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나의 해골에게 / 정병율

시치 2019. 8. 3. 01:35

나의 해골에게 / 정병율


  고마워, 너의 바스러지도록 투명한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시켜 주어서 말이지


  사실은 해골, 너처럼 깨끗하고 담백한 것도

  세상에는 없지 그러나 나는 슬프단다 살아봤댔자 짧게는 내일,


  길게는 이십 년이 전부일 텐데 왠지 너와 마주하자니 낯설기만 하네


  지금이야 아무렴은 어떻겠니?


  부디 그 때는 나와 네 해골과 마주하고선 두 번 다시

  티끌하나 없이 똑똑하다거나 선견지명이 다분해


  결코 생을 부끄럽지 않게 구가하였노라고

  서로 자랑은 하지 말기


  땅속에 파묻히던 한줌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뿌려지든


  섬뜩하고 모골 자체가 송연한 해골아! 네가 나이듯

  또 내가 너로 탈을 쉽게 쓰듯이 세상에 남아있는 자들에게만큼은


  나날이 그런 썩어가는 해골로 기억되기 싫다면


  이쯤에서 그래도 영구히 잊지 못할

  썩 괜찮은 사랑 한 가득쯤은 남기고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