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7]
- 마른 물고기처럼
- 나 희 덕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비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 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인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 얼음 속에서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장자(莊子)》의〈대종사(大宗師)〉에서 빌어옴.
- ▲ 일러스트=클로이
사랑은 속박하지 않는 것
네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것
나희덕의 시는 '어둠 속에서 잠시만 함께 있자'는 청(請)을 들어주며 그 마음을 헤아리다가 마침내 "사랑이라는 것이 혹시 모순적인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으로 다가간다. 물이 빠져나간 연못의 물고기처럼 세상의 두려움에 휩싸인 그를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고를 바치는데
밥상 위에 오른, '빛나던 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린' '마른 물고기' 반찬이 주는 기시감(旣視感)의 정체는 사랑이다.

- Email : nhd@poet.or.kr
- 출생
- 1966년 2월 8일
- 출신지
- 충청남도 논산
- 직업
- 시인,대학교수
- 학력
- 연세대학교대학원
- 데뷔
-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뿌리에게' 등단
- 경력
- 2003년 10월 조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2002년 9월~2003년 9월 조선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예창작학과 전임강사 - 수상
- 2007년 제22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2006년 제21회 소월시문학상 우수상
- 나희덕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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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나희덕 |
다시 시집을 사서 읽기 시작한다. 요사이(아주 긴 요사이지만) 여류 시인의 시집을 즐겨 사는 것 같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사건이다.
과연 시란 무엇인가? 이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를 읽으며 느낀 시는, 일기와 신문기사의 중간인 듯 싶다. 즉, 아주 개인적인 일들이 시 속에는 배제가 되고 자기가 겪어왔던 일이나 사건 중에서 활자화 될 수 있는 부분을 개인적인 부분을 빼고 시인이 독자들에게 툭 던지는 것,
이것이 시가 아닐까?
산다는 일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65쪽, 시 '속리산에서'의 일부)
시인은 순하디 순한 길이 전개가 되는 속리산에 간다. 그리고 인생의 어떤 부분을 깨닫고 이것을 시로 나타낸 것이다.
누구와 갔고 점심은 무엇을 먹고 입장료가 얼마라는 것(일기에 종종기록 되는)은 배제되어 있다.
이 시집 속에는 옛시인의 모습이 드리워져 있다.
김수영의 시가 인용됨으로써 나희덕 씨는 김수영을 존경한다는 것을 은근히 비추고 있다.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었다던 시인은 그 방과 함께 노래를 잃고(80쪽, 시 '가벼워지지 않는 가방'의 일부)
나희덕 씨의 이 시로 인해 김수영은 다시 시인이 되는 듯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위의 시의 원본인 김수영의 시('그 방을 생각하며' 김수영 전집1시, 160쪽)를 읽을 때 나는 '방'을 잘못 이해했었다.
나는 '방'이 벽에 붙이는 선전물이라고 이해했었는데 나희덕 씨의 시를 읽으며 방은 우리들이 저녁이면 머무는 '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 자신에 대해 굉장히 놀랐었다.
왜냐하면, 나는 처음 시를 읽을 때는 방으로 이해했다가 어떤 선배가 방은 공고문이나 알림글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느낌을 접었던 것이다.
그 당시는 그냥 지나갔는데 나는 왜 반박의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인지 나 자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나희덕 씨는 김수영의 패기를 시속에 적용시키려 했던 것 같다. 그러하지만 뭇 여류시인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들을 나희덕 씨도 지니고 있다. 시를 읽으면 여성이 쓴 것이라는 것이 쉽게 보이고 여성의 자기 자신에 대한 내면 성찰과 자기 주변의 일들에 대한 아기자기한 표현을 시 속에 표함하고 있다. 물론 나의 생각은 섣부른 생각일 수도 있다. 시집 표지에 사진을 보고 시인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고 시를 읽을 때 여성의 시라는 고정관념으로 읽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희덕 씨는 다른 여류 시인에 비해 사랑이나 남자에 대해 초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희덕 씨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주위의 사물에 대한 배려가 눈에 보인다.
시인은 더운 피가 도는 짐승의 등을 쓰다듬어 본 것이 오래 되었다고 안타까워하고(85쪽) 채 익기도 전에 너무 많은 말들을 입 속 가득 머금고 울컥거렸다고 허무주의적인 말도 하기도 하고(91쪽) 세월이 빠르게 지나는 것을 노래하기도 하고(12쪽) 고통과 조우 하기도 한다.(35쪽)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말을 하고 글을 쓴다.
나희덕 씨도 그런데, 나희덕 씨는 그런 자기 자신을 회상하며 이런 시를 썼으리다라.
그러나 나는 이미 세상의 술틀에 던져진 포도알이었는지 모른다. 채 익기도 전에 으깨어져 붉어져 붉은 즙액이 되어버린, 너무 많은 말 들을 입 속 가득 머금고 울컥거리는, 나는 어느새 둥근 몸을 잃어 버렸는지 모른다. 포도가 아닌 다른 몸이 되어 절벅거리며, 냄새가 되어 또 하나의 풍문이 되어 퍼져 가면서, 세상을 적시고 있었는지 도 모른다.(91쪽, 시 '포도밭처럼'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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