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5] 바람 부는 날 /김종해

시치 2008. 11. 6. 16:06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5]
 
바람 부는 날
 김 종 해

 

 

사랑하지 않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나는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날마다 가고 또 갑니다. 어둠뿐인 외줄기 지하통로로 손전등을 비추며 나는 당신에게로 갑니다.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 하나 갖고서 당신을 향해 갑니다. 가서는 오지 않아도 좋을 일방통행의 외길, 당신을 향해서만 가고 있는 지하철을 타고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작은 불빛 비추며 나는 갑니다.

가랑잎이라도 떨어져서 마음마저 더욱 여린 날,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욱 괴로운 날, 그래서 바람이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당신에게로 갑니다.


<1990년>


 

일러스트=클로이

 

 

 

 

사랑해서 괴롭다… 당신이 보고 싶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문창과 교수

 

 

                     Paul Cardall/Sign of Affection 

 

 

 

 

어떤 이는 사랑하는 일이 괴로운 일이라 하고 어떤 이는 한없는 기쁨이라 한다.

어떤 이는 사랑 받는 것이 행복이라 하고 어떤 이는 받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 한다.

어떤 이는 사랑은 불어닥치는 것이라 하고 어떤 이는 봉변 같은 것이라 한다.

 

모두 맞는 듯 틀리는 것이 정답인, 너무 어두운 한밤이고 너무 밝은 한낮인 사랑. 너무 추운 여름이거나 너무 더운 겨울과 같은 사랑.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랑은 한없이 깊은 오지(奧地)라는 것! 나만이 겨우겨우 찾아갈 수 있는, 나밖에 모르는 장소! 아무리 드러내 놓아도 사람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오묘한 것.

사람들이여!

남의 사랑에 대해 운운하지 말자.

그 오지에 대해.

이 시의 주인은 지금 괴롭다.

보고 싶은 마음, 기다림의 심정이 행복의 파동을 끊임없이 일으키는데 정작 볼 수 없고, 보아서는 안 되고, 서로의 마음이 어긋난다면 주체할 수 없이 괴로워진다.

이 사랑의 주인은 지금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어'라고 후회하기 직전이다.

괴로움을 주체할 수 없어 지하철을 탄다.

'어둠뿐'이고 '외줄기'이고 '일방통행의 외길'인 지하철이다.

그 수단이 지하철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저 지하 깊숙한 길, 창 밖으론 아무것도 없는, 오직 어둠과 전진뿐인 길, 밖에서는 그 누구 하나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길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지하철이며 역도 하나뿐인, '아무도 내리지 않는 숨은 역'으로 가는 지하철이다.

 

그 길은 과연 괴로운 길일까?

천만에. 그 길 주위가 어둠뿐이긴 하여도 '밀감보다 더 작은 불빛을 하나 갖고서' 가는 길이다.

얼마나 따뜻하고 아늑한 혼자만의 길인가.

모든 것 잊고 시름도 잊고 그저 당신만을 바라보며, 이미 당신과 함께 하고 있는 길인 것이다.

늘 한 사람만이 내리는, 그가 손님이며 역장이고 검표원일 숨은 역이 어디쯤인지 궁금하다.

그런 역 하나 갖고 싶기도 하다.

"나는 사시사철이 봄날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다. 사시사철이 봄날이 아닌 곳에서 나는 봄날을 그리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로 쓰고 싶다"(〈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라며 오랜 세월 시 쓰기의 입장을 정리해 밝힌 김종해 시인(67)은 사랑의 탄환이 되고 싶은, 사랑의 갈급한 마음 또한 대신하여 이렇게 격정으로 노래한 바 있다.

"내가 만약 당신을 조준하여 날아간다면/ 날아가서 당신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다면/ 가 닿아서 함께 불덩이로 흩어진다면/ 흩어져서 한순간이 영원으로 치솟는다면/ 나는 미련을 갖지 않으리/(…)'(〈탄환〉). '

 

지하철'과 '탄환', 전혀 다른 듯 사랑의 핵심과 닮아 있지 않은가.


 

입력 : 2008.10.31 22:17 / 수정 : 2008.10.31 23:32
 
 
 
 
 

대한민국, 당신의 이름을 하늘에 펄럭이며
        ―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에 국민의 이름으로, 김종해
 

이 땅을 살고 있는 누구에게나
저마다 소중히 달고 있는 당신의 이름표
죽을 때까지 달고 있는 당신의 이름표
우리들 가슴 속에 깃발처럼 펄럭이는
대한민국, 당신의 이름
자유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노래하던
동방의 등불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오늘은 소리쳐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 싶구나
사랑한다는 말 가슴 속에 묻어놓고
온갖 시련과 갈등, 질곡을 참아내며
지난 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대한민국, 대한민국
우리는 당신의 이름표를 한시도 내려놓지 않았다
비바람 불던 날
때로는 눈보라치던 날
그러나 태평성대의 봄날도 있었다
당신의 이름 속으로
항시 장강이 흐르고 산맥이 융기한다
백두산과 한라산, 압록강과 한강
우리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무수한 상징들
그 이름만 하나하나 불러도
우리는 어느새 마음이 벅차다
아직도 우리에겐 철조망이 있고
휴전선이 남북의 비애를 알린다
안타깝구나, 우리 시대의 철조망
이제는 냉전과 대립의 벽을 허물고
남과 북은 서로에게 진심을 보여다오
서로가 서로에게 칼바람 막아주는
방풍림이 되어다오
전세계인의 축제, 88 올림픽 치르고
2002 월드컵 때 악을 쓰며 불렀던
당신의 이름, 대한민국
태극기 휘날리며 우리 모두 붉은 악마
오늘은 죽어가는 태안해변을 살리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부르며 사랑으로 닦고 문지르는
당신의 이름, 대한민국
겨울이 매우면 매울수록
봄에 피는 꽃은 더욱 향기롭다
입춘 지내고 봄이 오는 길목
새 지도자가 펼쳐놓을
대한민국의 새 꿈과 희망을 어서 보고 싶구나
미래를 변화시킬 우리들의 힘과 사랑
세계를 품고 날아오를
대한민국, 당신의 멋진 날개를 보고 싶구나


 

"세상의 어느 곳에서 그대 시를 주문하더라도
그대의 절실함과 내통하지 않으면 응하지 말라.
그 주문에 의하여 시인이 시를 쓰고 시 배달을 한들
그것은 이미 곧 썩을 지푸라기 시이며, 거짓말 시가 아니냐."
"온 세상이 권력의 전횡에 눌려 핍박받을지라도
그대의 칼날 같은 저항과 충언을 숨기지 말라.
민주와 자유가 억압당하고, 한 시대와 사회가 말문을 잃어버릴지라도..."


http://www.kimjongh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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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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