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3]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시치 2008. 11. 6. 00:44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3]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 용 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2002년>

 

 


▲ 일러스트=이상진

 

 

 

휘영청 밝은 저 달은 당신 얼굴

장석남·시인·한양여대 문창과 교수

 

 

 

 

 

 

 

 

섬진강 시인, 섬진강이 제 노래를 하기 위해 낳은 시인,

그래서 섬진강을전담해서 다 노래하는 시인,

 

초등학교 2학년이 좋아 오랜 세월 2학년 담임을 전담했다던 선생님 시인,

'집을 향하기 전에 2학년 1반 교실 유리창을 다 닫고 그 너머로 강변 마른 풀밭 풀잎 위에 남은 햇살들을 보'(〈나는 집으로 간다〉)는,

주로 1반만 있는 시골학교의 평생 평교사 시인,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스스럼없이 "나가 김용택인디!" 하는 타고난 붙임성의 시인,

까마득한 후배를 만나도 늘 다른 무엇도 아닌 "큰 성(형님)"이 되어 주는 시인,

약간 높은 톤으로 말하며 하하하! 웃는 시인,

콩 타작 마당에서 쥐구멍에 들어간 콩을 보며 〈콩, 너는 죽었다〉고 동시도 쓰는 시인,

연애시도 잘 쓰지만 막상 연애박사일 성싶지는 않은 순정파 시인,

지난 여름 아쉽게 퇴임한 할아버지 시인,

 

이해인·김훈·도종환·안도현·성석제·정호승·장사익 등 당대의 쟁쟁한 문인과 예인들로부터

퇴임을 위로하는 글 잔칫상 《어른 아이 김용택》(문학동네)을 받은 복 많은 시인,

 

김용택 시인(60)!

시를 보니 그는 '월인천강(月印千江)'한 저녁, 그만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어 연인에게 전화를 해댔구나.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당가를 서성이다가, 최대한 낮게 숨을 고르고 나서 '달이 떴다고, 섬진강 변이 너무나 환하고 곱다'고.하고 싶은 말은 그러나 더 있었을 터.

그 말은 차마 못하고 더듬거리며 '달 이야기'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심전심(以心傳心), 척 알아듣고 이렇게 답을 보냈다.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이는 시인이 아니라 그 연인이어야 하는데 작가는 김용택 시인이라니 혹시 '슬쩍' 한 것인가?

 

그럴리야.

그러한 애틋하고도 향기로운 답을 받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과 그리움이 이 시가 된 것이리라.

그래서 스스로 전화하여 마음으로 말 걸고 스스로 답을 만들어 받은 것이 이 작품인 것이다.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는 행복의 순간 같지만 그 이면엔 쓸쓸함이 아침 안개처럼 흐르기도 한다.

물론 사실 그대로일 수도 있겠으나 더 아름다운 달이 뜨는 강변을 가진 연인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김용택 시인은 농경 공동체를 온전하게 체험한 마지막 세대에 속한다.

그의 몸과 기억에는 근대 이전의 우리 공동체가 경험한 감각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을 것이다.

그의 시는 그래서 '온전한' 고향의 노래이고 그가 노래한 사랑 또한 '오리지널'한 고향의 사랑 노래다.

 

 '내가 그냥 좋아했던 이웃 마을 그 여자/ 가을 해가 뉘엿뉘엿 지는 날/ 이 길 걸으면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살아나와/ 저만큼 앞서가다가 뒤돌아다보며/ 단풍 물든 느티나무 잎사귀같이 살짝 낯을 붉히며 웃는,/ 웃을 때는 쪽니가 이쁘던 그 여자/ 우리나라 가을 하늘같이 오래 된 그 여자"

 

(〈애인〉)에 나타나듯 그가 사랑한 '우리나라 가을 하늘같이 오래 된 그 여자'는 실은 우리들 모두의 저,

낮은 자리 마음이 늘 사랑한, 사랑할 그 여자다.


 

입력 : 2008.10.29 23:34
 
 
 
 
           김용택(金龍澤)
 

 

 

 

 

< 어른아이 김용택 > 은 그의 퇴임과 환갑을 기념해 만든 산문집이다.

시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49인이 참여했다.

 

김훈, 도종환, 안도현, 이해인, 성석제, 박범신, 정호승, 곽재구, 공선옥 등의 문인들과 판화가 이철수, 소리꾼 장사익, 화가 김병종, 가수 백창우,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상임이사 등 필진이 화려하다.

무게 있는 이름들이 함께한 산문집 표지가 어찌도 저리 발랄할까.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꾸만 피식거릴 정도로 '웃기게' 생겼다. 속을 보면 이유가 있다.

애초 이 책은 시인의 퇴임을 기념한 헌정문집 형식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글을 묶는 과정에서 헌정문집이라는 제목은 지나치게 묵직하게 다가왔다고. 시인의 다양한 면모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드러낸 글이 대부분인지라 첫 제목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아이'라는 조어로 제목을 다시 짓고, 장난기 가득한 캐리커쳐로 표지를 채웠다.

과연 책은 무겁지 않다. 헌정을 목적으로 한 찬양성 발언도 없다. 인간 김용택, 형 김용택, 촌놈 김용책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이다. 소설가 성석제의 말이다.

"가을햇빛이 유난히 노랗던 어느 날 용택이 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라고 했다. 마치 멀리 떨어져 사는 친형이라도 되는 양 내 이름을 부르던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을 넘어간 아홉 살 위의 형도 띠동갑인 용택이 형도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p22)



시인 안도현은 대놓고 흉을 본다. 그의 글 '흉볼 게 많은 이야기꾼'에서 안도현은 "사실 용택이 형은 흉볼 게 많아서 그걸 다 쓰면 장편소설 한 권 분량쯤은 될 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연타를 먹인다.

"말이 많고, 웃음이 헤프고, 잘 삐치고, 자주 화내고, 입이 가볍고, 키는 작고, 배는 나왔고, 이마는 벗어졌고,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밥은 많이 먹고, 술은 잘 못하고..."(p49)

글쓴이들의 직업이 다양하다보니 톡톡 튀는 글도 눈에 띈다. 가수 백창우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악보를 그대로 실었고, 그것도 모자라 삐뚤빼뚤 육필로
페이지를 채웠다. 김용택의 시 '눈 오는 마을'을 판화로 재해석한 판화가 이철수의 동명의 판화도 있다. 문학평론가 임명진의 경우 '섬진 시인 별곡'을 만들어 구성지게 부른다.

순전히 시인을 위해 나온 책이지만, 독자는 그 나름대로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각계에서 활약하는, 특히 문단에서 '한 가닥'하는 문인들의 글을 한꺼번에 만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이 정도면 푸짐한 글 잔칫상이 맞다.

(사진제공=문학동네)

[김대욱 기자 purmae33@pimedia.co.kr]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난 김용택 시인은 1982년 『21인 신작시집』을 통해 농촌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섬진강」등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단했다.

그는 신경림 시인 이래 농촌적 서정을 가장 빼어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시인이며 스스로가 농민들 사이에서 살아온 만큼 그의 서정에는 농민들의 삶에 각인된 민중의 애환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보기 드문 민중적 서정의 경지를 열고 있다.


시집으로는 『섬진강』(1985), 『맑은 날』(1986), 『누이야 날이 저문다』(1988), 『꽃산 가는 길』(1988), 『그리운 꽃 편지』(1989),『그대, 거침 없는 사랑』(1994), 『강 같은세월』(1995) 등이 있다.

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