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4] 어느 사랑의 기록

시치 2008. 11. 6. 00:50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4]
 
어느 사랑의 기록
남 진 우 
       

 

 

 

 

사랑하고 싶을 때

내 몸엔 가시가 돋아난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은빛 가시가 돋아나

나를 찌르고 내가 껴안는 사람을 찌른다



가시 돋친 혀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핥고

가시 돋친 손으로 부드럽게 가슴을 쓰다듬는 것은

그녀의 온몸에 피의 문신을 새기는 일

가시에 둘러싸인 나는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이

다만 죽이며 죽어간다



이 참혹한 사랑 속에서

사랑의 외침 속에서 내 몸의 가시는 단련되고

가시 끝에 맺힌 핏방울은 더욱 선연해진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저 반란의 가시들



목마른 입을 기울여 샘을 찾을 때

가시는 더욱 예리해진다 가시가 사랑하는 이의

살갗을 찢고 끝내 그녀의 심장을 꿰뚫을 때

거세게 폭발하는 태양의 흑점들



사랑이 끝나갈 무렵

가시는 조금씩 시들어간다 저무는 몸

저무는 의식 속에 아스라한 흔적만 남긴 채

가시는 사라져 없어진다



가시 하나 없는 몸에 옷을 걸치고

나는 어둠에 잠긴 사원을 향해 떠난다

이제 가시 돋친 말들이

몸 대신 밤거리를 휩쓸 것이다


<1996년>

 

 


▲ 일러스트=이상진

 

 

더 발칙해져라 사랑에 관한 상상이여

김선우·시인

 

 

 

 

Jane Trojan - Of Life and Love

 

 

 

 

'킹 크림슨'이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이 있다.

남진우(48) 시인의 시를 읽고 나면 1969년에 나온 킹 크림슨의 데뷔앨범이, 그중에서도 세 번째 트랙, 〈묘비명(Epitaph)〉이 떠오른다.

 

남진우의 데뷔작은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연습〉이라는 긴 제목의 시다.

크림슨 왕과 로트레아몽 백작은 죽음과 절망과 고독을 통해 사랑에 닿는다.

우회로의 비밀스러운 쾌락을 아는 악동들.

〈어느 사랑의 기록〉은 남진우의 두 번째 시집 《죽은 자를 위한 기도》에 들어있다.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 이 시집은 집요하게 죽음에 탐닉한다.

시의 첫 행인 '사랑하고 싶을 때'를 우아하고 낭만적인 사랑의 관념으로 읽지 마시길.

혹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시길.

 

이 시는 성/성행위의 구체성을 떠올리며 읽을 때 한층 흥미로워진다.

천천히 다 읽고 나면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된다.

조금도 섹슈얼하지 않은 섹스(사랑),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 나를 찌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찌르는' 섹스(사랑)의 슬픔. '야동'의 세계에 흔하디 흔한 사도마조히즘이

쾌락에 봉사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밖의 배신감. '죽이며 죽어가는' 참혹한 섹스(사랑)를 통과해 비로소 '어둠에 잠긴 사원'을 향해 길 떠나는 로트레아몽 백작의 실루엣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풍경에 대한 호불호는 각자의 몫.

이 시는 사랑/성/성행위를 통해 유발될 수 있는 낭만적이고 보편적인 우리의 기대심리를 배신한다.

그리고 한 발짝 더 간다.

배신 당했는데 어딘지 묘하게 홀가분할 수도 있다는!

데뷔작의 이미지를 끈질기게 짊어진 채 남진우가 천착하는 세계는 '시인의 운명'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삶이자 죽음인 언어의 축제를 주관하는 로트레아몽은 언어를 흡혈하는 뱀파이어.

그가 부르는 이런 '사랑노래'는 어떤가.

 

'사랑하는 그녀가/ 화분에 내 머리를 옮겨 심는다/ 물을 주고 햇볕 잘 드는 곳에 가져다 놓는다/ 아침마다 식탁을 차리며 그녀가 부르는 노랫소리/ 무럭무럭 자라거라/ 내 어여쁜 머리/(…)/ 간혹 화가 나면 그녀는 아무거나 집어 던진다/ 박살 나는 화분에서 쏟아져 나오는 머리통/ 한때 그녀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내 얼굴이 바닥에 흩어져 나뒹군다/ 잠시 방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다가/ 다른 화분에 내 머리를 주워 담는다/ 온통 멍든 얼굴로 나는 다시 한사코 꽃을 피워 올린다'(〈연가〉 부분).

 

무엇을 느껴도 좋다.

사랑도, 사랑에 관한 상상도 더 발칙해져라.

사랑과, 사랑에 관한 상상은 무한 자유이므로! 사랑은 늘 '어느' 사랑의 기록 아닌가.


 

입력 : 2008.10.31 03:33
 
 
 
  최종수정 : 2006-01-27 01:14:17  

 

 

1960년 9월 4일 전북 전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이 당선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연금술사의 꿈-정현종론>이 당선 
1995년  제8회 동서문학상 (평론 부문)
1996년  제6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1998년  제9회 김달진문학상 
1999년  제11회 소천비평문학상 
2002년  제13회 팔봉비평문학상
<<시운동>> 동인 

주요 저서 시집 목록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민음사  1990
시집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문학과지성사  1996.
시집 <타오르는 책>    문학과지성사  2000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
by 남진우

 1
그 겨울 내 슬픈 꿈은 18세기 外套(외투)를 걸치고 몇닢 銀錢(은전)과 함께 외출하였다. 木造(목조)의 찻집에서 코피를 마시며 사랑하지 않는 여인의 흰 살결, 파고드는 快感(쾌감)을 황혼까지 생각하였다. 때로 희미한 등불을 마주 앉아 남몰래 쓴 詩(시)를 태워 버리고 아, 그 겨울 내 슬픔 꿈이 방황하던 거리, 우울한 샹송이 정의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그 숱한 만남과 이 작은 사랑의 불꽃을 나는 가슴에 안고 걷고 있었다.

2
밤 열시, 시계의 태엽을 감으며 그녀의 살속으로 한없이 下降(하강)하는 헝가리언 랍소디. 따스한 체온과 투명한 달빛이 적시는 밤 열시의 고독, 머리맡에 펼쳐진 十二使徒(십이사도)의 눈꺼풀에 主祈禱文(주기도문)이 잠시 머물다 간다.

3
날개를 준비할 것 낢, 혹은 우리의 좌절에 대한 代名詞(대명사). 솟아오름으로 가라앉는 변증법적 사랑의 이중성.

4
가로등이 부풀어 오른다. 흐느적거리는 밤공기 사이로 킬킬대는 불빛의 리듬. 안개는 선술집 문앞에 서성이고 바람은 취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걸어나온다. 쉬잇 설레이는 잠의 音階(음계)를 밟고 내가 바다에 이르렀을 때, 보았다. 아득히 밀려오는 파도와 살 섞으며 한잎 두잎 지워지는 뱃고동 소리,조용히 모래톱에 속삭이는 잔물결을 깨우며 한 여인이 꽃을 낳는 것을.

5
물결치는 시간의 베일을 헤치고 신선한 과일처럼 다디단 그대 입술은 그대 향기로운 육체는 깊은 昏睡(혼수)로부터 꿈을 길어오른다.

날아오르라 날아오르라 박수를 치며
젖은 불꽃의 옷을 벗으라 나의 하아프여.


가만히 촛불을 켜고 기다리자.누군가 휘파람을 불며 地中海(지중해)의 녹색 문을 열고 거울 속으로 들어간다. 피어나는 연꽃 속에 눈뜨는 보석을 찾아.

6
子正(자정)이 되면 샤갈과 함께 방문하는 러시아의 雪海林(설해림). 모닥불 옆에 앉아 우리는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船舶(선박)을 그 긴 항해를 바라보았다. 눈이 내리는군요. 바람 부는 海岸(해안) 푸른 고요 속에 목마른 자 홀로 남아 기도하는 子正(자정)의 海岸(해안) 그 어둠 속에 눈은 내리고 내리고 幼年(유년)의 마을 어디쯤 떠오르는 북두칠성. 地上(지상)의 모든 불빛이 고개 숙인다.

7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저녁빛/남진우

 

 

붉은 저녁해 창가에 머물며
내게 이제 긴밤이 찾아온다 하네…
붉은빛으로 내 초라한 방안의 책과 옷가지를 비추며
기나긴 하루의 노역이 끝났다 하네…
놀던 아이들 다 돌아간 다음의 텅 빈 공원 같은
내 마음엔 하루 종일 부우연 먼지만 쌓이고…
소리 없이 사그라드는 저녁빛에 잠겨
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먹임에 귀 기울이네…
부서진 꿈들…
시간의 무늬처럼 어른대는 유리 저편 풍경들…
어스름이 다가오는 창가에 서서
붉은 저녁해에 뺨 부비는
먼 들판 잎사귀들 들끓는 소리 엿들으며

잠시 빈집을 감도는 적막에 몸을 주네…

 

 

 

 

시인 남진우
내 마음속 순결한 雪山을 향해 걸어갈뿐…


"글쓰기가 노역으로 여겨질때
'나'를 찾으려 떠난 네팔여행
다가가도 여전히 먼 눈앞 선산
문학의 숭고함 새삼 깨닫게 돼"


왜 그 높은 산에 올라갔느냐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산악인이 있었다.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문학이 거기 있었기 때문에 문학을 하게 된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그런 것일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선택에 운명의 휘장을 드리우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문학을 영원불멸의 지고한 존재로 설정하고 자신의 글쓰기를 문학에 대한 일종의 신앙 고백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이럴 때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문에 불과하다. 문학은 곧 소명인 것이다.

 

그것은 하거나 말거나 할 수 있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전존재의 헌신을 요구하는 숭배와 매혹의 대상이다. 젊은 시절엔 나 역시 문학에 입문하게 된 것을 어떤 불가항력적인 외적 힘의 소산으로 치부하곤 했다. 내가 문학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문학이 나를 선택했으며 내가 문학을 향해 나아간 것이 아니라 문학의 부름을 받아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상정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실은 자기기만에 다름 아니며 실존적 물음에 대한 진정한 답변이라기보다는 그것으로부터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은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문학 행위를 지속하기 위해선 왜 문학을 하는가 따위의 질문은 떠올리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지 않은가. 문학이 거기 있기 때문에 문학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문학적 행위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을 생략하고 관성적으로 해오던 작업을 계속하게 해주는 편리한 방책으로 구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부득이 자신의 내면의 심연과 맞닥뜨려야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종교인에게 신앙의 위기가 도래하듯 문학의 정원에서 묘목을 기르는 데만 열중하던 문학인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그 일을 지속하는 것일까 하는 격심한 회의가 찾아오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하던 일의 뿌리를 캐보고 싶은 욕망, 그래서 주어진 지평의 한계를 넘어 사유를 진척시켜 보고자 하는 충동을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글쓰기가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이 아니라 끝없는 노역으로 여겨질 때, 혹은 자신의 글쓰기가 어떤 장벽에 봉착해 더 이상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을 때, 그래서 자신이 한 말이 이미 누가 한 말의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난 2월 나는 두 후배와 함께 네팔에 있었다. 너무 익숙해져 버린 일상의 반경에서 벗어나 지금 이곳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 홀로 내 속의 캄캄한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젊은 시절 내 주위엔 유독 인도와 티베트, 그리고 히말라야의 설산을 동경하던 문청들이 많았다.

술 한 잔 마시면 그들은 한 번 가보지도 못한 그곳의 풍광과 그곳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감격에 찬 목소리로 읊조리곤 했다. 그 시절 나는 그들을 경멸했다. 내게 그들은 현실을 의도적으로 망각하고 자신의 세속적 무능을 정신적 초월을 통해 보상 받으려고 애쓰는 한심한 족속들로 여겨졌다. 그런 내가 젊음의 신열이 거의 다 가실 나이에 이르러 새삼 그곳에서 어떤 해답이라도 찾아보겠다고 간 것이니 여간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니다.

 

카트만두에 사는 시 쓰는 대학 선배의 도움을 받아 우리 일행이 트래킹 코스로 선택한 곳은 흔히 많이 찾는 에베레스트나 안나 푸르나가 아니라 랑탕이라는 산이었다. 그야말로 다 썩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낡은 버스에 몸을 싣고 열 시간 넘게 털털거리며 구비구비 산모롱이를 돌아 도착한 것은 둔체라는 마을이었다.

도중에 마오이스트 반군들 때문에 몇 번이나 버스를 오르내리며 검문을 받아야 했고 현지 마을에서도 등화관제와 야간 통행금지라는, 우리에겐 대단히 친숙한(?) 옛 추억을 떠올리는 풍속과 조우해야 했다. 이미 우리나라가 몇 십년 전에 통과한 시절을 지금 현재형으로 살고 있는 그곳 사람들의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의 양태를 지켜보는 일은 한편으로 착잡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기이한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산을 바라보며 하루 종일 걷는 일과가 시작되었다. 전나무로 가득 찬 숲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다 보면 어느덧 산 하나가 뒤에 남겨졌다. 우리 일행을 이끈 선배의 말을 빌리자면 마치 책장을 넘기듯 산굽이 하나를 넘기고 다시 다음 산굽이를 천천히 넘기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을 읽고 있었던 것일까. 한참 걷다 보면 식사를 하거나 하루 묵어갈 수 있는 롯지가 나타났고 그 허름한 숙소에서 잠시 쉬거나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묵묵히 걷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와 계곡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가 있을 뿐 사방은 고요했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곤 간혹 하산하는 외국인 트래커들이거나 소와 야크의 무리들 뿐이었다. 먹고 걷고 자고 일어나 다시 걷는 일의 반복. 철이 든 후 항상 뭔가에 쫓기듯 살아온 나에게 이처럼 끝없이 걷고 또 걷는 일은 참으로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그곳에선 내가 한국이란 나라에서 아등바등 살아오며 해오던 일이 참으로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으며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매달린 것들이 참으로 사소하게 보였다. 발 아래 두툼한 융단처럼 깔린 낙엽을 밟으며 나는 멀리 만년설에 덮인 설산 꼭대기를 한참 바라보곤 했다. 한나절만 가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며칠을 걸어도 설산은 여전히 그만한 거리를 유지한 채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우리 시대에 숭고함이란 극히 찾아보기 힘든 것이 되어버렸다. 멀리 보이는 설산이 그토록 아름답게 다가온 것은 그것이 내 마음 속에 숭고함이란 감정을 자극해서였을 것이다. 내가 한때 꿈꾸었던 문학이란 것이 아마 바로 저러한 모습이 아니었을까.

멀리서 고고하게 흰 이마를 높이 쳐들고 있는 의연한 존재. 만인이 우러르며 숭모하는 거대한 부동의 중심. 접근할 수는 있어도 끝내 도달할 수는 없는 피안의 저편. 눈이 머무는 곳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히말라야 산기슭을 걸으며 나는 어느덧 다시 낭만적 감수성으로 가득찬 20대의 문청 시절로 되돌아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학을 일생에 걸친 구도와 순례의 여정에 비유하는 것은 진부한 듯하지만 아직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수사인 듯하다. 그렇다면 산이 있기 때문에 산을 오른다는 말이 맞는 것처럼 문학이 있기 때문에 문학을 한다는 말도 어느 면에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이때의 문학은 거리와 시장 한복판에서 부대끼며 살다가 어느 순간 그런 난장에서 한걸음 비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문득 시선에 들어온 눈 덮인 하얀 산이 불러일으키는 신선한 느낌에 가까운 것이다. 종교가 힘을 잃어버린 시대에 문학은 어쩌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숭고함의 화신으로 존재하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지상에 인간의 발이 닿지 않은 순결한 설산이 남아 있지 않듯 현실의 불순함에 오염되지 않은 언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순백의 문학은 언어가 씌어지기 이전의 하얀 백지 상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검은 글자가 하얀 백지를 바탕으로 삼아 비로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듯이 문학 역시 멀리 빛나고 있는 설산의 존재를 전제하고서야 지금 이곳의 비루한 현실을 묘사하고 서술하는 자신의 과업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내면에 깊은 심연만이 아니라 그처럼 높은 설산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오래 잊고 지낸 것은 아닐까.

 

높이 올라갈수록 나무는 점차 드물어지고 황량한 암석으로 뒤덮인 고개와 설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센 바람이 부는 히말라야의 밤은 춥고 적막했다. 옷을 껴입고 겨울 침낭에 들어가도 찬 기운이 뼈에 스며들어 한밤에 몇 번씩 잠에서 깨곤 했다.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숙소 바깥으로 나와 소변을 보고 있노라면 아, 저절로 감탄사를 터트리게 할 만큼 큼지막한 별들이 머리 위에서 무수히 반짝이며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설산을 향해 빠르게 떨어져 내리는 별똥별이 눈에 띄었다. 그 별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소망을 세 번 외우면 그것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그때 나는 무슨 소망을 중얼거렸던가.

 

 

 

 

대산문학상 수상 시인 남진우
 
대산문학상 수상 시인 남진우
 
 
"시인은 쓰는 자이기에 앞서 받아적는 자"

  "시를 쓰면서 절실하게 느끼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시인은 정작 그 쓰기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는 자이기 전에 듣는 자이며 쓰는 자이기 전에 받아 적는 자에 불과합니다."('수상소감문' 중)
최근 제15회 대산문학상 시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남진우(47)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그동안 시인보다는 문학평론가로 더욱 널리 알려져 왔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한 그는 1990년 첫 평론집 '바벨탑의 언어'로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한 이래 동서문학상(1995), 현대문학상(2000), 팔봉비평문학상(2002) 등 다수의 평론상을 수상했다.

   반면 지금까지 모두 4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 받은 시문학상은 '김달진문학상' 정도가 유일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남씨의 문학적 연원은 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론가로 등단하기에 앞서 그는 1981년 동아일보 신문춘예를 통해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또 첫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도 첫 평론집과 비슷한 시기에 펴냈다.

   아마도 그의 시집이 평론만큼 주목받지 못했던 것은 그다지 쉽게 읽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번 대산문학상 수상시집인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의 경우도 쉽게 다가오는 시는 아니다. 시인은 특유의 상상력으로 시들고 메마르고 어두운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시, 세속적 삶을 표현하거나 폐허가 된 장소에서 사유한 듯한 시들을 수록했다.

   심사위원단은 그러나 "그의 낯선 환상세계는 이미 우리 생활문화의 심부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존적 체험의 세계인데도 낡은 고정관념이 그걸 못 보게 할 뿐"이라며 "신비에 대한 오랜 탐구를 통한 시적 전통의 혁신이 돋보였다"며 시인의 '고집'을 높이 샀다.

   시인은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학동네' 계간지 편집에 오랫동안 관여하다 보니 시를 쓰는 사람보다는 평론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준 것 같다"면서 "(평론가로서의 활발한 활동이) 시인으로서의 이미지를 깎아먹은 셈"이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나의 시는 특별히 실험적인 시는 아니지만 내가 지향하는 세계에 극단적인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편안하게 읽히고 소비되는 언어가 아니어서 다소 불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평론을 쓰면서도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시인은 "시란 억지로 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작가가 수상소감문에서 밝힌 "그가 시에게 가기 전에 시가 그를 향해 오는 것"이라는 말과 맞닿아있다.

   "어느 순간 어떤 부름이 그를 찾아와 그에게 입을 벌리라고, 속삭이고 외치고 노래 부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시인의 감수성이란 외부의 소음을 뚫고 우주 저편에서 전해지는 한 소식을 알아듣고 옮겨 적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수감소감문' 중)
시인은 이른바 '미래파' 등 극히 실험적인 작품들을 쓰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옥석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어떻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과 단지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 시인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작 '미래파'로 불리는 시인들 중에는 진정한 '미래파'라고 보기 힘든 시인들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옥석이 가려지겠죠."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jslee@yna.co.kr
 

 

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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