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관련

김삿갓.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시치 2017. 12. 7. 00:21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가산 군수 정시의 충절을 현창하고, 김익순의 죄를 탄식하며 하늘에 고함

 

金炳淵의 수 많은 작품 중에 그를 이해하는데가장 중요한 작품은 이 작품과 晩年에 일생을 회고하며 쓴 '蘭皐 平生詩'. 이 작품이 김병연으로 하여금 金笠(삿갓)으로 변신하게 만든 작품이라면 난고평생시는 김립을 시인으로 평가 받게 만든 작품이다所謂 장원 급제작인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이란 긴 詩題의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해 漢詩라고 이름할 수 없다. 한시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완미한 정형시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 형식적 제약성에 있다그 특성의 첫째가 글자의  字數律(音數律)이다. 한 구절이 글자 수가 넉 자인 四言詩, 다섯 자인 五言詩, 일곱 자인 七言詩가 그것이다. 둘째는 押韻(압운音位律이다. 주로 짝수 句節의 끝 자에 동일 韻字를 반드시 넣는 것이다. 셋째는 平仄(평측) 音性律이다. 일정한 위치에 소리의 성질이 같은 글자를 쓰는 것이다. 漢詩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이 세 요소를 모두 구비해야 하기 때문이다소위 김병연의 장원 급제작은 이 세 요소 중 첫번째 조건 곧 칠언시란 요건만 갖추었을 뿐 둘째 및 셋째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金笠을 되게 한 모티브로서의 가치밖에 그 의미가 없다. 혹평하면 시가 아니라 雜文인 것이다.  한가지 의심스런 것은 한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 작품이 어떻게 白日場에서 壯元作이 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試官의 무지에 基因한 것인가? 아니면 백일장의 장원작이란 것 자체가 後人 好事家의 꾸민 이야기인가?김삿갓의 거의 모든 작품이 이런 잡문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平生詩'만큼은 한시의 諸條件을 다 갖춘 秀作이다. 만약 김병연에게 이 작품이 없었더라면 그는 시인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김병연으로 하여금 삿갓을 쓰게 만든 이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몇 가지 정보를 먼저 제공하고,다음에 작품을 해설하였다아울러 네 명의 가수가 부른 '방랑시인 김삿갓'의 노래를 첨부했다. 비교해 들어보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

 

                                                           2009.2.25

                                                          金場煥謹記              

 

1. 김삿갓1807(순조 7)-1863(철종 14)

본관은안동. 이름은 김병연(金炳淵), 자는난고(蘭皐), 별호는김삿갓또는김립(金笠). 楊州 출생. 김삿갓의 나이 네 살 때 평안도 선천(宣川)의부사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滅族(일족을 몰살함)에서 廢族(일족을 죽이지는 않고 과거응시 자격만 박탈함)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廢族者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김병연이 과거에 응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 가산 군수 정시의 충절을 현창하고, 김익순의 죄를 탄식하며 하늘에 고함)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詩題로 장원 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금강산 유람을 시작으로 각지의 서당을 주로 순방하고, 4년 뒤에 일단 귀향하여 1년 남짓 자기 집에 묵었는데, 이때 둘째아들 익균(翼均)을 낳았다. 또다시 고향을 떠나서 서울·충청도·경상도로 돌았으며, 도산서원(陶山書院) 아랫마을 서당에서 몇 해 훈장노릇도 하였다. 다시 전라도·충청도·평안도를 거쳐 어릴 때 자라던 곡산의김성수아들집에서 1년쯤 훈장노릇을 하였다.
충청도계룡산 밑에서, 찾아온 아들 익균을 만나 재워놓고 도망하였다가 1년 만에 또 찾아온 그 아들과 경상도 어느 산촌에서 만났으나, 이번에는 심부름을 보내놓고 도망쳤다. 3년 뒤 경상도 진주 땅에서 또다시 아들을 만나 귀향을 마음먹었다가 또 변심하여 이번에는 용변을 핑계로 도피하였다.  54세 때 전라도 동복(同福) 땅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나귀에 태워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신세를 졌다. 그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한많은 생애를 마쳤다. 뒤에 익균이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그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畵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다. 국문학사에서는 김삿갓으로 칭해지는 인물이김병연외에도 여럿 있었음을 들어 김삿갓의 이러한 複數性은 당시 사회의 몰락양반계층의 편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특히, 과거 제도의 문란으로 인하여 선비들의 시 창작기술은 이 같은 절망적 파격과 조롱·야유·기지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8년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으며, 19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詩碑를 세웠다. 그의 시를 묶은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2. 홍경래의 난:1811(순조11) 12월부터 18124월까지 평안도 지역에서 洪景來가 주도한 농민 반란. 초기에는 宣川嘉山 고을을 점령했으나 결국 관군에게 패퇴하여 전사함. 홍경래는 원래 양반 출신으로 과거에 여러번 낙방하였음.

 

3. 김익순(金益淳.?-1812): 김삿갓의 조부. 安東김씨 중 壯洞金氏. 行列''자이다. 평안도 선천 부사로 재직 중 순조 11년 홍경래난이 일어나자 홍경래에게 투항하여 홍경래가 준 사령장을 받고 농민 반란군에 가담함. 홍경래난이 평정되자 모반 대역죄로 처형당하고 집안은 멸족 됨.

 

3. 정시(鄭蓍.1768-1811): 1811년 평안도 가산(嘉山) 고을 군수로 재직 중 홍경래의 난을 만나 홍경래에게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함.

 

4. 壯洞金氏: 安東金氏 중 한양 壯洞에 기거한 청음 金尙憲의 후손들을 특히 장동김씨라 이름한다. 장동은 오늘날 종로구 경복궁의 서북쪽 청와대 근처의 청운동, 궁정동, 옥인동 일대다. 궁정동에 `金尙憲家址` 표지석이 있다. 金尙憲8세손인 金祖淳의 딸이 純祖의 왕비 순원왕후가 되었다.순조가 나이 어려 장인인 김조순이 국정을 전단했다. 이때부터 소위 안동김씨 세도 정치가 시작 된 것이다. 순조가 죽고 어린 손자인 憲宗이 즉위하자 대왕대비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헌종의 왕비는 金祖根의 딸 효현왕후다. 순원왕후의 오빠인 金左根이 영수가 되어 안동김씨 세도가 더욱 굳어 졌으며,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강화도령 哲宗이 즉위한다. 철종의 왕비는 金汶根의 딸 철인왕후다. 철종 때 세도의 영수는 김좌근의 양자인 金炳冀였다. 이렇게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는 순조, 헌종, 철종의 3대에 걸쳐 약 60여년간 계속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장동김씨 세도 정치 60년이다.

勢道란 원래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리` 世道라는 뜻으로, 중종 때 趙光祖 등의 士林들이 표방했던 통치 원리였다.

그것이 정조 초기에 이르러 世道의 책임을 부여받은 洪國榮이 조정의 대권을 위임 받아 독재를 하기 시작한 데서 그 의미가변질되어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나 외척들이 독단으로 정권을 휘두르는것`을 일컫는 부정적 의미의 말이 되었다.

 

                                                           작품 해설

<金炳淵이 강원도 영월 고을 白日場에 나가 응시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무 살 나던 해 늦은 봄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의 간곡한 권유로 백일장에 나온 병연은 詩題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열다섯 자는 氣槪 있는 선비라면 한번 筆鋒  휘둘러 볼만한 詩題였기

때문이다김병연도 익히 알고 있던,15여년 전 이 나라에 벌어졌던 대역부도한 홍경래의 난, 그 중의 대조적인 두 인물,

가산 고을 군수 鄭蓍의 충절을 현창하고, 金益淳의 죄를 탄식하며 하늘에 하라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의 사적을 너무도 잘 아는 김병연은 붓을 들어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曰爾世臣金益淳(왈이세신김익순)

   鄭公不過卿大夫(정공불과경대부)

   將軍桃李隴西落(장군도리농서락)

   烈士功名圖末高(열사공명도말고)

  대대로 임금을 섬겨온 김익순은 듣거라

   정공은 직위 낮은 문관에 불과했지만 충성을 다하지 않았더냐.

   너는 농서에서 흉노에게 항복한 나라 장군 李陵 같은 놈이요,

   열사 정시의 이름은 공신 서열 중에서 으뜸으로 빛나도다.

   * 世臣: 대대로 한왕조를 섬겨온 신하        * 鄭公: 홍경래난 때 가산 군수인 鄭蓍(정시)를 말함

   * 이릉(李陵): 중국 前漢 무제 때 무장. 흉노에게 패하여 항복함. 사마천이 그의 충성심을 변론하다가 궁형을당함.

   * 농서(隴西): 감숙성 武威市(凉州) 일대. 흉노와의 전쟁터.


 

<역적 김익순을 탄핵하는 김병연의 붓끝은 추상같았다.

선천부사 겸 방어사 김익순이란 자를 진작부터 미워하여 왔기에 충신 鄭蓍와 비교하여가면서 그의 죄상을 여지없이 질타하고 생각을 가다듬어 다시 붓을 달린다.>

 

   詩人到此亦慷慨(시인도차역강계)

   撫劍悲歌秋水涘(무검비가추수계)

   宣川自古大將邑(선천자고대장읍)

   比諸嘉山先守義(비저가산선수의)

   시인은 이런 일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기에

   칼을 어루만지며 가을 물가에서 슬픈 노래를 부르노라

   선천은 예로부터 대장이 지켜 오던 큰 고을이기에

   작은 가산 고을 보다는 먼저 의를 지켜야 할 곳이 아니었더냐?

   宣川: 부사와 방어사를 둔 큰 고을.  * 嘉山: 원이 다스리던 작은 고을.  

 

   淸朝共作一王臣(청조공작일왕신)

   死地寧爲二心子(사지영위이심자)

   昇平日月歲辛未(승평일월세신미)

   風雨西關何變有(풍우서관하변유)

   너와 정공은 모두 맑은 조정의 한 임금의 신하였는데,

   죽는 마당에서는 어찌 두 마음을 품었더란 말이냐?

   태평성대이던 신미년(1811) 그 해에

   평안도에서 전란이 일어났으니 그 무슨 변고이더냐?

   * 昇平日月: 태평 세월

 

   尊周孰非魯仲連(존주숙비노중연)

   輔漢人多諸葛亮(수한인다재갈량)

   同朝舊臣鄭忠臣(동조구신정충신)

   抵掌風塵立節死(저장풍진입절사)

   나라를 받든 충신이 노중련 하나가 아니요,

   나라를 도운 많은 사람 가운데 제갈량이 있었듯

   우리 조정에도 만고의 충신 정가산이 있어서 

   맨손으로 병란을 막다가 절개를 지켜 죽지 않았더냐?

   * 魯仲連 ; 중국 나라의 충신        * 諸葛亮 ; 중국 蜀漢의 충신,승상.       

 

   嘉陵老吏揭名旌(가릉노리게명정)

   生色秋天白日下(생색추천백일하)

   魂歸南畝伴岳飛(혼귀남묘반악비)

   埋骨西山傍伯夷(매골서산방백이

   가산 땅에 묻힌 늙은 관리 정시의 명성은 갈수록 드높고

   그 이름은 가을 하늘의 태양처럼 빛나도다.

   혼백은 남묘로 돌아가 나라의 충신 악비와 벗할 것이요

   뼈는 서산에 묻혀 나라의 충신 백이숙제와 이웃하게 될 것이다.

   * 岳飛 ; 중국 南宋 명장, 충신

   * 伯夷 ; 나라 孤竹國의 두 아들인 백이와 숙제. 형제간의 우애와 군왕에 대한 충성심이 깊었음.


출처: 창원 서부 산악회
  

<김병연은 鄭蓍의 장렬한 전사 광경을 경건한 마음으로  찬양했다.

그러나 충절을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익순 같은 비겁하고 무능하기 그지없는 역적을 철저히 규탄하는것이 더욱 긴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西來消息慨然多(서래소식개연다)

   問是誰家食祿客(문시수가식록객)

   家聲壯洞甲族金(가성장동갑족김)

   名字長安行列淳(명자장안항열순)

   평안도 지방에서 개탄할 소식이 들려오기에

   국록 먹은 불충한 신하가 어느 집 가문 출신인지 물었더니

   가문은 명성도 드높은 안동 장동김씨요,

   이름의 항렬은 한양에서도 소문난 자 돌림이라네.

   * 壯洞甲族金: 김씨 중에 으뜸인 안동김씨 중 장동김씨   * 行列淳: 장동김씨의 ''자 항렬. 세도의 수장은 순조의 장인인 金祖.

 

   家門如許聖恩重(가문여허성은중)

   百萬兵前義不下(백만병전의불하)

   淸川江水洗兵波(청천강수세병파)

   鐵甕山樹掛弓枝(철옹산수괘궁지)

   가문이 훌륭하여 성은도 두터웠으니

   백만적군 앞에서도 忠義를 굽히지 말았어야 했거늘.

   청천강 맑은 물에 고이 씻긴 병마는 무엇했으며

   철옹산 나무에 걸어둔 활은 어떻게 했단 말이냐?

   * 淸川江평안북도 서남부를 흐르는 강   * 鐵瓮山: 평안남도 맹산군에 있는 산

 

   吾王庭下進退膝(오왕정하진퇴슬)

   背向西域凶賊股(배향서역흉적고)

   魂飛莫向九泉去(혼비막향구천거)

   地下猶存先大王(지하유존선대왕)

   내 임금 앞에 꿇어 엎드렸던 그 무릎으로

   홍경래의 흉악한 도적에게 꿇고 항복했으니

   너는 죽어 저승에도 가지 못할 것이니 

   지하에는 선대왕들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先大王돌아가신 조선 역대의 왕

 

   忘君是日又忘親(망군시일우망친)

   一死猶輕萬死宜(일사유경만사의)

   春秋筆法爾知否(춘추필법이지부)

   此事流傳東國史(차사유전동국사)

   너는 임금도 배반하고 조상도 배반했으니,

   한 번 죽어서는 오히려 가볍고, 만 번은 죽어야 마땅하도다.

   역사의 준엄한 평가를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치욕적인 이 사실은 우리 역사에 길이길이 전하리라.

   * 春秋筆法 : (공자의 역사 비판이 나타나 있는 春秋와 같이) 대의명분을 엄정히 밝혀 세우는 역사 서술의 논법

 

<실로 통렬하고 신랄한 탄핵이었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뭉쳐 있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해낸 통쾌함과 이제까지 익히기만 했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글재주를 마음껏 발휘해 본 뿌듯함이 온 몸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동헌마당에는 급제자의 방문이 나붙었고 그 첫머리에 '壯元及第 金炳淵"이었다.

김 병연은 기뻤다.

백일장의 장원급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기뻐하실 모습을 떠올리면서 효도를 하게 된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그러나.....

집에 돌아온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집안의 비극적인 내력을 듣게 된다.

'내가 그렇게도 신랄하게 규탄한 깁익순이 나의 조부님이었던 것이다'

,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날 밤  김병연은 어머니와 사랑하는 부인 그리고 어린 아들 몰래돌아올 기약없는 가출을 결행했다.

조부님을 뵐 수 없어 죄인임을 자처하며 삿갓으로 광명한 태양 빛을 가렸다

전국 방방곡곡을 유랑하며 떠돈지 50여년, 한 많은 생을 전라도 동복 땅에서 마감했다.>


'고전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맹자의 맹자  (0) 2019.08.03
공문(孔門) 십철(十哲)  (0) 2018.04.16
당시선 唐詩選   (0) 2017.11.28
도잠(도연명) 陶潛(陶淵明)   (0) 2017.11.28
왕유 王維   (0) 2017.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