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치 2008. 11. 12. 01:27

 

백석 카페:  http://cafe.daum.net/BaekSeok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4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 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1938년>

 

 


▲ 일러스트=이상진

 

 

 

 

 

추한 세상을 뒤로 하고 나타샤, 함께 산골로 가자

김선우·시인

 

 


 

 
 


 

 

이 시는 바야흐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싶은 시인의 고백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진짜 연애편지다.

 

어느 밤 눈은 내리고 연인이 있는 곳에도 연인과 함께 가고 싶은 곳에도 눈이 푹푹 내릴 때 한 대책 없는 시인이 사랑을 노래한다.

그윽한 영상을 펼쳐 보이며 잔잔하게 전개되는 이 시는 두 번의 절정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시의 도입부에 단도직입으로 펼쳐진다.

 내가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린단다!

중증의 나르시시즘이다,

요샛말로 '자뻑'이 한참 심하다. '

 

낙엽이 져요,

당신이 그리워요' 이게 순서 아닌가.

그런데 이 시는 대뜸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여 낙엽이 지고,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꽃이 핀다는 것이다.

사랑의 힘을 이토록 과장되게, 그러나 천진하고도 사랑스럽게 전할 수 있는 것은 시뿐이리라.

 

두 번째 절정은 3연.

산골로 도망가자고 연인을 꾀는 시인의 속내에 그대로 드러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고!

 

이 시가 발표된 때는 1938년이니 일본제국주의 압박이 점차 수위를 높여갈 때다.

세상은 갈수록 추해져 가고, 우리는 더러운 세상에 섞여 살기 힘든 순결한 존재들.

그러니 더러운 세상에 상처받지 말고 우리가 먼저 세상을 버려버리자고 이 시는 선동하는 것이다.

기막힌 사랑의 선동이 어이없으면서도 흐뭇하다.

 

상대를 단박에 무장해제시키는 철없고 순수한 자긍심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 이 정도는 돼야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일 만하지! 게다가 이 말은 시인의 입을 통해 나오지 않는다.

출출이(뱁새) 우는 산골로 가 마가리(오두막집)에 살자고 하는 시인에게 나타샤가 응답하며 고조곤히(조용히) 속삭이는 말로 설정해 놓았는데,

묘하게 아련하고, 아프고, 캄캄하다.

 

사랑하는 그대가 이렇게 말해주는데 도리 있나.

푹푹 내리는 흰 눈 속에 응앙응앙 울며 어서어서 흰 당나귀가 와야지!

이제 당나귀를 타고 떠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를 어째!

언젠가 눈은 그치고 말 텐데!

 더러워 버린 세상에서 여전히 시인은 살아내야 하는 걸!

몽환적인 한 편의 흑백영화 같은 이 시는 그래서 더욱 애잔하다.

 

영어와 러시아어에 능했고 시 잘 쓰고 핸섬한 모던 보이 백석(1912~1995)에겐 여자가 많았다.

그 중에도 통영 처녀 '란(박경련)'과 기생 '자야'의 인연은 특별해 보인다.

누런 미농지 봉투 속에 든 이 시를 백석에게서 직접 받았다고 전하는 자야 여사는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서 첫눈 오는 날 길상사 마당에 뿌려달라고 유언했고, 그리 되었다.

 

 

생사를 알 길 없이 남과 북에 헤어져 살면서도 백석의 생일날이 돌아오면 금식하며 그를 기렸다는 한 여자가

첫눈 속에 돌아간 흔적이 아득하다.


 

입력 : 2008.11.06 22:38
 
 
 
 
백석

1912∼1963. 시인. 본명은 기행(夔行). 평안북도 정주(定州) 출신. ‘白石(백석)’과 ‘白奭(백석)’이라는 아호(雅號)가 있었으나, 작품에서는 거의 ‘白石’을 쓰고 있다.

1929년 정주에 있는 오산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1934년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전문부 영어사범과를 졸업하였다.

그 뒤 8·15광복이 될 때까지 조선일보사·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함흥 소재)·여성사·왕문사(旺文社, 일본 동경) 등에 근무하면서 시작 활동을 하였다. 한때 그는 북한에 남아 김일성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전하지만, 확실치가 않다. 백석은 그 시대 어느 문학동인이나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그는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단편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등단하였다. 이를 계기로 〈마을의 유화(遺話)〉·〈닭을 채인 이야기〉 등 몇 편의 산문과 번역소설 및 논문을 남기고 있으나, 그는 실지로 시작 활동에 주력하였다. 1936년 1월 33편의 시작품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한 시집 ≪사슴≫을 간행함으로써 그의 문단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이후 남북이 분단되기까지 60여 편의 시작품을 그가 관여했던 ≪여성≫지를 위시하여 당시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하였다. 분단 이후의 북한에서의 작품 활동에 대해서는 밝혀진 것이 없다.

한마디로 백석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의 자연과 인간을 대상으로 시를 썼다. 그 마을에 전승되는 민속과 속신(俗信) 등을 소재로 그 지방의 토착어(土着語)를 구사하여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과 철학의 단면을 제시한 것이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여 바라다보는 고향은 대개 회상적이거나 감상적인 것이 상투이지만, 백석은 그 체험조직에 있어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

그의 어린 눈에 비쳐진 고향의 원초적인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환기되는 정서의 순화를 의도하고 있다. 그는 마을의 민속이나 속신 같은 것을 재현시키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의 개입 없이 언제나 객관적인 입장에 섰다.

그 마을의 자연과 소박한 주민들의 원초적인 ‘삶’의 리얼리티를 노래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이룩한 이런 시적 성취는 우리 근대시사에서 매우 높이 평가되고 있다.  

 

 


 

 

  백석 시인의 작품 세계   

 

1) 초기시는 정주 지방의 사투리를 구사하거나 토속적 소재들을 통해 파괴되지 않은 농촌 공동체의 정서를 드러내거나, 순수한 동화적 세계관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이후에는 여행 중에 접한 풍물을 표현하는 기행시이자, 모더니즘 계열의 특성을 지닌 시를 창작하기도 하였다.

 

2) 시인의 시에 나타난 가중 중요한 정신은 시적 대상으로서의 자연과 시적 주체로서의 인간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데 있다. 그의 시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사물들 또는 풍속과 자연의 명칭이 나오지만 이들은 결코 따로 독립된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합일을 기다리며 모여 있거나 이미 합일된 경지에 있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3) 그런데 이 사물이나 풍속이 주로 농촌 공동체의 한정된 것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본인이 시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식민지 시대에 문학이 할 일은 농촌 공동체, 곧 민족적 원형을 시적으로 탐구하여 모국어롤 보존하고 재생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하다.

 

4) 백석은 무너진 시대 안에서의 주체적 정서와 자아를 모국어로써 견고하게 유지하려던 시인이었고, 이러한 그의 정신을 당대의 젊은 시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5) 우리가 백석의 빼어난 시를 읽으며 마음속으로 찬탄을 보내는 까닭은, 그토록 참담하던 위기와 붕괴의 시대에서 한 순간도 넉넉한 웃음과 정신적 여유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백석 시인이 만일 위기의 현실 속에서 슬픔과 눈물로만 자아를 드러내었다면 우리는 그의 작품을 대다수의 평범한 수준의 시들과의 그 어떤 차별성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6) 그러나 백석은 고통의 시대에 시인이 해야 할 일은, 핍박을 받는 사람에게 신선한 삶의 생기와 즐거움이라는 감성, 따뜻한 정서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여긴 듯하다. 그리하여 백석의 시 작품 전편에는 밝고 쾌활하며 건강한 시어와 정감어린 표현들로 넘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백석 시의 표현 구조는 결코 경박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결국 시인 백석은 시를 통해 근원적 세계를 갈망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하겠다

   

 

 시대를 잘 못 만났다. 라는 말이 있다. 숨막힐듯한 일제시대와 그리고 사상을 찾아 떠나간 그 북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을 '백석'시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생각하며 그래도 '살자'라고 했던 시인은 지금은 행복할까
시대와 불화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슬픔이기도 하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는 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우에 뜻 없는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 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 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살았던 시인은 여전히 외로웠을 것이고 여전히 사랑했을 것이고, 여전히 흰 당나귀를 생각하며 살자.. 라고 말할 것이다. 시인에게 그래도 나는 당신 때문에 얼마간 위로가 되었고 매우 따뜻했다고 말하고 싶다..

                       

 

 
ㅡ 여승
 

여승(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고독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휘파람 호이호이 불며

교외로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문득 옛일이 생각키움은 ---

그 시절이 조아졌음이라

뒷산 솔밭 속에 늙은 무덤 하나

밤마다 우리를 맞어 주었지만 어떠냐!

 

그 때 우리는 단 한 번도

무덤 속에 무엇이 묻혔는 가를 알려고 해 본 적도 느껴 본 적도 없었다

떡갈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어도 겁나지 않었다

 

그 무렵 나는 인생의 제1과를 즐겁고 행복한 것으로 배웠다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하늘 높히 단장 홰홰 내두르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그 날 밤

성좌도 곱거니와 개고리 소리 유난유난 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경계도 필요없이 금모래 구르는 청류수에 몸을 담갔다

별안간 뇌성벽력이 울부짖고 번개불이 어둠을 채질했다

다음 순간 나는 내가 몸에 피를 흘리며 발악했던 것을 깨달었고

내 주위에서 모든 것이 떠나 갔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인생의 제2과를 슬픔과 고적과 애수를 배웠나니

나는 고독과 나란히 걸어간다

깃폭인양 옷자락 펄펄 날리며

교외 풀밭길의 이슬을 찬다

 

낙사랑의 잣는 실 가늘게 가늘게 풀린다

무엇이 나를 적막의 바다 한가운데로 떠박지른다

나는 속절없이 부서진 배 쪼각인가?

나는 대고 밀린다

적막의 바다 그 끝으로

나는 바닷가 사장으로 밀려 밀려 나가는 조개 껍질인가?

오! 하늘가에 홀로 팔장끼고 우 --- 뚝 선 저 --- 거무리는 그림자여.......

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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