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호지 문에 달 비치듯
환히 비친다 네 속살꺼정
검은 머리칼 두 눈
꼭두서니 물든 두 뺨
지금도 보인다 낱낱이 보인다
사랑 눈 하나 못 뜨고 헛되이 흘려버린 불혹
거짓으로만 산 이 부끄러움
네게 던지마 피 걸레에 싸서
희디흰 입맞춤으로 주마
내 어찌 잊었겠느냐
가시덤불에 펼쳐진 알몸
사금파리에 찔리며 너를 꺾던
새순 돋는 가시 껍질 째 씹던
나의 달디단 전율을
스무 해전쯤의 헛구역질을
<2004년>
- ▲ 일러스트=이상진
어찌 잊으리, 첫사랑의 '달디단 전율'을
산딸기, 싱아, 까마중, 찔레….
어린 날 집 근처 산길에서 많이 따먹던 식물들이다.
산딸기는 복분자라 불리며 요즘은 재배도 하는 모양인데, 아무래도 복분자보다 산딸기가 예쁘다.
복분자의 한자 어원 때문에 술도 복분자주라 흔히 부르지만, 나는 아무래도 산딸기술이 좋다.
까마중도 싱아도 참 맛있었다.
달콤한 군입거리에 길든 요즘 아이들의 입맛으로는 까마중 열매나 싱아 같은 풀이 맛있을 리 없겠지만.
그러고 보니 잊힌 풀이름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기억되는 데
문학은 퍽 쓸모 있는 징검다리인 것 같다.
찔레는 시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나무다.
그 이름 '찔레'만으로도 영감을 주지만 그 존재 자체가 어딘지 시와 사랑의 비유처럼 연결되는 특별한 식물 중 하나다.
이근배(68) 시인의 '찔레'도 사랑을 노래한다.
아릿하게 아픈 첫사랑의 느낌.
시는 '찔레'라는 이름의 어감과 찔레순의 씁쓰레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맛, 찔레꽃의 청신한 향기까지 절묘한 그 어떤 사랑의 그림자를 찔레덤불에 겹쳐놓는다.
청춘, 이루지 못한 사랑, 뭐 이런 것들이 그 이름 위로 지나간다.
시는 연하게 돋아난 가시껍질을 벗겨내고 먹어야 하는 찔레순의 아릿한 저항의 느낌과 떫은 듯 입 안 가득 번지는 향기 속에서 머뭇거린다.
시인은 "어찌 잊었겠느냐"며 '달디단 전율'을 떠올리지만, 찔레순의 달콤함은 어딘지 까칠하고 성마른 달콤함이다.
시인은, '찔려야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거기엔 스스로 알몸인 채 자신의 가시를 기르며 펼쳐진 찔레덤불이 있고, 너를 꺾으며 내가 꺾인 순간들의 찔레순 향기가 번져오기도 한다.
가끔은 '새순 돋는 가시 껍질째 씹던' 청춘의 캄캄함과 헛구역질이 있고, '
사랑 눈 하나 못 뜨고 헛되이 흘려버린 불혹'이라는 고백을 '찔레'를 빌려서야 말하는 시인의 회한이 있다.
불혹이 되도록 사랑에 눈을 못 뜨면 인생에 이루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
거짓으로만 산 이 부끄러움'이라고 시인이 노래할 때 찔레 덤불 가시가 통째 아프다.
이근배 시인의 또 다른 노래가 '찔레'에 겹쳐진다.
'세상의 바람이 모두 몰려와/ 내 몸에 여덟 구멍 숭숭 뚫어 놓고/ 사랑소리를 내다가/ 슬픔소리를 내다가/(…)/
잃어버린 여자의 머리카락이다가/ 달빛이다가/ 풀잎이다가/ 살아서는 만나지 못하는/ 눈먼 돌이다가/ 한 밤 새우고 나면/ 하늘 툭 터지는/ 그런 울음을 우는'
(〈자진한 잎〉 부분) 시인이 찔레덤불에 겹쳐 우는 가을이다.
가을날 봄 꽃을 추억하는 아픈 날도 가끔은 있어라.
겨울행 - 이근배
대낮의 풍설은 나를 취하게 한다
나는 정처없이
산이거나 들이거나 나는
비틀걸음으로 떠나닌다
쏟아지는 눈발이 앞을 가린다
눈발 속에서 초가집 한 채가 떠오른다
아궁이 앞에서 생솔을 때시는 어머니
어머니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고향에 가고 싶습니다
그 곳에 가서 다시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름날 당신의 적삼에 배이던 땀과
등잔불을 끈 어둠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타고 내리던 그 눈물을 보고 싶습니다
나는 술 취한 듯 눈길을 갑니다
설해목 쓰러진 자리
생솔가지를 꺽던 눈밭의
당신의 언 발이 걸어가던 발자국이 남은
그 땅을 찾아서 갑니다
헌 누더기 옷으로도 추위를 못 가리시던
어머니
연기 속에 눈 못 뜨고 때시던
생솔의, 타는 불꽃의, 저녁나절의
모습이 자꾸 떠올려지는
눈이 많이 내린 이 겨울
나는 자꾸 취해서 비틀거립니다
이연실의 찔래꽃
대한민국예술원(회장 김수용) 정기총회에서 회원으로 선출됐다.
1940년생인 이근배 시인은 송산초, 당진중, 당진상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입학, 김동리, 서정주, 박목월 등 여러 선생에게서 강의를 받았다.
1960년 첫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서정주 선생 서문으로 출간했다.
196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묘비명'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조 '벽'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압록강'이 가작에 당선됐다.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보산각종'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달맞이꽃'이 동시에 당선됐다.
또 1963년 제2회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 시 부문에 '달빛 속의 풍금'이, 시조 부문에 '산하일기'가 당선됐다.
1964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북위선'이 당선됐으며, 제3회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에 시 '노래여 노래여'로 특상을 차지했다.
이 당시 이근배 시인이 세운 신춘문예 최다 당선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학자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겸허하고 유한 학자풍의 인상이 강하게 느껴지는 이근배 시인은 태어나서 최초로 접하고 외운 것이 정몽주 선생의 시조 '단심가'였으며, 김소월보다 시조를 먼저 알았다.
이 같은 영향으로 충청도 내 각종 백일장에서 늘 장원을 차지했다.
또 시는
"만들어지는 시와 우러나오는 시가 있는데
만들어지는 시는
마치 수돗물과 같아서
수도꼭지를 틀기만 하면 시가 되는 것처럼 많이 쓸 수 있지만
우러나오는 시는
우물물과 같다"며
"좋은 목을 골라 나올 때까지 파야 우물물이 솟는 이치를 잘 알기 때문에
가슴속에서 절실한 무엇인가가 넘쳐날 때 시를 쓴다"고 말했다.
불교방송 개국 첫날의 '발원문'과 토함산, 불국사, 석굴암 등의 '명문'을 이근배 시인이 썼다.
박경리 선생의 영결식 조시 '하늘의 토지에서 더 높은 산 지으소서'는 하늘도 울리는 그의 자작 낭송시였다.
이근배 시인은 등단 이후 창작·저술·문단활동, 제자양성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장, '한국문학' 발행인 및 주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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