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당신을 찾아서 (외 2편)/정호승

시치 2020. 1. 29. 12:30

당신을 찾아서 (2)/정호승

 

 

잘린 내 머리를 두 손에 받쳐 들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만나고 싶었으나 평생 만날 수 없었던

당신을 향해

잘린 머리를 들고 다닌 성인들처럼

걸어가다가 쓰러진다

따스하다

그래도 봄은 왔구나

먼 산에 꽃은 또 피는데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진달래를 물고 나는 새들에게 있는가

어떤 성인은 들고 가던 자기 머리를

강물에 깨끗이 씻기도 했지만

나는 강가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영원히 쓰러져 잠이 든다

평생 당신을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나뒹구는 내 머리를

땅바닥에 그대로 두고

 

 

 

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

 

아파트 일층 베란다

아내가 만든 헌식대 플라스틱 물통에

새들이 몇날 며칠 날아와 물을 마셔도

물이 늘 남아 있다

물속에 가끔 새똥도 들어 있어

처음에는 그 물을 자꾸 버렸으나

이제는 내가 마신다

새들이 나를 위해 남겨놓았으므로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만 마시려고 들다가

강가의 조약돌에 고인 물마저 마시지 못하고

목마를 때 오히려 사막을 마시다가

기어이 절벽을 기어올라 소금물을 마시고

평생 목이 말라

눈물마저 말라

이제는 마셔도 마셔도 목마른 인생의

나를 위해 남겨놓았으므로

이제 와 내가 죽을 때에

새들이 마시는 물을 마신다

 

 

 

지옥은 천국이다 

 

 

지옥은 천국이다

지옥에도 꽃밭이 있고

깊은 산에 비도 내리고

새들이 날고

지옥에도 사랑이 있다

 

나 이 세상 사는 동안

아무도 나를 데려가지 않아도

반드시 지옥을 찾아갈 것이다

 

지옥에서 쫓겨나도

다시 찾아갈 것이다

당신을 만나

사랑할 것이다

 

 

 

            ⸻시집 당신을 찾아서(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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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당선.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포옹』 『밥값』 『여행』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 『당신을 찾아서, 시선집 흔들리지 않는 갈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수선화에게, 동시집 참새,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 『연인』 『울지 말고 꽃을 보라,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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