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2] 거미

시치 2008. 11. 6. 00:41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詩)] [32]
 
거미
김 수 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1954년>


 

▲ 일러스트=이상진

 

                                                                                                                        

 Behzed Aghabeigi - Journey  

 

 

 

다가올 설움을 알기에 더 악착같이 사랑하리

김선우·시인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해, 지하철 안의 젊은 여자 둘이서 나누는 이런 대화를 들었다.

"책을 선물하려는데 어떤 책이 좋을까?",

"시집 어때?

아무래도 가을이니까!"

 

시 읽기 좋은 가을!

올해로 세상을 떠난 지 40주기를 맞는 김수영(1921~1968)을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연인의 집 근처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을 휘파람 불곤 했다는 김수영.

6·25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야전병원장 통역관으로 일할 때 변화 없는 삶이 지겨워 "시간을 견디기가 너무 힘이 들어 이를 하나씩 뺐다"는 김수영.

 

술에 취하면 틀니를 빼 손수건에 싼 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그 때문에 부인은 시인이 만취해 돌아온 날이면 주머니에서 틀니부터 찾아내 컵 속에 넣어두었다고 한다.

평소처럼 주머니를 뒤졌는데 틀니가 없으면 그의 아내는 전날 그가 다닌 술집들을 시간 순서대로 다닌 끝에 어느 술집 들통에서 틀니를 찾아냈고,

김수영은 그것을 끼워주면 어린애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한국의 현역 시인치고 김수영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는, 김수영의 시를 읽는 사람에 의해 매번 다른 김수영이 되는 김수영.

어느 날 교통사고로 훌쩍 가버린 뜨거운 심장의 김수영이 다시는 가질 수 없었던

그 가을이다.

그러고 보니 가을이 시 읽기 좋은 이유는,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려서'가 아닐까.

지독히 비시적(非詩的)인 산문 문장을 그대로 시로 살려놓고 있는 이 시는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치 떨리게 서럽다.

 

'몸이 까맣게 타버려서' 멀리 있는 사람의 가을까지 보인다.

'여전히 바라는 것'이 있고, 나의 바람이 '으스러진 설움'이 될 것을 알기에 나는 악착같이 시를 쓰고 사랑하는 것이리라.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가 '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거미'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설움은 가뭇하게 타버리고 가을 찬바람처럼 맑아져 다시 오리라.

모든 사랑을 첫사랑이라 생각하면서, 첫사랑처럼 마지막 사랑에 몸서리치리라. 까맣게 몸을 태우면서.

시 읽기 좋은 가을은 술 마시기도 좋다.

적당히 술에 취해 입 밖으로 낭송할 때 제 맛이 나는 시가 여럿 있지만 그 중에도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은 최고다.

 

퍽 긴 시이니 분위기와 속도감을 천방지축(!)으로 즐기면서 어느 술자리에서 맘 내키는 대로 읽어보시라. '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라져 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 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사랑의 변주곡〉 부분)

 

아, 술 마시고 시 낭송 하고 싶은 가을이다.

시를 읽다가 울어도 용서되는 가을이다.

그리고 기억할 것.

김수영이 참말 좋은 것은,

그가 추종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


 

입력 : 2008.10.28 23:29
 
 
 
 
 
창작과 비평 2008년 여름호,

장르문학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수록된 것이 마음에 들어 오랫만에 집어든 문예지 속에는 김수영 시인의 40주기에 부쳐 그의 미발표 유고 중 김수영 전집에 수록된 부분과 미수록된 부분등을 포함해 일부가 담겨 있었다.
찬찬히 읽다가 심히 공감되 멍해지는 글을 발견, 1954년 11월 27일에 기록된 일기와 시를 발췌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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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린 아침이었다.

어머니!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의 목숨은 저 풀 끝에 붙은 이슬방울보다도 더 가벼운 것입니다.
나에게 제발 생명의 위협이 되는 말을 하지 마세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아도 나는 돈을 벌어야 할 줄 알고
나의 살림이 어머니와는 떨어져서 독립을 해야하겠다는 것도 알고
나의 길을 씩씩하게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나에게
더이상 괴로움을 주지 마세요.

어머니가 무엇이라 나에게 괴로운 말씀을 하여도 아예 바보같이 화내지 않기로 마음먹은 나에게
제발 모른 척하고 있어주세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상태를 비참하다고도 보지 마시고
걱정도 하지 마시고 간섭도 하지 마시고 그냥 두세요.
애정이라 해도 그것이 괴로운 나는 지금 내가 얼마큼 타락하였는지 그 깊이를 나도 모를 만큼
한정없이 가로 앉아버렸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꽃이라 이름지어져 미발표 시로 분류되었으나 원래는 위의 문장과 함께 작성된 부분이다. .)

정말 내 이름을 부르지 마시고
나를 찾지 마세요

모-든 작의(作意)와 의지가 수포로 돌아가는 속에 나는 삽니다

나의 허탈하고 황막한 생활에도 한 떨기 꽃이 있다면
어머니
나에게도 정말 꽃이 있습니까

손을 대어서는 아니되는 꽃
결코 아무나 손을 대어서는 아니되는
이 꽃
확실한 현실이여

내가 대결하고 있는 것은 나의 그림자
인생의 해탈을 하지 못하고도
맑게만 살려는 데에 나의 오해와
비극과 희극과
타락 이상의 질식이 있습니다

꽃 아닌 꽃이여
잔혹한 진행이여

벌써 나의 고장이 없어진 지 오래인
내가 다시 내 고장을 찾아야 할 때
나의 이성(理性)은 나의 피부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름을 버리고 몸을 떠난 지
오래인 나의 흔적을 다시는 찾지 마세요

이즈러진 진리여,
어머니시여.

(1954년 11월 27일  김수영 미발표 유고 중에서......)
 
 
 

김수영(金洙暎 1921 ~ 1968)

 

    시 인, 19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대표적 참여(저항)시인

1. 최신시사

 

2. 출생 및 성장

 

 

 

 

  

 

 

 

 

 

 

1921.11.27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지주(地主)이던 부친 태욱(泰旭)과 모친 안형순(安亨順)의 8남매중 장남으로 출생. 본관은 김해. 효제국민학교 졸업.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1941) 후 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상과대학(東京商科大學) 전문부에 입학(1941). 일가족이 만주 길림성(吉林省)으로 이주(1943)함. 조선학병징집을 피해 귀국(1943)한 뒤 가족이 있는 길림성(吉林省)으로 가(1944) 길림성 길림제육고(吉林第六高)에서 잠시 교편생활을 하며 영문학과 연극활동에 매진.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1945)되자 다시 서울로 귀국(1945)하여 미군 통역일을 하다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영어영문학과 4학년에 편입(1945)했으나 중퇴. 6.25 발발(1950)시 서울에 그대로 남아있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에게 징집되어 인민해방군으로 전투에 참가. 북으로 후퇴하는 인민해방군에서 탈출하여 포로가 된 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석방(1952)됨. 이후 미군통역, 주간 태평양 기자, 평화신문사 문화부차장(1954) 등을 맡아보며 생계를 유지하다 1955년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자택서 직접 양계(養鷄)업을 하며 시작(詩作), 번역, 평론에 전념. 1968. 6. 15 귀가길에 버스에 치여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 다음날 사망(1968. 6.16).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에 김수영시비가 제막됨(시인의 시 <풀>이 새겨짐).두 권의 <김수영전집>(민음사, 1981)을 출간한 민음사에서 1981년부터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시상해 오고 있다.

 

3. 활동 및 작품경향

 

 

 

 

 

 

 

 

 

 

 

 

 

 

 

 

 

 

 

 

 

 

 

 

 

 

 

 

 

 

 

 

 

 

 

 

 

 

 

 

 

 

 

 

 

 

 

 

 

 

 

 

 

 

 

 

 

 

 

 

 

 

 

 

 

 

 

 

 

 

 

 

 

 

 

 

 

 

 

한국문단사에서 대표적 참여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시인은 1960년대 참여시 운동의 선구자로서 부도덕한 정권의 탄압과 압제 속에서 펼쳐지는 추악한 현실적 억압과 좌절에 굴하지 않고 민중과 민주, 민족의 입장에서 시대와 역사가 요구하는 지식인의 사명,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미래의 이상과 암담한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옥조여 오는 절망을 극복하고 세속의 회유와 변절의 유혹에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양심과 정의를 지키려 고뇌하는 지성의 모습을 꼿꼿이 유지한 채 자신의 시속에서 적극적으로 또는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옳은 것이 무엇이며 왜 옳은 것을 찾아 부정과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가를 노래하였으니 이러한 시인의 삶은 그가 그렇게 추앙해 마지 않았던 4.19민중의거와 시인의 이름이 후세인에 의해 동격으로 불리 우는 까닭이요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독재체제를 거쳐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던 수 많은 민주투사, 재야학자, 학생운동가들과 후세 문인들은 물론 1990년대 민중시인과 민중운동가들에게 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친 이유라 하겠다.

     

     1. 초기(광복~6.26이전)
     

     해방과 함께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온 뒤 [예술부락(藝術部落)]에 시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1945)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딘 시인은 〈공자의 생활난〉(1945),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1947), 〈아메리카타임지〉(1947), 〈웃음〉(1948), 〈이(蝨)〉(1947), 〈토끼〉(1949) 등의 작품을 발표하고 이어서 김경린(金璟麟), 박인환(朴寅煥), 양병식(梁炳植), 임호권(林虎權)과 5인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1949)하는 등 활발한 작품활동을 벌이며 문단의 주요 모디니스트의 한 사람으로 각광을 받게된다. 이 때의 초기시들은 당시 대부분의 모더니스트 시인들이 유행처럼 표출해 내 보여주었던 시사성, 관념성, 생명성을 특색으로 하는 대상의 감각적 형상화, 서구지향적 감성의 시적표현등의 특징들을 극복하고 지성과 감성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근대화와 서구화를 맹목적으로 동경하며 찬미되던 당시 현대문명과 도시 생활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노래한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우울한 일제식민지시절에 싹터 이어져오던 감상적이고 수동적이며 무기력한 경향의 모더니즘, 서구동경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좌절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던 이전의 모더니즘계열의 시가 해방의 새시대와 더불어 차츰 주체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희망찬 기대속에서 현실과 우리주위의 현모습을 의식하며 시대와 함께 변화해가던 모더니즘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인은 이러한 변화의 경향을 이끌어 가던 해방이후 1950년대 모더니스트의 중심인물중 한 사람이라 하겠다.

    - 대표작 : <묘정(廟庭)의 노래>(1945), 〈아메리카타임지〉(1947)

     

     2. 1950년대

     

     하지만 6.25전쟁의 발발로 인민해방군에 강제징집되어 전투에 참여하고 포로가 된 뒤 거제소 포로수용소에 수용되는 등 시대적 격변을 몸으로 격으며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고 전후 암담한 경제적 곤궁과 피폐한 조국현실을 바라보며 생존을 위한 처절한 생활고에 내몰려 가는 현실속에서 이전의 작품경향과는 다른 내적변화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즉 이전의 감상적 모더니스트들이 가지고 있던 막연한 서구문물에 대한 동경과 비현실적 감상, 서구근대화를 이상적 가치로 동경하며 낭만적인 필치로 그려내던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경향이 조국의 광복과 더불어 희망에 찬 주체적이고 자기극복적인 모더니즘으로 막 변화하려는 와중 전쟁의 발발과 그에 후유증은 비현실적이고 감상적인 공허함을 탈피하고 현실속에 눈을 돌려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으나 현실의 비참함이 극에 달한 상태, 한마디로 기가 막흰 상황으로 추락해 버린 시대상황하에서 시대의 아픔과 이에 따른 지식인의 방황을 풍자적인 시어로 읊조리며 지적인 언어로 시대의 번민을 표출해 내고 있다. 전쟁의 와중에 있던 1950년대 초반에는 작품활동이 이루어질 수 없었으며 중반 이후부터 발표된 작품들은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겪어야 했던 지식인의 방황과 암담한 시대속에 내팽겨진 소시민적 비애와 슬픔을 모더니즘적인 감각으로 노래하고 있으며 차츰 사회와 현실에 눈을 뜨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불일치와 간극에 대한 지적번민과 치열한 지적탐색은 이후 현실을 보고 평가하는 나름의 시각과 틀을 형성하여 다음시기의 현실참여의 지적토대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

    - 대표작 : 〈달나라의 장난〉(1953), 〈헬리콥터〉(1955), 〈병풍〉(1956),
                    〈눈〉(1957), 〈폭포〉(1957)  
    등.
    - 1959년 그간의 발표작을 모은 시집 <달나라의 장난> 이 간행.
    -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1958) 수상.


     3. 4.19 민주주의혁명

     

     4.19민주혁명은 시인의 인생과 작품활동에 있어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을 말하면 4.19민주주의혁명이, 4.19 민주주의혁명을 말하면 시인의 이름이 연상될 정도로 이 후 시인의 모든 활동과 작품활동은 4.19민주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현실속에서 펼쳐 나가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니 한 마디로 4.19민주혁명은 시인을 새로이 탄생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시인에게 크나 큰 영향을 끼쳤다. 4.19민주주의혁명을 체험한 시인은 강렬한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혁명과 사회변화,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열망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 때를 기점으로 자유와 저항 의식을 기저로 강렬한 현실 의식을 표출하는 참여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곧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4.19 민주혁명을 통해 시인은 참다운 자신의 시세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니 곧 평등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에의 열정과 이를 위한 혁명이라는 시적 주제가 바로 그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 박은 치열한 시적 탐구는 그를 1960년대 참여시인들의 전위이자 민주주의와 양심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변모시키게 된다. 시인의 현실에 대한 적극적 관심은 현실 속에서 부정을 제거하고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바로 사회를 옭아매고 있는 악한 체제의 부당한 지배권력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저항과 투쟁이며 이를 통해 사회의 긍정적 변화와 역사발전을 도모하고 및 부정을 극복할 수 있으며 이러한 저항의 원동력, 역사변동의 주체는 사회의 참주인, 실체로서의 민중이라는 인식을 낳게되는데 이는 이후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독재체제와 1980년대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던 수 많은 민주투사, 재야학자, 학생운동가들과 후세 문인들은 물론 90년대의 민중운동가들에게 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올바른 사회와 나라, 민주주의의를 이룩하고자 했던 실천적 지식인의 올곧은 사표로 그를 추앙하게 계기가 된다. 이후 그는 시속에서 지속적으로 사랑과 자유를 주제로 하는데, 자유는 그의 시적, 정치적 이상이고, 사랑은 그 자유의 실현을 억압하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인식론적인 사랑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대표작 : <하……그림자가 없다>, <육법전서(六法全書)와 혁명>,
    〈푸른 하늘을〉(1960)


     4. 5.16군사쿠데타 이후


    4월혁명의 영향으로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시, 시론 등을 발표하던 시인은 1961년 민주시민들의 순고한 피로 이룩한 4.19혁명를 짓밟고 박정희 등 군부세력에 의한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하여 군사정권이 수립되고 그들을 위한 군사독재체제가 구축되어가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적(敵)'에 대한 증오와 그 적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이를 연민, 탄식, 풍자 등을 사용하여 작품화하였고 이러한 그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은 <거대한 뿌리>, <현대식 교량>, <사랑의 변주곡>등을 통해 표현된다. <
    푸른하늘을>과 더불어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은 민중이라는 개념이 전무한 시절 역사변동의 주체를 민중으로 파악하고 이를 풀로 형상화하여 표현함으로써 1980년대 후반 급격히 대두되기 시작한 민중운동과 민중시의 길을 열어놓은 효시로 평가되고 있다. 시인은 그의 대표적 평론으로 꼽히는 <시여, 침을 뱉어라>등의 평론을 통해 참여시와 시의 현대성을 주장하며 시와 평론등의 저술활동을 하며 지내다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 대표작 : <그 방을 생각하며>, <적>,
    〈후란넬저고리〉(1963), 〈강가에서〉(1964),
                    〈거대(巨大)한 뿌리〉(1964),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엔 카운터지(誌)〉(1966)·〈풀〉(1968)
    등.


 [상훈]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1958) 수상.


 [저서]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1949),
[20세기 문학평론](柳玲, 蘇斗永 共著, 1953), 시집 [달나라의 장난](1958), 역서로 [카뮈의 사상과 문학](金鵬九 共譯, 1958), [현대문학의 영역](Tate, A. 原著, 李相沃 共譯, 1962) 등이 있고 사후 시집으로 [거대한 뿌리](1974),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 [퓨리턴의 초상] 등이 출판되었고 두 권의 <김수영전집>(민음사, 1981)이 간행 됨.

 

4. 주요작품

5. 작품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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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인연보

 
 
 
 
 
 
 
 
 
 
 
 
 
 
 
 
 
 
 
 
 
 
 
 
 
 
 
 
 
 
 
 
 
 
 
 
 
 
 
 
 
 
 
 
 
 
 
 
 
 
 
 
 
 
 
 
 
 
 
 
 
 
 
 
 
 
 
 
 
 
 
 
 
 
 
 
 
 
 
 
 
 
 
 
 
 
 
 
 
 
 
 
 
 
 
 
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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