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커처/서연우
귀걸이는 그려 넣지 마세요
축제장의 한 코너에 나도 국화처럼 앉았다
당신이 보지 않을 때 나는 봉오리였다가
당신이 바라볼 때 나는 노랗게 폈다
마주 보는 당신이 웃었다
마주 보는 나도 웃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이
서로를 바라보는 심장이 재빨리 흔들렸다
대기실 TV에 나온 배우같이
서로 다르게 흐르는 공간의 공명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서 나를 보고
당신은 내게서 당신을 봤다
우리는 어떤 얼굴로 마주하게 될까요
같은 곳에 있어도 같은 곳을 보지 않는
내가 보는 나와 당신이 보는 나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를 당신을 뺀 우리는
상상한 것과 닮은 모습을 기다렸다
익숙한 것에 익숙해진 흉내
꾸며진 문답의 답답함이 기지개를 켰다
눈코입이 잘 웃고 있는 그림 속 윤곽
모든 게 드러나는 공모의 순간
우리, 이제 놀라야 합니까
바로 보면 당신 거꾸로 보면 나
당신이 보면 나 내가 볼 땐 당신
인파 속에서 짐작으로 번역 가능한 해답
나는 겉으로 웃고 당신은 속으로 웃고 있었다
⸻계간 《시로 여는 세상》 2019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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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우 / 1968년 경남 창원 출생. 2012년《시사사》로 등단. 시집 『라그랑주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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