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사랑시

[스크랩]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1] 사랑의 역사 - 이 병 률

시치 2008. 11. 6. 00:19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31]
사랑의 역사
이 병 률
 
 
 
왼편으로 구부러진 길, 그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 여럿입니다

깊다 못해 수차례 스치고 부딪힌 한두 자리는 아예 음합니다

맥없이 부딪혔다 속상한 마음이나 챙겨 돌아가는 괜한 일들의 징표입니다

나는 그 벽 뒤에 살았습니다

잠시라 믿고도 살고 오래라 믿고도 살았습니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등 뒤의 일이 내 소관이 아니란 걸 비로소 알게 됐을 때

마음의 뼈는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었는데 문득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내 목덜미에선 난데없이 여름 냄새가 풍겼습니다
 
 
 
 
▲ 일러스트=클로이
 
 
 

 Reflections/Tim Janis Ensemble   

 

 

 

 
'상처'에 아픈 나, 그래도 심장은 또 뛰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국문과 교수
 
 
 
여행을 하다 보면 '사고 다발 지역'이라는 팻말을 볼 때가 있다.
길에도 사고가 잦은 길이 있다는 말이다.
안개가 잦은 곳이 있고 급커브 구역이 있다.
 
언덕과 고비가 있고 내리막까지 합하면 '길'은 어찌도 그리 삶을 닮았는지.
도시의 골목에서도 자칫 헛디뎌 크게 다치는 수가 있고, 제 방에서도 모서리에 부딪혀 죽는 수가 있다.
그렇게 익숙한 것에 다치는 것은 아마도 잠시 넋이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할 때도 그렇게 넋이 나가 있기에 다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주 넓은 등에 기대/ 한 시절 사람으로 태어나/ 한 사람에게 스민 전부를 잊을 수 있다면'
(〈아주 넓은 등이 있어〉) 좋으련만 그것이 수월한 일인가. '
한 사람에게' 인생 '전부'가 스몄다니!

그러한 '사랑의 역사'를, 말하자면 '인생 전부'가 스미는 사랑의 역사를 '막다른 벽'에 '긁힌 자국'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이 시다.
사랑에 빠진 자들만 골목의 벽에 부딪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사고 다발 구역'에서 자신의 '상처의 역사'를 읽는 것이다.
이 시는 나아가 아예 그 벽 뒤에서 산 삶을 들춰낸다.
'굳을 만하면 받치고 굳을 만하면 받치는 그 벽'은 그러나 내 의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전히 '뼈에 금이 가고 천장마저 헐어가도록' 망가져 가는데도 '처음처럼 심장은 뛰고' 목덜미에선 '여름 냄새'가 나니 어쩐 일인가.
사랑은 여전히 절망 같지만 희망이라는 깨달음!

이병률(41) 시인은 팔방미인이다.
방송작가이자 출판인이고, 때때로 세계를 떠도는 여행가이기도 하다.
여행을 하며 찍는 사진 실력도 프로급이다.
여행가답게 그의 시에는 길이 많이 등장한다.
 
'장미 정원을 걸었다// 내 시는 이 한 줄이 전부여야 하는데 무어라 더 쓸 말을 찾는다'처럼 여행의 경이를 노래한 시들이 많다.
그런데 그의 여행은 자신의 빈 자리를 바라보기 위한 여행이기도 하다.
사랑이 그의 여행을 추동하는 것일까.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화초에 물이 흥건하고 밥 지은 냄새 생생하다/ 사흘 동안 동해 태백 갔다가/ 제천 들러 이틀 더 있다 왔는데/ 누군가 내 집에 다녀갔다//(…)/ 나는 허락한 적 없는데 누군가는 내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고 화초를 안쓰러워하다 갔다'
(〈나비의 겨울〉).
 
이렇듯 알 수 없는 누군가 다녀가기도 하듯이 우리는 또 누군가의 '빈 집'을 눈물 철철 흘리며 다녀오기도 한다.
인간은 드문 경우를 빼고는 솔직히 단 한 번의 사랑을 하고 죽지는 않는다.
'사랑의 역사'는 그래서 슬프다.
입력 : 2008.10.27 23:11
 
 
 
 
 이병률(바람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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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문학 사이-이병률

[작가와 문학사이](18)  이병률-버티고 버티다 쓰는 ‘슬픔의 시’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 기쁨·증오·분노·사랑이 그 극단에 이르면 인간은 결국 슬퍼진다.

이것은 소설가 은희경의 말이다(‘비밀과 거짓말’). 빼어난 시가 노래하는 것들이 그 ‘극단에서의 슬픔’이다.

 

한 순간의 달뜬 감정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그냥 좀 내버려 두었다가, 그것이 슬픔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내 마음의 세입자나 되는 듯 적요해질 때, 그때 쓰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어려운 일은 시를 쓰는 일이 아니라 시를 쓰지 않고 버티는 일이다.

 

1967년에 태어나 1995년에 시인이 된 이병률은 버티고 버텨서 슬픔이 눈물처럼 투명해질 때 겨우 쓴다.

애이불상이라 했다. 도대체 슬프지 않은 시가 없으나 그 어느 슬픔도 비천하지가 않다.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화분’에서)

 

첫 번째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에서 골랐다.

가장 아름다운 시라서가 아니라 가장 그다운 시여서다.

 

‘화분’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라는 구절을 얻었으니 그것만으로 이미 넉넉하지만,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라는 구절이 있어 또 한번 철렁한다.

 

그의 아름다운 시들은 대개 작별을 노래한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별(離別)이 아니라 스스로 힘껏 갈라서는 작별(作別)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 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가벼히’)고 노래한 미당(未堂)의 달관과는 다르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그토록 지극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 그토록 엄결(嚴潔)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작별을 노래하게도 되는 것이다.

 

“이 계절 몇 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한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에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당신이라는 제국’에서)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서 골랐다.

가일층 처연한 작별의 노래다.

지금도 어디선가 사람들은 작별하고 있겠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찌르기도 하였겠다.

당신이 나를 잊어가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무덤을 차릴 일도, 천막을 걷어치울 일도, 피가 말라 생을 접을 일도 아니다.

 

시인은 자꾸 그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마치 그 일들을 이미 다 겪어낸 이의 말처럼 들린다.

그럴 일이 아닌 줄 알지만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듯 그렇게 봄날은 가고 ‘당신이라는 제국’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속수무책이다.

실로 주술적이라고 해야 할 이 시의 매력은 아무리 되풀이 읽어도 탕진되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시집에는 이런 절창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들을 지극히 개성적인 언술로 노래한다. 이것이 이병률 시의 힘이다.

 

그는 여행에 들린 사람이기도 하다.

십여 년의 여행 기록을 모아 산문집 ‘끌림’을 펴내기도 했다.

로망을 팔아먹는 흔해빠진 여행 산문집이 아니다.

그 책은 오히려 범속한 나날들을 지극하게 감당한 사람에게만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의 시들도 결국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상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 충분히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홀연히 떠나면 그것은 그저 무책임일 뿐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러구러 봄날이 다 가는 동안 우리는 끝내 이 서울을 떠나지 못했구나.

님은 삐쳐 있고 꽃들은 진다.

 

 

〈신형철|문학평론가〉

 
 
 
출처 : 迎瑞堂
글쓴이 : 素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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