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졸업 1996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대관령 옛길> 등 10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2004년 제49회 현대문학상 수상 (당선詩 : 피어라,
석유!) 현재 '시힘' 동인
주요 저서 목록 첫시집『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비평사)
2000년 2월 1일 첫 산문집『물 밑에 달이 열릴 때』(창작과비평사) 2002년 3월 20일 시집『도화 아래
잠들다』(창작과비평사) 2003년 10월
만행(卍行) 의 첫걸음은 향기롭더라
봄날 오후
늙은네들만
모여 앉은 오후 세시의 탑골공원 공중변소에 들어서다 클클, 연지를 새악시처럼 바르고 있는 할마시 둘 조각난 거울에 얼굴을
서로 들이밀며 클클, 머리를 매만져 주며 그 영감탱이 꼬리를 치잖여 - 징그러바서, 높은 음표로 경쾌하게 날아가는
징·그·러·바·서, 거죽이 해진 분첩을 열어 코티분을 꼭꼭 찍어바른다 봄날 오후 세시 탑골공원이 꽃잎을 찍어 놓고
젖유리창에 어룽어룽, 젊은 나도 백여시처럼 클클 웃는다 엉덩이를 까고 앉아 문밖에서 도란거리는 소리 오래도록 듣는다
바람난 어여뿐, 엄마가 보고 싶다 「봄날 오후」 전문
봄날, 그녀는 피크닉 바구니를 끼고 총총히 소풍을
떠나간다. 봄 햇살에 버무려져 금새라도 얼었던 입안 가득 군침이 돌 것 같은 봄나물의 향기가 그녀의 피크닉 바구니에서 풍겨 나와 코끝을 아리게
할 것 같은데…. 생에 처음으로 혼자 나선 소풍. 코티분을 바르고 나선 그녀의 소풍 나들이에도 실한 바람 한번 난들 어떠하리. 싸아한 꽃가루가
그녀 가는 길 위에 뿌려진다.
어머니는 첫 번째 강을 건너는 화두
소풍을 막 떠나기 시작한 시인
김선우(30). 그는 첫 시집을 낸 소감을 ‘그냥 소풍을 떠나는 느낌’이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가 ‘만행’을 하는 스님처럼 보인 것은 왜 일까.
아니다. 그의 시가 ‘만행’을 하고 있다고 해야 적당한 표현이 될 것이다. 그를 대면하기 전에 그의 만행에 자발적으로 동참(?)한 나로서는 그의
시가 만행하는 스님처럼 보일 만도 하다.
오히려 그의 쌍꺼풀 진 동그랗고 큰 눈에 여리다 싶은 말투와 웃음은 ‘만행’을 감행할
만큼 용기(?)있어 보이진 않았지만(그냥 그녀의 첫 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좀 뜬금 없지만 그의 시에 묻어나던 불교적인 색채와 향기에 취해
있던 필자로서는 그가 일종의 구도자일 거란 상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구도란 것이 별스러운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자 그는 살포시 말문을 열어
본다.
“예술작업이라는 것이 표현하고 소통하기를 원하는 것이고, 소통하려고 할 때 자신의 말과 상대방의 말이 어느 날
하나의 말로 딱 만나는 지점들을 꿈꾸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세상이 좋아질까, 내가 좋아질까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구도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등단을 한 이후 5년만에 첫 시집을 묶어 냈다.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은 작년 말쯤 낼 예정이었지만 이래저래 늦추어지면서 올해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지게 된다. 등단
전의 작품 한 편과 등단작 중 일곱 편을 추렴한 총 59편의 시들은 그의 말대로 어느 날 밖으로 걸어 나오게 된 것이다. 언제나 착하게 입 속에
갇혀 있을 것 같던 혀가 세상으로 튀어 나왔듯이.
부지불식간 튀어나온 세 치 혀가 그의 시들이라면 그의 시는 한결같이 장똘뱅이들의
‘역마살’이 끼어 있는 듯 하다. 그는 천성적으로 여행을 좋아한다. 때가 되어 어디를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난다는데 그의 시에도 역마살이 끼어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시집이 나오고는 이상한 기분에 계속 집에만 있었다는 그에게 슬슬 역마살이 돋는 모양이다. 그를 보면
역마살이 그리 서글픈 일만은 아닐 듯 싶다. 역마살이 도질 때마다 매번 좋은 시들이 나오는 걸 보면, 그에게 역마살은 하나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시들이 ‘입’이라는 사회적 억압장치에 안티를 거는 ‘혀’라면 그의 시에서 ‘역마살’은 투쟁의 한 방식일 수 있다.
“제 시집을 하나의 담론으로 정의 내리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평자들이 좋아하는 말로 한다면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부류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생태학적인 상상력이 생명력을 잠재한 여성성과 만나는 지점. 물론 생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지점도 있고, 의식적으로 가지고
가는 지점도 있구요. 이상하게 첫 시집을 묶을 때는 욕심이 나데요. 기본적으로 제 시집의 큰 줄기는 우리를 가두는 사회적 억압의 고리에 대해
딴지를 걸고자 하는 겁니다. 그런 큰 줄기를 가지고 곁가지들이 생겨 나는 것 같아요.”
그의 시들의 ‘여성성’은 우주적이며
생태적인 자궁인 ‘어머니’라는 상징물과 맞닿아 있다. 특히 시 「어라연」, 「양변기 위에서」, 「엄마의 뼈와 찹쌀 석 되」, 「가을 구름 물
속을 간다」, 「내력」 등 그에게 어머니 혹은 어머니의 이미지는 존재론적인 의미를 떠나 처연하기까지 하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
처연함의 바닥엔 어머니에 대한 각별한 의미가 숨어 있기 마련인데 그에게 어머니는 그가 끄집어 내야 할 화두가 심어져 있다.
“저에게 있어 어머니는 제가 첫 번째 강을 건너가는 화두죠. 하지만 제가 어머니를 통해서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개인적인
의미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어머니들이 살았던 그 시대의 고난사와 그들 삶의 모습이 동시적으로 흐르다가 통시적으로 확장될 때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순환과 생명을 담지한 여성의 역사라는 것을 어머니 몸을 빌려서 표현하는 게 제일 쉬웠어요.”
강릉 고향집 엄마방에서 / 엄마랑
낮잠 든 오후였습니다 / 물너미 하나 엄마 배를 타넘어왔습니다…닥지닥지 붙어있는 늙은 몸 위에서 / 학이 날고 / 거북이 구름 속을 슬슬
기어가더군요 / …엄마 혼례 때 따라온 자개장 속에서 / 엄마랑 내가 흠씬 젖은 가을 오후였습니다
「가을 구름 물속을 간다」 부분
개인적으로 그가 어머니의 몸과 접신(接神)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따로 있다. 그 접신의 과정은 삶과 죽음의 관념을 벗겨
내고 원초적인 희노애락의 굴곡들과 온전히 맞딱 들여지면서 이루어진다.
“저의 어머니가 칠십이세요. 그 나이의 어느
어머니인들 병이 없을까마는 저의 어머니가 굉장히 아프셨어요. 어머니가 굉장히 많이 아팠던 것이 제게 정서적인 충격이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게 만들어요. 어머니는 지독한 사랑의 대상이자 동시에 애증의 대상이지만, 그 몸에는 삶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 몸을 들추면 아주 다양하지만 하나로 출렁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그의 시에서 나오는 파장들이 관능적이라고
한다. 그의 시의 관능성은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두툼한 귀볼과 자비로운 미소에서 풍겨 나오는 그윽한 관능성과 닮아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시가
굉장히 불교적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불교적 관능성? 더러운 물에서 피어나는 연꽃의 관능성이 어찌 천박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서 풍겨 나오는 관능적 향기가 어디서부터 나오는 지 참으로 알기 힘들다. 하지만 명확한 건 그 관능성이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소름을 돋게 만든다는 것이다.
“제 시가 불교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신앙이 없지만 불교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요. 특히 동양학이 가지는 굉장히 중요한 상상력의 카테고리가 문학적인 것과 내밀하게 상통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 자체가
순환성의 여성성이나, 생명을 가진 것들의 생명 꽃 피우기에 닿아 있으니까 필연적으로 만나지는 세계가 불교 같아요. 저에겐 매력이 있고
철학적으로도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천성적으로 좋아하기도 하고, 인연이 많기도 하구.”
불영산 수도암에
갔다가 / 비로자나 부처님과 한바탕 엉겼네/신랏적 부처들은 왜 그리 섹시하냐고 / 슬쩍 농을 건넸더니 반개한 두 눈 스스르 뜨시네 / … 벌집
속으로 무상하게 드나드는 달마들 / 선남선녀 옷자락이 하염없이 스쳐가네 /… 이 뭣꼬! / 부처를 범했더니 거기 내가 있네
-
「벌집 속의 달마」 부분
세속을 등진 그의 언니를 생각해서 일까. 어쩌면 그의 만행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인연들이 그의
시의 관능성을 더욱 향내 짙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시에선 만행을 통해 얻어진 깨달음조차도 비워 내려 하는 것 같아 더욱더 관능적인 것
같다고 필자 나름대로의 느낌을 말하자 짧은 감탄사를 연발한다(아마 그 감탄사는 꿈 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시를 쓸 때는 잘 몰랐는데, 묶어서 나오니까 많은 사람들이 관능적이라는 표현을 하더라구요. 관능적인 것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시가 그런 성격을 띤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그러한 것, 스스로 글이 되어지는 것, 가장 솔직하고 자유로운 지점에서 발현되는
지극한 것이 관능적인 것과 만나질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붓다’와 ‘마르크스’예요. 그는
딸 부잣집의 넷째다(딸 여섯에 아들 하나란다). 부모님은 고향인 강릉에서 살고 지금은 동생 둘과 함께 경기도에서 살고 있다. 당연히 그도 많은
형제들 탓에 학비가 싼 국립 강원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로 가게 된다. 물론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첫 단추는 성공적으로 채워지는 듯 했다.
일학년 때는 장학금을 받는 착실한 대학생이었지만 소위 운동권이 되어가면서 그는 나쁜(?)학생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이학년 때부터
수업에 들어가는 날이 열 손가락으로 꼽히는 데다, 그나마 수업에 들어가선 지도교수랑 싸웠으니 뭘 모르는 어른들 눈에는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신념이 있는 불량학생이었다. 그 당시 문화운동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할 수 있는 길이 사양으로 접어들고
있을 때 그는 학교 안의 동아리 활동을 통해 문화운동의 지형들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때 그에게는 좋은 운동가로 사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것과
동일지점이었던 셈이다.
졸업을 하고 그는 전국학생문학 조직 중의 하나였던, ‘학생노동문학위원회’에서 일년 정도 일을 했지만
그야말로 사양길의 막바지에 접어든 문예운동이 그를 좋은 운동가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십대 초반을 지배한 화두는
당연히 혁명이었죠.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자유케 할 것인가하는. 그 나이에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랬을테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는 내가 나를
자유롭게 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여기까지 형성한 중요한 것들 중 하나는 이십대 초반에 내가
받아들였던 이념들이었습니다. 인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한 이념서들이 나에게 굉장히 중요했죠.”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붓다’와 ‘마르크스’라고 말한다. 이 둘은 그에게 내·외적 자유의
균형을 가져다 준 것이다. 비록 이십대 초반에 꿈꾸었던 혁명이 실패로 돌아갔다 하더라도 그에겐 시가 있었다.
“그 당시
문예운동들이 다 깨지고 있는 상황에서 솔직히 여러 상처들을 입었어요. 그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왔던 다양성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내가 꿈꾸었던 것들이 버려진 느낌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 하다가 그때 시가 내게로 왔던 겁니다. 시가 제겐
구원이었죠.”
‘결핍이 나를 밀고 간다’란 말처럼 사회 속에서 하고자 했던 일들이 내외부적으로 힘들어 진 상황에서 시는
그에게 구원의 밧줄이었던 것이다. 그는 93년부터 본격적인 습작을 시작하게 된다. 3년 뒤인 96년 그의 표현처럼 미친 듯이 습작한 시들 중
「대관령 옛길」 등 열 편의 시가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리면서 등단하게 된다.
그는 등단 소감에서 김남주 선생의 이야기를
했다. 원래 한 문학가에 쏙 빠져 있질 못한다는 그이지만 그에게 김남주 선생은 시적인 영향을 떠나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인간이 사회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수 없을 때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보여 준 사람이 바로 김남주 선생이었다고.
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당당해 졌으면 그는 삶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떻게 아름답게 살 것이냐에 봉착해서 모든 예술이 가능해 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80년대 우리 삶에 부과되었던 소명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그야말로 창백한 미학주의의 울타리안에서는 진정한 문학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스스로가 문학주의적인 사람이 되지 못한다고. 그래서인지 그는 80년대를 빛나게 보냈던 사람들이 다양해진 90년대에 자기
문학을 어떻게 할 줄 몰라하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진다.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이 좀더 당당해졌으면 한다고.
“80년대의
시들이 문학적으로 굉장히 빈곤한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어려웠던 시대에 빈곤한 언어들이 난무했지만 그 속에서도 정말 아름다운 언어들이 있었어요.
그것들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야말로 이분법, 사분법을 해서 일종의 개성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데, 저는
90년대 시단이 그다지 다채롭지 않다고 봐요. 사방에서 다양성을 이야기 하지만 실지로 우리의 문학이 다양성을 얻었는가에 대해선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습니다. 여전히 한 쪽 다리는 어정쩡한 곳에 두고 있고, 몸을 통과하지 않고 관념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기형적인 면이 많다고 봅니다.”
그는 문단의 관습적인 말하기 방식에 안티를 건다. 대표적으로 여성시를 하나의 시 자체로 보지 않고 끝에는 꼭 여성시의 계보라는
말을 붙여 넣는 것에 그는 기분이 나쁘다.
“문단을 점유하고 있는 남성들이 90년대 여성시단을 묶어두려는 경향은 정말 웃긴
일이죠. 특히 최영미나 허수경, 신현림 등 90년대 여성시단의 모습으로 묶여지는 것에 개인적으로 할 말을 잃었죠. 제 시가 최영미의 도발적이고
솔직한 면과 허수경이 갖는 농익을 때로 농익어 터질 듯 한 감수성이 아주 절묘하게 녹아 있다는 말을 간간히 들었어요. 제가 시사적으로 논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 최영미든 허수경이든 내 시 속에서 제대로 구현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전 제 시가 두루 내 것으로 익혀 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순간 순간 깨어있는 게으름으로 그는 현재 전업 시인이다. 말이 좋아 전업이고 ‘화려한 백수’란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백수생활에 별 불만족이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도 않다(돈을 많이 벌지는 않겠지만, 궁하게 살지는 않는다고 그의 사주에 나와 있었단다). 그는
직장생활을 한 번도 안했다. 돈이 필요해 이년 반 동안 학원강사를 해 번 돈으로 아직도 살고 있다. 사는 일에 욕망을 버리면 소비량이
적어진다고. 하지만 그는 속도에 밀려가는 걸 싫어한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나뭇잎이 어깨에 딱 떨어졌어도 ‘이게 여기 앉았네’하고
한참을 보고 있는 여유가 좋아 좀 게으르게 살려고 한다. 순간 순간 깨어 있는 게으름을 위해 조만간 여행을 갔다올 거라는 그는 시가 잘 안되거나
시보다 다른 형식으로 말하고 싶을 때마다 산문을 조금씩 쓴다. 그러다가 음악도 듣고 여유도 좀 보내다가 감동하다가 그렇게 살거란다. 그는 여유가
뭔지 정말 아는 것 같다.
“서른, 그 느낌 정말 괜찮아요.”
그 뜻이 뭔가 알 것도 같다.
여자의 비밀 ; 퍼질러 있음 / 품는 힘 성기완
만약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나는 그를 죽이는 중입니다 잔뜩 피를 빤 선형동물, 동백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그는 떨어져 꿈틀대는 빨간 벌레들을 널름널름
주워먹었습니다 나는 메스를 더욱 깊숙이 박았지요…… 마침내 그의 흉부가 벌어지며 동백꽃이 모가지째 콸콸 쏟아집니다 피 빨린 해골들도 덜걱덜걱
흘러나옵니다 엄마 목에 매달린 아가 해골이 방그레 웃습니다 앉은뱅이 해골이 팔다 남은 사과를 내밉니다 사과는 통째 곯았습니다 그가 번쩍, 눈을
부릅뜹니다 흘러나온 것들을 단숨에, 뱃속에 도로 집어넣습니다…… 나는 날마다 그를 죽일 궁리를 합니다 비대해져 살갗이 몸에 맞지 않게 된 그는
쪼가리 살갗을 들고 매일 내 방으로 옵니다 나는 그의 몸피에 새로 난 살갗을 재봉질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이 일로 생계를 꾸려가지요) 그의
몸은 가속으로 거대해져갑니다 숱한 살갗을 어디에서 벗겨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언제나 싱싱한, 피냄새가 묻어 있습니다…… 오늘밤 나는 그를 죽일
겁니다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진피를 원할 테지요 달콤한, 자장가를 부르며 사타구니 살갗을 벗겨내겠지요 내일이면 그는 핑크빛 합성피부를 가져와
손수 박음질해줄 겁니다 리드미컬한, 노동요를 부르며, 나는 보너스를 받겠지요 한아름 붉은 동백꽃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또
한 번 그를 죽였습니다 나를 고소할 수 있는 법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 혀는, 그의 입 속에, 비굴하고 착하게 갇혀 있으니까요.
김선우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작과비평사, 2000년)
여자의 비밀은 안쪽에 있다.
반대로 남자의 비밀은 바깥에 있다. 바깥에 있으니 비밀이 없는 셈. 그러나 비밀은 있게 마련. 어떻게 그걸 감출까? 남자는 그 비밀을 감추기
위해 끝없이 움직인다. 운동, 속도, 나댕김, 그것들 속에서 비밀의 잔상은 왜곡되고 흩어진다. 그렇게 비밀을 뿌리고 다니니 온 세상에 비밀과
음모가 가득하다.
그 운동의 기본 성격은 살의이다. 운동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부딪침, 충동과 대결과 죽임과 배반들, 그것들이
남자의 비밀을 구성한다. 그런 운동성이 바로 근대를 몰고 온 힘이었다. 남극에 간 아문젠의 운동성, 정충들의 끊임없는 요동과도 같은 힘. 근대
서구가 전 세계의 지도를 자기들 중심으로 재편할 때의 힘이다. 아프리카의 산을 파고 인도의 떡고물같이 고운 흙을 헤집어 광물과 고운 씨앗을 캐낸
힘이다. 여자의 비밀은 그 힘들이 길길이 뛰며 남긴 상처의 기억들로 구성된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목포항」 부분
여자는 근본적으로
아픔인 그 비밀을 품고서 퍼질러앉아 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멍하니 그 비밀의 근원을 반추하면서 남아 있다. 김선우씨의 시는 그렇게
퍼질러앉아 있는 존재로서의 여성적 조건에서 출발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첫눈 내린 어제 저녁 세탁소집 여자가 우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자주 운다 차양 밑에 빼곡하게 걸린 옷들 밑에서거나 옆집 애완센터 토끼장 앞에서거나
- 「그녀의 염전」 부분
김선우씨에게 여성들은 시간성을 갖기보다는 보편적인 동시성 속에 있다. 바리공주는 명성황후가 되고 다시 황진이가 되고
난설헌이 되며 어머니가 된다(「물 속의 여자들」). 할머니는, 나는, 어머니는, 동네 아줌마는, 모든 여성은 집이다.
집 속에 집만한 것이 들어 있네
- 「무꽃」 부분
그 존재는
일차적으로 집이다. 그 집은 밥그릇으로(“이 집 한채는/쥐들의 밥그릇” 「우리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꽃으로,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구닥다리 자개장으로 (「가을 구름 물속을 간다」), 심지어 똥으로(「양변기 위에서」) 변형되어 나타난다. 그 집은 결국 무덤이고
죽음이다. 그래서 그 속에는 궁극의 슬픔이 담겨 있다. 그 슬픔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묘사하는 대목은 아름답다.
물방울은 동그란 무덤이야 우린 누구나 무덤의 집이라구 따스한, 내 가슴에 떡잎처럼 매달려 우는 어린 애인,
- 「무덤이 아기들을 기른다」 부분
그 집, 그 무덤은 동시에 자궁이기도 하다. 자궁에까지 되돌아가는 과정은
퇴행적이지만, 동시에 자궁은 생성의 힘이다. 거기서 역설의, 반전의 계기가 마련된다. 앞 시를 계속 따라가보자.
“내 가슴에
떡잎처럼 매달려 우는 어린 애인,/덜 여문 내 꽃자리로 사르륵 통증이 지나갔고 나는 무덤을 열어 젖꼭지를 물려주었지만” 자궁은 모든 것들을 엮어
존재로 변화시키는 마술상자이기도 하다. 그 긍정성은 “아이를 갖고 싶어/새로이 숨쉬는 법을 배워가는/바다풀 같은 어린 생명을 위해/숨을 나누어
갖는/둥근 배를 갖고 싶어”(「입춘」)하는 자궁의 자발성에서부터 비롯한다.
그 자발성은 품는 힘이다. 품는 힘은 살섞음이다. 그건
섹스고 먹는 일이고 그저 혼자 뜨거워지는 일이다(“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쓰려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얼레지는 얼레지/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얼레지」). 그 안에서 모든 슬픔이 녹고 즐거움이 고통스러운 비밀의 끝자락에서 피어오른다.
애인들. 그 비밀과
고통과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 애인들은 때로 남자고 때로는 여자다(“그녀의 입술이 내 가슴에 닿았을 때/알 수 있었다, 흔적/휘파람처럼 상처가
벌어지며/그녀가 나의 세계로 걸어들어왔다”「술잔, 바람의 말」 ).
그 구별이 없다. 품는 힘은 그 구별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자궁의 꽃봉오리 안에는 구별 없는 원시의 기쁨이 있다. 이제부터는 상승이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비밀을 구성하게 된 계기의
일부인, 살의의 움직임이 도대체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는 김선우씨의 시에서 속시원한 대답을 구할 수가 없다.
상처의 쟁쟁함과
퍼질러앉음의 슬픔에 대해서는 무기 어린 언어들이 잘 드러내 주고 있는 반면, 그 상처의 근원에 대한 시적 파헤침이 구체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남자는 무엇인가? 사실 별로 남자에 대한 묘사가 많지 않다. 남자는 애인이거나, 애인이었거나,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버지이거나,
그렇지도 않으면 그냥 동네 아저씨이다. 그들은 여성과 운명을 나누어 가진 슬픈 존재들로 자주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성이 어떤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때로는 그 힘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하는 남자들이 있다; “죽여줄게.” 그걸
긍정하면 남성적 움직임의 살의를 긍정하는 것이 될 텐데, 그 위험을 ‘퍼질러 있음/품는 힘’이 어떻게 극복할지가 궁금하다. 물론 시인의 방식은
명확하다. 그 살의의 움직임을 품고 죽임을 당하는 동안 그 살의 역시 죽는다. 시인이 그걸 끌어안고 죽인다.
오늘밤 나는
그를 죽일 겁니다 그는 내게 남은 마지막 진피를 원할 테지요 달콤한, 자장가를 부르며 사타구니 살갗을 벗겨내겠지요
- 「만약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부분
품는 힘이 살의를 살해하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과정이다. ‘움직임/살의’와
대척점에 있는, ‘퍼질러 있음/품는 힘’의 ‘정적인 다이나미즘’이 대안인 것은 너무나 확실하다. 나무들, 텔레파시, 망각, 바람의 소통, 그런
것들과 이 품는 힘은 하나이다. 그래서 여성적인 것이 중요한데, 그래서 더더욱, 비밀스러운 안쪽의 상처가 구성된 경위를 샅샅이 따지는 것도
중요하다. ‘움직힘/살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밝히는 것 말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뱃속에 넣고 퍼질러 있어야 진짜 품는 힘이긴 하지만.
(성기완 서울 출생. 1994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가 있음.
- 시인들이
함께 만드는 계간 시평 창간호 『거미가 짓는 집』(바다출판사, 2000) 中에서)
생명의 태초에 女性이 있었나니…(경향신문,
책마을)
-김선우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시인은 등단 7년에 시집 2권을 낸 신진이지만
이미 독특한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확실한 자기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신이 여성임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는 듯한 올해 서른살의 이 시인은 자연과
생명의 근원인 여성의 몸을 강렬하고도 풍요로운 설화적 이미지로 풀어내는 성숙한 시 세계를 자랑한다.
2000년 첫 시집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창작과비평사)으로 여성의 건강성이라는 관념을 육화해 보였던 그가 두번째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창비)를 펴냈다. 여성성에 대한 탐구가 더욱 무르익었는데 여성성·모성성은 이제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명체의 원초적인 본성으로
확장된다. 모성은 생명체가 생명을 실현하는 여정의 산물이며 그 여정 자체를 의미한다.
이번 시편들은 피, 눈물, 생리혈,
양수, 오줌, 똥 등 살아있는 몸 속에서 생성되는 생즙의 이미지로 독자를 압도한다. 이런 체액들은 몸을 통해 진행되는 탄생과 죽음, 먹고 먹힘,
출산과 출생이라는 생명의 사건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몸의 분출물이다. 시인은 아이를 낳는 여성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가 자궁을 지닌 존재라고
믿는다.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쌍이 흘러나오고/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에
붉은,/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물로 빚어진 사람’ 일부)
생명탄생을 예비하는 몸 속은 바다와 마찬가지이며 이곳에서 계수나무·달팽이·불새가 태어난다. 돌이켜보니 생리혈이 묻은 흰
천으로 비를 불렀다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순환하는 생명체의 서사로 이해된다. 이런 시인에게 여성들의 달거리(月經)는 경계를 뛰어넘어(越境)
생명의 끈을 잇는 행위이며 여성인 자신의 시쓰기도 두 가지 의미의 월경과 같다. 이런 연유로 수많은 몸들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얽혀있으며 한
몸의 입구가 다른 몸의 출구인 69의 형상으로 연결돼 있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방이 무덤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더니만
사방이 69 천지인 거라 방구들과 천장의 69, 전등과 전등갓의 69, 문틀과 문의 69, 한 시와 두 시의 69, (…) 죽은 것들과 산
것들의 69, 어머니 태 속의 나와 어머니의 69’ (‘69-삼신할미가 노는 방’ 부분)
그럼에도 많은 순간 자신을
하나의 개체로 경험하는 인간은 허무와 슬픔을 맛보는데 시인은 아름다움과 죽음으로 이를 상쇄한다. 표제작 ‘도화 아래 잠들다’는 고달픈 생고를
받는 낙화 이전의 여성의 내면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낱 도화 아래/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번 대면하기 위해/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내 온
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아직도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도화 아래 잠들다’ 일부)
김시인의 시가 든든한 까닭은 기존 여성시들이 지녔던 억압적인 내면과 몸에 대한
피해의 기억 대신 적극적이고 쾌활한 시적 수사를 구사하면서 우주적 열락을 자극하고 잊혀졌던 몸의 생동성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8월말
펴낸 어른을 위한 동화 ‘바리공주’(열림원·2003년)에서도 ‘바리공주’의 희생자적 면모 대신, 아비를 살리는 생명수를 얻기 위해 만났던
무장승을 훤칠한 청년으로 변모시켜 열띤 사랑을 나누는 적극적 여성의 모습을 선보였다.
그는 강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96년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으며 부천 근처에서 살다가 3년전 강원 문막으로 거처를 옮겨 자연과 벗삼고 있다. 자신과 11살 차이가
나는 언니인 청도 운문사의 영덕 스님이 물질보다는 영적 풍요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준 덕분에 시를 쓰게 됐다고 고백한다.
〈한윤정기자 yjhan@kyunghyang.com〉
피어라, 석유!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 나를 꽃 피워주세요 당신의 모 깊은 곳 오래도록 유전해온
검고 끈적한 이 핏방울 이 몸으로 인해 더러운 전쟁이 그치지 않아요 탐욕이 탐욕을 불러요 탐욕하는 자의 눈앞에
무용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무력한 꽃이 되게 해주세요 온몸으로 꽃이어서 꽃의 운하여서 힘이 아닌 아름다움을 탐할 수
있었으면 찢겨져 매혈의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어머니, 당신의 혈관으로 화염이 번져요 차라리 나를 향해 저주의 말을 뱉으세요
포화 속 겁에 질린 어린아이들의 발 앞에 검은 유골단지를 내려놓을게요 목을 쳐주세요 흩뿌리는 꽃잎으로 벌거벗은
아이들의 상한 발을 덮을 수 있도록 꽃잎이 마르기 전 온몸의 기름을 짜 어머니, 낭자한 당신의 치욕을
씻길게요
(현대문학상 수상 詩)
화전(火田)에서 소금을 캐다
강원도 산골 깍아지른
비탈의 화전을 지난다 삼복 무더운 날 소금단지를 열었을 때 훅, 끼쳐오던 소금내음 밭고랑에 물큰하다 고갯길 지나 하늘벽 지나
시골집 뒤울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 한 자락 짜디짜다 하루 세 번 손가락 끝에 불꽃 을 매달고 소신공양하는 낡은 집 굴뚝으로 참매미
울음ㅅ리 소금짐을 지고 온다 지상의 며칠을 필사의 노래로 오체투지 하늠 매미울음 짜디짜다 몸 피할 바람 한 점 없는 불붙은 폭
염의 날이라야 소금밭에는 향기로운 소금이 오신다고 하였 다 맨무릎으로 땅에 엎드린 집 한 채 속에 오체투지로 웅크 린 검은
아궁이, 한 끼 밥도 사랑도 오체투지 없이는 허락되 지 않는 화전의 타는 맨발이 짜디짜다
헤모글로빈,알코올,머리칼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든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바리케이드 위에 살점을 널던 팔십년대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을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해실해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 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알리아 꽃들이(기억나요?) 뭉텅뭉텅 꿈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편지를 썻다가 구겨버렷어요
- 내 몸은 나를 보호할 의지가 없나봐 방금 당신께 전보를 쳤습니다 -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 다알리아
꽃모갱이를 꺾으며 울었습니다
우리 말고 또 누가 이 밥그릇에 누웠을까
이 집 한 채는 쥐들의
밥그릇 바퀴벌레들의 밥그릇 이 방을 관 삼아 누운 오래 전 죽은 자의 밥그릇 추억의, 욕창을 앓는 세월의 밥그릇
맵고 짠 눈물 찐득찐득 흘려대던 병든 복숭아나무의 밥그릇 멍든 구름의 밥그릇 상처들의, 이 집 한 그릇
밥그릇 텅텅 비면 배고플까봐 그대와 나 밥그릇 속에 눕네 그대에게서 아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 눈물 많은
밥냄새 나네
완경(完經)
수련 열리다 닫히다 열리다 닫히다 닷새를
진분홍 꽃잎 열고 닫은 후 초록 연잎 위에 아주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선정에 든 와불 같다
수련의 하루를 당신의
십년이라고 할까 엄마는 쉰살부터 더는 꽃이 비치지 않았다 했다
피고 지던 팽팽한 적의(赤衣)의 화두마저 걷어버린
당신의 중심에 고인 허공
나는 꽃을 거둔 수련에게 속삭인다 폐경이라니, 엄마, 완경이야,
완경!
거꾸로 가는 생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나이 서른에 나는 이미 너무 늙었고
혹은 그렇게 느끼고 나이 마흔의 누이는 가을 낙엽 바스락대는 소리만 들어도 갈래머리 여고생처럼 후르륵 가슴을 쓸어 내리고
예순 넘은 엄마는 병들어 누웠어도 춘삼월만 오면 꽃 질라 아까워라 꽃구경 가자 꽃구경 가자 일곱 살배기 아이처럼 졸라대고
여든에 죽은 할머니는 기저귀 차고 아들 등에 업혀 침 흘리며 잠 들곤 했네 말 배우는 아기처럼 배냇니도 없이 옹알이를
하였네
거꾸로 가는 생은 즐거워라 머리를 거꾸로 처박으며 아기들은 자꾸 태어나고 골목길 걷다 우연히 넘본 키작은
담장 안에선 머리가 하얀 부부가 소꿉을 놀 듯 이렇게 고운 동백을 마당에 심었으니 저 영감 평생 여색이 분분하지 구기자
덩굴 만지작거리며 영감님 흠흠, 웃기만 하고 애증이랄지 하는 것도 다 걷혀 마치 이즈음이 그러기로 했다는 듯 붉은 동백
기진하여 땅으로 곤두박질 칠 때 그들도 즐거이 그러하리라는 듯
즐거워라 거꾸로 가는 생은 예기치 않게 거꾸로 흐르는
스위치백 철로 객차와 객차 사이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저 나오는 강릉 가는 기차가 미끄러지며 고갯마루를 한순간 밀어 올리네
세상의 아름다운 빛들은 거꾸로 떨어지네
나생이
나생이는 냉이의 내 고향 사투리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나생이꽃 피어 쇠기 전에 철따라 다른 풀잎 보내주시는 들녘에 늦지 않게 나가보려고 조바심을 낸
적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그 자그맣고
매촘하니 싸아한 것을 나생이라 불렀는데 그 때의 그 '나새이'는 도대체 적어볼 수가 없다
흙살 속에 오롯하니 흰 뿌리
드리우듯 아래로 스며드는 발음인 '나'를 다치지 않게 살짝만 당겨 올리면서 햇살을 조물락거리듯 공기 속에 알주머리를
달아주듯 '이'를 궁글려 '새'를 건너가게 하는
그 '나새이', 허공에 난 새들의 길목 울 엄마와 할머니와
순이와 내가 봄 들녘에 쪼그려앉아 두 귀를 모으고 듣던 그 자그마하나 수런수런 깃 치는 연두빛 소리를 그 짜릿한
요기(尿氣)를
도화 아래 잠들다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처럼 진창을 떠다니고 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물으며 길을 잃고 싶었으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 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 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낱 도화 아래 묘혈을 파고 눕네 사모하던 이의 말씀을 단 한 번 대면하기 위해
일생토록 나무 없는 사막에 물 뿌린 이도 있었으니 내 온몸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꽃잎 받으며 그대여 내 상처는 아무래도
덧나야겠네 덧나서 물큰하게 흐르는 향기, 아직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음을 증거해야겠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를 무릅써야겠네
아주 오래도록 그대와, 살고 싶은 뜻밖의 봄날 흡혈하듯 그대의 색을 탐해야겠네
빈집
불현듯 강바닥으로 내려앉는 빈집
황지였나 사북이었나 고분처럼 폐석더미 쌓인 마당
발가벗은 아이 혼자 놀고 있었다
무엇이 고팠던 걸까 어린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토닥토닥 흙집을 만들던 마당가
이따금씩 개미가 손등을 타오르고 폐석더미 옆 고즈넉이 깨꽃 붉었다
흰 구름 데리러 간 엄마는 왜 안 오나
깨꽃 입술만 흙집 싸리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아름다운 식탁
사마귀는 사랑 속에서 살을
나눈다
사랑한다고 믿을 때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식탁
당신을 안고 빛나는 어둠을 먹으러 가고
싶다
어미木의 자살 1
그녀를 지날 때 할머니는 합장을 하곤 했다. 어린 내가 천식을
앓을 때에도 그녀에게 데리고 가곤 했다. 정한 물과 숨결로 우리 손주 낫게 해줍소. 그러면 나무는 솨아, 솨아아 소금내 나는 바람을 일으키며 내
목덜미를 만져주곤 하였다.
오래된 은행나무. 노란 은행잎이 꽃비 내리는 나무 아래 할머니가 오줌을 누고 계셨다. 반가워 달려가니
머리가 하얀 할머니는 엄마로 변해 있었다. 참 이상한 꿈길이지. 오줌 방울에 젖은, 반짝거리는 은행잎이 대관령 고갯마루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죽었다고, 시름시름 앓더니 어느날 벼락을 맞았다고 했다. 그 땅에 새 길이 포장될 거라고, 길이 나면 땅값이 오를 거라고
은근히 힘주어 한 사내가 말하였다.
이상도 하지, 자살이란 말이 떠오른 건. 꿈 없는 길, 인간에 절망한 그녀의 자살의지가 낙뢰를
불러들였는지도 몰라. 부러진 가지, 그녀가 매달았던 열매 속에서 피흘리는 엄마들이 걸어나왔다.
대관령을 넘으며 내가 꾼 낮꿈은
엄마가 나를 가질 때 꾸었다는 태몽과 닮이 있었지만, 오래된 은행나무, 그녀를 몸삼아 산보하던 따뜻한 허공의 틈새로 절룩거리며 걸어오는 늙은
오후가 보였다. 순식간에 늙어버린 대기의 주름살 속으로 반짝거리며 사라져가는 태앗적 내가 보였다.
얼레지
옛 애인이 한밤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자위를 해본 적 있느냐 나는 가끔 한다고 그랬습니다 누구를
생각하며 하느냐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벌 나비를 생각해야한 꽃 이 봉오리를 열겠니 되물었지만,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얼레지…… 남해 금산 잔설이 남아 있던 둔덕에 딴딴한 흙을 뚫고 여린 꽃대 피워내던 얼레지꽃 생각이
났습니다 꽃대에 깃드는 햇살의 감촉 해토머리 습기가 잔뿌리 간질이는 오랜 그리움이 내 젖망울 돋아나게 했습니다
얼레지의 꽃말은 바람난 여인이래 바람이 꽃대를 흔드는 줄 아니? 대궁 속의 격 정이 바람을 만들어 봐, 두 다리가
풀잎처럼 눕잖니 쓰러뜨려 눕힐 상대 없이도 얼레지는 얼레지 참숯처럼 뜨거워집니다
무덤이 아기들을
기른다
버즘나무 이파리 서쪽으로 눕던 길, 그 길 끝에 놓여 있던 비둘 기의 주검, 선명한 자동차 바퀴자국. 새의
내장도 무겁구나, 파리해진 잎사귀의 반쪽을 가리며 오래 도록 주검을 맴돌던 슬픈 애인이 펄럭였다 술잔 속에서 끊임없이 피 묻은
깃털이 올라오던, 그날 애인을 안고 속삭였던가 갓 태어난 아기들의 뱃속을 생각해봐 작은 정원 같은, 붉은 다 알리아
콩닥콩닥 김을 뿜고 삐비풀이 연초록 길을 만들이 노랑 주홍빛 채송화,토란잎 위에서 장난치는 피톨들, 붉고 흰 물방울. 물방울은
동그란 무덤이야 우린 누구나 무덤의 집이라구 따스한, 내 가슴에 떡잎처럼 매달려 우는 어린 애인, 덩 여문 내 꽃자리 로 사르륵
통증이 지나갔고 나는 무덤을 열어 젖꼭지를 물려주었 지만
어떻게 울음을 그쳤는지 모른다 그날, 내 애인은
동구 밖에 비둘기를 묻어주고 내 등에 업혀 돌아오던 다섯살배 기 동생이 되어 내게 말했다 고마워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어줄
게. 향긋한 냄새가 그애의 정원에서 풍겨나와 핑그르르, 내 무덤 에서 정말로 젖이 돈 것만 같았다
오, 고양이
!
손가락 끝에서 피 한 방울 받아 현미경에 얹는다 보세요, 당신의 적혈구들이예요 몸 밖에서 나를 쏘아보는 내 피 한
방울 수백 마리 고양이 눈알을 삼킨 듯 검사실의 모니터가 오글거리는 눈동자로 발광을 한다
어느 산길에서 갓 낳은
산고양이 두 마리를 보았다 어린 고양이들 혀를 내밀며 가을볕을 냉큼냉큼 받아먹고 있었는데 이뻐서 그저 무심히 쓰다듬었던
노랑털 어린것은 다음 날 죽어 있었다 어린것의 몸에 밴 사람 냄새에 어미는 새끼의 숨통을 끊어놓고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한 방울 피가 방주를 밀어올리며 범람하는 모니터 안, 싸늘하게 식은 어린것의 눈알과 제 새끼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어미의 눈알이 나를 노려본다
어느 깊은 새벽 검은 도독고양이에게 돌팔매질을 한 적 있다 밤마다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놓는 도둑고양이 산으로 가,비굴하게 인간의 쓰레기 따위 뒤지지 말고 돌아가 제발,돌멩이를 던지던 내 맨발이 가로등
불빛에 찔려 피 흘리던 밤 후미진 담벼락을 걷던 달 속에서 눈썹 성근 새끼고양이 밤새 울고
보아라 무엇인가 그리울 때마다
너희가 흘려놓은 저 적의를 찢어발겨 놓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얼굴을 쳐들고 나를 쏘아보던 이글거리는 눈알, 오 내 피 속의 고양이,
내 안의 그리운 것들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오늘도 몇 구의 고양이 시체를 넘어왔다 이 많은 고양이는 다 어디서
오는지 국도에 눌러붙은 수많은 고양이 가죽들 길을 물들이면서 천천히,야금야금,전시릉 샅샅이 훑으며 스며들다가 폭신한 살에 싸여
식탁 위에 올려진 내 몸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단번에 찢어놓고 간다 식탁에 떨구어진 내 피 한 방울 속에서 나를 쏘아보는 저
수천의 눈동자들!
별의 여자들
태양의 흑점이 커지던 날,바람이 사라졌다 내가 도달한 다른 우주의 문은
찬바람이 걸어간 산길이었다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나는 지구 몸속의 다른 별에 들어섰다 내 몸속에 내가 모르는 다른
우주가 자전과 공전을 거듭하는 것이 훤히 들여다보였고 화창하게 갠 날이 저녁 가까이 날고,수많은 물고기 뼈들이 공중을 헤엄치며 아무
데서나 사랑을 나누었다
내가 셈할 수 있는 인간의 시간 아득한 저편으로부터 별의 여자들은 내내 이곳에서 살아왔다 잇꽃빛
번지는 노을 속에 여자가 그늘을 묻는다 여자의 푸른 유방에서 죽은 별들이 흘러나왔다 여자가 텅빈 우주를 자궁 속에서 꺼낸다 지구
표면으로 통하는 모든 문 위에 붉은 부적을 걸고 싶은 날,내 몸에 묻어 온 독기에 찔려 여자의 손이 자꾸 허공을 짚는다 둥글고 푸른
별의 생장점이 꼬리를 끊고 흘러갔다 나는 속죄의 말을 찿지 못했다
구불구불한 꿈을 한없이 걸어 서늘한 산길이 걸어
나온다 인간의 마을이 저물고 내 몸 깊숙한 곳의 뼈들이 오래전 은하수의 수로를 따라 흘러갔다 화창하게 갠 날에 가벼워지는
목숨들,화창한 저물녘에 별의 여자들이 자기 몸을 비우고 또 비운다 텅 빈 여자의 중심 지구 몸속의 또 다른 별에서 지구가 눈물 한
방울로 뜨거워져 간다.
간이역
내 기억 속 아직 풋것인 사랑은 감꽃 내리던 날의 그애 함석집 마당가
주문을 걸 듯 덮어놓은 고운 흙 가만 헤치면 속눈썹처럼 나타다던 좋.아.해 얼레꼴레 아이들 놀림에 고개 푹 숙이고 미안해
- 흙글씨 새기던 당두마을 그애 마른 솔잎 냄새가 나던
이사오고 한번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나는 남자를
알고 귀향길에 때때로 소문만 듣던 그애 아버지 따라 태백으로 갔다는 공고를 자퇴하고 광부가 되었다는 급행열차로는 갈 수
없는 곳 그렇게 때로 간이역을 생각했다 사북 철암 황지 웅숭그린 역사마다 한그릇 우동에 손을 덥히면서 천천히 동쪽 바다에
닿아가는 완행열차
지금은 가리봉 어디 철공일 한다는 출생신고 못한 사내아이도 하나 있다는 내 추억의
간이역 삶이라든가 용접봉,불꽃,희망 따위 어린날 알지 못했던 말들 어느 담벼락 밑에 적고 있을 그애 한 아이의 아버지가
가끔씩 생각난다 당두마을,마른 솔가지 냄새가 나던 맴싸한 연기에 목울대가
아프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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