/ 어쩌다,/ 나는 날개가 없다.//(중략) 8. 오늘 아침 동맥을 끊었다./ 자욱한 안개가 눈에 서리고/ 안개 속에서 옷자락이 젖었다./ 안개보다 무거운/ 옷자락은 이따금 처져 내리고/ 기웃둥 몸이 휘청거렸다./ 몇 초 사이/ 끊어진 對話,/ 사랑이여/ 죽음에의 덧없는/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 「遺作展」부분(1983)
전쟁은 “한 시대는 죽어/ 허공 어디에 재를 날린다”는 허무의식의 근원이다. 그는 그저 바슐라르의 『물과 꿈』을 읽으며, 인간의 근원적 상상력의 세계로 깊이 침윤하고자 하며, 폭력으로 가열한 이 세계를 초월한 듯 “雲鶴 무늬에 눈을 팔” 뿐이다. “훌쩍 떠나고 싶은” 그에게 “날개가 없다”는 자각은 현실도피의 좌절로 인한 자기살해의 욕망으로 귀결된다. “오늘 아침 동맥을 끊”음으로써, “죽음에의 덧없는/ 카운트․다운은 시작”된다는 시적 진술은 그의 남은 삶이 그저 ‘잉여’에 지나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삶과 시는 “동맥을 끊은” 순간부터 시작되며, “죽음에의 덧없는/카운트․다운”이 시작되는 “삶은 곧 저마다의 관을 짜는 작업”(『牧齋隨筆』p.86)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끔찍한 폭력을 선사했던 전쟁을 경험한 현실은 누군가 “ 祭文을 읽고 있”는 “무덤이 된 안개”(「霧田里」(1983))로 표상된다. 이 세계는 “죽은 영혼 하나가/ 수렁 끝에서/ 더 깊은 수렁을 휘젖고 가”는, “안개 속에서/ 안개와 몸을 섞은 희미한 埋築地”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매축지”란 “천 몇 백년에 쌓이고 쌓인/ 무수한 발자국의 무덤”(「慧超생각」(1988))인 것이다. 이 무덤 위를 떠도는 “안개”는 “포연을 닮은 안개”(「안개․5」(1988))로 진술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정체를 “헤아릴 수 없”는 안개인 것이다. 이는 세계의 상실이라는 무정향의 기로에 선 시적 화자의 쓸쓸함을 질료로 하는 내면 풍경이다.
아무리 찾아 보아도 꽃의 깊이는 알 수 없다(중략) 우리가 갖는 꿈과 절망으로 피어올린 꽃에서 또 다른 무엇이 보인다고 할 것인가 그것은 차라리 저승이라 할 것인가 꽃이여, 우리 곁을 떠나버린 쓸쓸함이여
-「꽃에게」부분(1988)
꽃으로 표상되는 세계의 본질은 이미 전쟁으로 파괴되었으며, 그것의 깊이조차 확신할 수 없는 파괴된 세계만이 남아 있다. 이 파괴된 세계는 “우리가 갖는 꿈과 절망으로 피어올린 꽃”이며, 쓸쓸함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차라리 저승이라 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 ‘매축지’의 세계 위를 떠도는 안개 속에서 시인은 이제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여전히 그는 “沿岸”을 떠도는 자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떠도는 자는 떠도는 자의 뿌리”라는 순환적인 운명 앞에서 그는 탄식한다. “떠도는 역마살이여/ 언제 우리가 뿌린 내린 섬으로 태어나/ 밀물과 썰물로 때때로 머리 헹구겠는가”(「忠武에서」(1988)) 세계의 파괴와 상실은 시인으로 하여금 예정된 유랑의 길을 걷게 하며, 그 유랑의 끝은 자기초월과 자기수양의 세계로 귀결된다.
3. 자기수양과 자기초월의 시, 그리고 금정산
유병근 시인은 『서신캠프』(1986) 이후, 『지난겨울』의 「後記」에서 “현실시각으로의 귀의”를 고백하고 있다. 실제로 「자갈치 感性」, 「고향하루」, 「딸을 보내고」, 「누님病床」등의 시는 구체적 현실에 밀착된 서정을 그려내고 있으며, 앞서 출간된 세 권의 시집보다 구체적 현실의 시화(詩化)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그는 “시는 꿈으로 변형된 현실의 비현실을 포착하여 현실이 갖는 다른 측면을 구체화시키려는 노력의 결정”(「시를 위한 斷想」(1988))이라는 시관을 견지함으로써 그의 시세계가 현실의 구체성에 머물지 않고 비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경향을 여전히 드러낸다.
그대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는 시를 끄적인다/(중략) 밤엔 불 끄고 앉아/ 빨랫줄에 걸린 앞산을 본다/ 아직 이루지 못한/ 내 시의 부끄러운 행간을 끼고/ 바람이 불고/ 빨랫줄엔 빨래가 간혹 보인다.
-「빨래」부분(1988)
“빨랫줄엔 빨래가 간혹 보인다.”라는 의미심장한 구절은 그가 구체적 현실 속에서 현실이 아닌 다른 무엇을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간혹 보이는 빨래 외에 빨랫줄에서 그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가 보고자 한 것은 간혹 보이는 “빨래”인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인가? 분명한 것은 ‘바라보는’ 세계와 ‘바라보려 하는’ 세계는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긴장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대가 빨래를 하는 동안/ 나는 시를 끄적인다”와 같은 시작(詩作)의 일상성에 대한 자각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여전히 “빈 몸으로 떠도는/ 사내들은 묵묵히/ 눈 떠도 안보이는 세상을 본다”라든지, “고산은/ 어부사시가를 눈발에 끄적인다”(「海南에서」(1988))와 같은 ‘沿岸’ 의식과 탈속적 지향을 은연중에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沿岸’ 의식은 이제 유랑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자기수양이라는 내적 성찰과 자기초월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밤 늦도록 시를 써서 항아리에 집어 넣고 무뜩 항아리를 울리고 있는 종소리를 듣는다 그래 그런지 요즘은 귀에 쟁쟁한 종소리 뿐이다(중략) 시여, 그대 오는 발자국 소리 종소리에 묻어오고 그대 이야기 종소리에 도란거리고 그래 그런지 요즘은 밤 늦도록 불 안끄고 집앞 길목이나 쓸까도 싶다
-「마루에 작은 종을 앉히고」부분(1990)
『사일구遺史』(1990)에서 시작(詩作)은 어느덧 자기수양과 내적 성찰의 행위가 된다. 시를 통한 삶의 묵상은 “귀에 쟁쟁한” 시의 “종소리”로 형상화된다. 밤늦도록 시를 쓰고 시의 종소리를 듣는 화자는 더 이상 ‘沿岸’을 서성이며 검은 바다를 응시하는 불안한 존재가 아니라, “눈에 탄알이 박힌 채 바닷물에 처박힌 주검이 떠오르”(「사일구 遺史」(1990))는 불행의 역사조차도 차분히 응시하는 평정심을 지닌 존재이다. “아직 밤중인 꽃망울 곁에 앉아 먹을 갑니다”(「먹을 갈면서」(1990))나 “날 가려서 문을 바른다/ 문살에 풀 먹이고/ 종이는 저며 잘 개킨다/ 종이를 저미다가 생각한다”(「문을 바르며」(1990))처럼 내적 성찰을 함의하는 시들이 이 시집에 유난히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4) 이러한 자기수양의 내적 성찰은 “침묵이 무엇인가를 산과 들이 보여준다”(「하직」(1990)), “어부사시가 몇 구절 입에 올린다/ 그 외 아무것도 생각에 없다”(「孤山생각」(1990)), “구름 속에 숨은 것 찾으러 가서 나도 구름으로 떠 있을까 합니다”(「봄술래」(1990))와 같은 자기초월의 탈속으로 기우는 경향마저 보여준다.
이처럼 ‘沿岸’의 유랑과 허무의식이 도가적 자기수양으로 변모하게 된 것은 “십리쯤 삼십리쯤 떠도는 객기도 허욕”(「패말」(1990))이라는 깨달음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떠나야 할/ 묵묵부답인”(「문을 바르며」(1990)) 현실에 대한 냉소적 허무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 현실이란 “창밖을 보니 얼굴 가득 껌정이 묻어나오”(「껌정」(1990))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맞서 부라린 눈으로 삿대질 하는 최근 풍속도”(「감기를 앓으며」)가 암시하듯이 매우 혼란하고 부정적인 사회상이다. 그래서 『설상당꽃이 떠나고 있다』(1993)에 이르러 시인은 잠적의 미더움과 깨끗함마저 동경하게 된다.
잠적이 갖는 미더움, 잠적이 갖는 깨끗함, 나는 그걸 못하고 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흠집 투성이다
-「다시 積阻」부분(6)
이는 ‘연안’의 유랑과 허무의식이 자기수양의 단계를 지나 자기초월의 욕구에 다다른 동시에 역사로부터의 유폐라는 함정에 빠져있음을 말해준다. 환멸의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유폐된 공간을 향해 가는 자기초월은 자기폐쇄와 현실도피의 다른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이로 인해 「사막을 지나며」(1993)와 같은 어설픈 초월의 포즈마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자기초월과 수양의 원형을 신라의 설화적 세계에서 찾아냄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극복해내고 있다. ‘삼국유사’의 인유를 통해 설화적 세계의 초월성을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금정산』(1995)에서는 자기초월의 어설픈 포즈와 설화적 세계의 추상성을 장소애(topophilia)적 상상력을 통해 말끔히 해소하는 시적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연안’의 유랑과 허무의식 끝에 그가 도달한 시적 궁극은 피상적인 자기초월도, 추상적인 설화적 세계도 아닌 ‘금정산’이라는 구체적 장소를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 보살이 살다가 오래 전에 떠났다 성도 이름도 모른다 내가 보살의 이름을 모르듯이 내 본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보살이 살며 뿌리고 간 신기가 살아 있어 사방 팔방에 부적을 갈아 붙이던 움막 틈서리에 달빛이 기어들고 달빛의 엉덩이에 보살의 엉덩이가 떠오르곤 했다 쟁그랑거리는 요령을 흔들며 달빛을 깨우던 보살의 중얼거림이 어렴풋이 들리곤 했다 소리는 어쩌면 고단봉 아니 고동봉이라고도 들렸다 내사 고동봉 캐도 니는 고당봉 캐라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때 누군가는 고담봉일 것이라고 우기는 듯했다 저 아래 금샘은 달빛에 찰랑거리며 아직 오지 않는 의상대사를 마중가고 있었다
-「금정산 - 姑堂峰辭說」전문(1995)
인간적 의미를 탈각시킨 금정산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space)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보살이 살다가 떠난 후”의 금정산은 자기초월의 의미를 지닌 신성한 ‘장소’(place)로의 전환을 이룬다. “보살이 살며 뿌리고 간 신기가 살아 있어”서, 금정산의 달빛은 보살의 체취가 남아 있는 신비한 빛이며, 금샘마저 “달빛에 찰랑거리며 아직 오지 않는 의상대사를 마중가고 있”는 신비로운 성소(聖所)인 것이다. 이러한 선적(禪的) 풍경은 금정산이 지닌 신비한 초월성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시적 화자는 “내가 보살의 이름을 모르듯이” “내 본디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무아(無我)의 경지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다. 달빛의 엉덩이 속에서 보살의 엉덩이가 떠오르고 보살의 중얼거림이 어렴풋이 들리는 ‘금정산’은 망실된 선적 세계의 단순한 가상(假想)적 복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沿岸’의 유랑 끝에 도달한 자기수양과 초월의 정신적 깊이를 지닌 ‘장소’로 재의미화 된다. 다시 말해 ‘장소감’을 상실한 추상적 관념으로서의 초월세계가 아니라, 구체적 장소감을 획득한 초월세계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는 ‘沿岸’을 유랑했던 유병근의 시세계가 도달한 지점의 궁극이라 할 수 있다.
4. ‘沿岸’의 시를 기억하며
『금정산』(1995) 이후 시인은 『돌 속에 꽃이 핀다』(1998), 『곰팡이를 뜯었다』(2001), 『엔지세상』(2005)등 세 권의 시집을 더 발간한다. 이들 시집에서 보여주는 것은 『금정산』이 보여주었던 초월세계의 잔흔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세계로의 회귀이다. 그리고 「새 쌍화점」․「포장마차 속으로」(2002),「불확실시대의 자화상」(2005)처럼 현실비판의식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이 시들이 보여주는 현실인식은 매우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러한 한계는 ‘연안’의 유랑과 허무의식을 벗어나 『금정산』이라는 초월적 세계를 거쳐온 시인에게 탈현대의 현실은 해명될 수 없을 만큼 매우 복잡한, “아무도 그 내막 눈치 채지 못하”는 “X File"(「X File」(2005))인 점에서 비롯된다. 삶의 복잡성 앞에 무력한 시인은 삶을 매우 피상적으로 단순화하여 비판하거나, 자기유폐의 공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퇴영적 욕망을 보여주고 마는 것이다.
이메일 닫고 글97을 닫고 끝으로 전화선도 미련없이 끊어버렸다 커튼도 앞과 뒤 주르륵 어둠을 가두었다 그러나 마지막 프린터 하나는 닫지 않았다 열려 있어야만 토악질이 된다고 세상 찌꺼기 깨끗이 게워낼 수 있다고 그런 구덕이라고 그냥 두었다 그게 그렇다 열린 것은 어차피 구덕이었다 그 열린 구덕에 창자까지 게워내는 등을 토닥거렸다 눈 닦고 입 닦았다 세상이 보인다고 바늘귀만큼 보인다고 닫힌 어둠 속에서 눈뜨고 온다고,
- 「그믐치 쌓이다」전문(2002)
시적 화자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다. 이메일을 포함한 모든 통신 수단을 끊어버리고 외부의 빛도 모조리 차단한다. 그러나 닫지 않고 열어둔 프린터는 세상으로 열린 틈인데, 그조차 세상 찌꺼기를 게워내야 하는 구덕에 지나지 않는다. 모조리 게워낸 후에야 세상은 겨우 보일 듯 말 듯 하다. 그리고 유폐된 세계는 시인에게 오히려 ‘벽’으로 작용한다. “벽은 답답하다고 벽에/ 쓴 적이 있다”라는 「벽」(2005)에서의 고백처럼, 이제 다시 ‘금정산’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시인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의 벽 속에 유폐되고 만다. 유폐된 현실 속에서 그는 다시 「겨울 그림자」(2005)에서처럼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볕살”을 퍼올리고자 하지만, 그것은 희미한 ‘겨울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아버지를염하고바/ 람소리같은시간몇/ 토막상여머리에꽂/ 았다달달긁혀부서/ 진수박껍데기같은/ 아버지,염습하던아/ 재는끈을묶으며손/ 바닥에침탁탁밭았/ 다수박한덩이안은/ 아버지가보였다상/ 여꽃에기우는아득/ 한안개사라지곤했/ 다손바닥을털었다
-「수박」전문(2005)
기억은 결코 완전한 형체로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기억은 무너진 형태의 편린인 채 망각으로 사라질 듯 다시 나타나 우리의 눈시울을 젖게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비통사적 행갈이는 나타나자마자 바로 사라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소멸과 단절을 형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표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리움은 오랜 시간적 거리로 인해 “손바닥으로 털어”낼 수 있을 만큼, 아득하고 가물가물한 슬픔의 한 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수박”을 매개로 순간적으로 현시하는 아버지에 대한 물기 어린 기억이자, 잃어버린 자아의 한 축, 그것의 순간적인 환기라고 할 수 있다. 상여 속의 아버지는 과거의 것으로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연안’의 유랑과 허무의식은 먼 과거의 흐릿해진 시적 편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러나 다락을 뜯어내면 환기되는 당숙의 생생한 죽음처럼(「다락을 뜯으며」(1983)), 그의 시는 ‘연안’을 떠돌던 허무의식과 ‘금정산’이라는 초월의 세계를 빚어낼 때 깊은 울림을 갖는다. 따라서 그는 ‘연안’을 유랑하고 ‘금정산’을 소요하는 시인으로서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니며, 지역문학의 값진 성취가 아닐 수 없다.
1) 유병근 시인은 10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인용시가 실린 시집을 밝히되 각 시집의 제목을 간행연도로 약호화 한다.
『沿岸集』(1978),『遺作展』(1983),『西神캠프』(1986),『지난 겨울』(1988),『사일구 遺史』(1990),『설사당꽃이 떠나고 있다』(1993),『금정산』(1995),『돌 속에 꽃이 핀다』(1998),『곰팡이를 뜯었다』(2002),『엔지세상』(2005)
2) 유병근, 「고석규씨와의 인연」《오늘의 문예비평》93년 겨울호, p.275
3) 최영철, 「소멸을 위한 양파 까기」《현대시》2000년 6월호, p.159
4) 시작(詩作)을 통한 자기수양의 시는 「필사본」(1995), 「징소리를 찾아」․「옹기마을에 가서」(1998), 「죽비」․「멸치 젓갈이 맛이 들었다」(2002)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유병근 시인에게 있어서 시작(詩作)행위는 자기수양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문예비평> 2005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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