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는 숲/안희연
빈방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돌처럼 얹고서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흩어진 옷가지들을 개키며
몇 줄의 문장 속에 너를 구겨 담으려 했던 나를 꾸짖는다
실컷 울고 난 뒤에도
또렷한 것은 또렷한 것
이제 나는 시간을 거슬러
한 사람이 강이 되는 것을 지켜보려 한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들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흙을 퍼 나르는
분주한 발소리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분명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사방에서 장정들이 몰려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파고 파고 파고
심지가 타들어가듯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가만 보니 네 침대가 사라졌다
깜빡 잠이 든 사이
베개가 액자가 사라졌다
파고 파고 파고
누가 누구의 손을 끌고 가는지
잠 속에서 싱싱한 잠 속에서
나는 자꾸만 새하얘지고
창밖으로
너는 강이 되어 흘러간다
무릎을 끌어안고
천천히 어두워지는 자세가 씨앗이라면
마르지 않는 것은 아직
열려 있는 것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린다
세상 모든 창문을
의미 없이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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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을 낸 다음 마련된 독자들과 만나는 어떤 자리에서였습니다. “시인이 아끼는 시가 궁금해요.” 독자가 물었습니다. “「너를 보내는 숲」이라는 시에요. 요즘 들어 좀 더 좋아하게 됐어요. 독자들도 좋아해주시는 것 같고요.”
안희연 시인의 첫 시집에서 이 시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시인은 말합니다. “상실, 이별에 대한 이야기에요. 남겨져 있는 사람의 몫에 대해서요. 저는 상실이나 죽음을 품고 간직하고 복기하면서 사는 편이어서 그런 호흡으로 쓴 시들이 많아요. 그런데 두 번 다시는 이런 시를 못 쓸 것 같다고 느끼는 시 중에 한 편이에요. 죽은 사람의 방을 치우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죠.”
세 번이나 거듭되는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란 시행은 엄혹한 현실을 직시하라는 깨우침입니다. 차가운 숲속 땅을 ‘파고 파고 파고’ 있는 곁에서 맡는 싱싱한 흙냄새. 죽은 사람은 너인데 그게 곧 나인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세월호(2014.4.16) 참사의 시편들은 시인이 스스로 만들지 않아도 만들어지거나 만들도록 그녀를 고통스럽게 추동하는 윤리학을 보여준다고 김수이 평론가는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남학생의 아버지가 며칠 전 12월 27일 경기 화성시 한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숨졌다는 기사가 문득 차마 잊을 수 없는 그 슬픔을 세밑의 우리들에게 일깨워줍니다.
강인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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