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1월 1일 일요일 (외 2편)/ 김민정

시치 2019. 12. 31. 22:35

11일 일요일 (2)/ 김민정

 

곡두 1

 

   

 

낮에는 도끼와 톱을 봤고

밤에는 꿩과 토끼를 봤다.

 

시에다 씨발을 쓰지 않을 것이고

눈에다 졸라를 쓰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눈 내렸다.

머리로 가 붙을 수 있는 대목은 다

덮이었다.

더도 덮일 것이었다.

 

쑥차 마시면서

쑥대머리 들었다.

 

 

 

꿈에 나는 스리랑카 여자였다

곡두 5

 

 

등에 업은 포대 자루에 의지한 채

찻잎을 땄다.

할당량이 주어져 있으므로

있는 대로 땄다.

닥치는 대로 땄다.

빠르게 땄다.

많이 땄다.

따기밖에 더 할밖에, 그러니

죄다 땄다.

다 땄다.

 

잎을 따면 그 즉시로 새잎이 돋았다.

징글징글한 녹색의 횡포였다.

무서운 건 노동이 아니라

나무였다.

나무가 많으니 사라지는 건

손이었다.

20킬로그램을 채우면 2천 원을 건네는

것도,

.

 

포대 자루를 탈탈 털었을 때

잘린 여자들의 손이 우르르 쏟아졌다.

정육점 빨간 대야 위에

다소곳이 쌓여 있던 돼지 발들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소리처럼

와르르

꿈이랍시고 깨어났는데,

 

네트 사이로 흰 배구공이 오가고 있었다.

통 하면 통 하는 흰 배구공의 랠리

까무잡잡한 피부에 바싹 올려 묶은 곱슬머리에

금빛 링 귀걸이를 한 스리랑카 선수들이

스파이크로 내리꽂히는 흰 배구공에 자꾸만

맞고 있었다.

한 템포 빠르게 뻗지 못하고

두 템포 느리게 갖다 대던 그이들의 손

것도,

두 손에

손들.

 

게임 스코어 3 0

19회 아시아 여자 배구 선수권 대회에서

퍼펙트 승리를 기록한 한국 선수들이

손에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쳤다.

내미는 손들이 모여 원이 되는 함성

그 너머로

굽슬굽슬하고 시꺼멓고 긴 제 머리카락을

있는 대로 따다,

닥치는 대로 따다,

빠르게 따다,

따기밖에 더 할밖에. 그러니

죄다 따다,

그 즉시로 풀기만을 반복하던

스리랑카 선수의

것도,

.

 

 

 

나는 뒤끝 짱 있음

곡두 6

 

 

모닝콜은 있고 굿모닝은 없음

굿모닝은 있고 기지개는 없음

기지개는 있고 휘파람은 없음

휘파람은 있고 신바람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개똥은 있고 개는 없음

개는 있고 개똥 주인은 없음

개똥 주인은 있고 개똥 치운 주민은 없음

개똥 치운 주민은 있고 개똥 치운 주민에게 사과하는 개똥 주인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출근은 있고 설렘은 없음

설렘은 있고 잔고는 없음

잔고는 있고 이자는 없음

이자는 있고 임자는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애무는 있고 섹스는 없음

섹스는 있고 삽입은 없음

삽입은 있고 느낌은 없음

느낌은 있고 사랑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도토리묵은 있고 도토리는 없음

도토리는 있고 다람쥐는 없음

다람쥐는 있고 쳇바퀴는 없음

쳇바퀴는 있고 철창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소등은 있고 퇴근은 없음

퇴근은 있고 수면은 없음

수면은 있고 숙면은 없음

숙면은 있고 단꿈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환각은 있고 환상은 없음

환상은 있고 기대는 없음

기대는 있고 포옹은 없음

포옹은 있고 당신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나가는 상여 보며 밥 비비는 심청은 있고 들기름은 없음

들기름은 있고 고소함은 없음

고소함은 있고 방앗간은 없음

방앗간은 있고 떡 주무르는 사람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떡 주무르듯 뇌병변의 손자를 마사지하는 할머니가 있고 똥오줌 가리는 손자는 없음

똥오줌 가리는 손자는 있고 싸가지 있는 손녀는 없음

싸가지 있는 손녀는 있고 용돈 오지게 주는 손녀는 없음

용돈 오지게 주는 손녀는 있고 자손 중에 나는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구두 밑창에 들러붙은 개똥 떼면서 개씨발거리는 내가 있고 약은 없음

약은 있고 물은 없음

물은 있고 불은 없음

불은 있고 내일은 없음

없음. 없음. 없는데 참

나는 뒤끝 짱

있음

 

  

          시집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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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 1976년 인천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및 대학원 수료. 1999문예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 산문집 각설하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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