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시론

정진규의 시론(16) - 산문과 산문시

시치 2007. 10. 22. 23:38
정진규의 시론(16) - 산문과 산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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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과 산문시를 구별할 수 없도록 나를 아름다운 혼미 속에 빠뜨린(<아름다운>이란 말이 <혼미>라는 말 앞에 자연스럽게 놓일 수 있었던 것은 그 혼미 자체가 나를 깊게 감동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썩 뛰어난 산문을, 그것도 소설이라는 장르로 읽었다. 최윤의 [숲에서 숲으로](작가세계, 1993, 1993. 가을.)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작가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의 글에 나타나고 있는 감수성과 화법으로 미루어 그가 이른바 해체의 양식에 매우 자유로운 작가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독립된 단락들로 되어 있었으며, 그 단락들 앞에 일련번호들을 붙여 갈무리하고 있었지만, 50.5.37.42....등으로 배열되어 시간과 공간의 순차적 이행을 처음부터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그가 지닌 이러한 가시적 해체의 양식보다도 그의 산문을 시로 자리바굼하는 상승과 확산의 <힘>에 있었다. 그런 <힘>을 그의 글은 지니고 있었다. 다음 서너 단락을 그대로 옮기어 본다.

42.
1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너와 보낸 약 육 개월 동안, 서울에서는 중구, 종로구, 영등포구, 서대문구(이상 빈도수)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반면 강남구, 강동구, 강성구, 관악구(이 네 구가 모두 ㄱ으로 시작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에는 한 번도 너와 같이 간 적이 없었음을 기억한다. 예를 들어 종로구에서는 종로 1가와 2가, 동숭동, 인사동은 자주 다녔던데 비해 도렴동, 체부동, 팔판동, 훈정동은 한 번도 지나는 적이 없다.(......)

18.
잠시 멈춘 고속도로 변에서 네가 한 말을 기억한다. "우리만 모르는 채, 어디선가 전쟁이 난 건 아닐까?"

52.
숲 속이었다. 기억한다. 비가 내리는 숲에는 사람이 없었다. 숲 너머 꼭대기에는 넓은 바위가 있었고 밑으로 보이는 숲 속의 초록은 소나기의 분무 속에서 회색으로 보였다. 몇 달 전 숲을 이루는 모든 초록은 다만 초록이라고 단순하게 불리울 수 없음을, 언젠가는 무한하게 차이 지워지고 정리되어야 할 그런 초록임을 알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타다닥 작은 불똥이 튀기며 내는 소리로 돌 위에 떨어지던 빗방울을 기억한다. 바위 밑의 뽀얀 대기 속에 드러나던 절벽을 기억한다.

21.
네가 먼저 전화하지 않았을 때 너와의 통화는 늘 짧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기억한다. 네가 먼저 전화했을 때 너와의 통화는 길었다.) 네가 가끔 사용하는, 늘 기다리는 줄이 있었던 공중전화를 기억한다.


짧은 단락들이지만 모두가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고, <기억한다>라는 동사의 반복적 사용을 통하여 과거라는 사실적 체험의 세계로부터 화자가 분리되어 있는 그 상처와 적막을 환기시키고 있음 또한 매우 재미있다. 저러한 글을 <소설>이란 장르로 발표할 수 있었던 근거가 여기에 있었던 듯했다. 그러나 역시 내 관심사는 시로 상승 확산시키는 그 <힘>의 발견에 있다.
짧게 마무리하지만, [42]의 사실적 공간이 보이고 있는 음성상징(사랑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부드러움과 거칠음). [18]의 사랑의 세계, 그 몰입, 현실적 초월과 그 감성. [52]의 사물들의 <속내읽기>, 그 미시적 초점, 혹은 빗방울이 불똥이 되는 그 음성상징(타다닥). [21]의 자기 위주의 인간적 한계에 대한 혐오와 상징적 표현-.
그렇다. 나는 산문시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를 얻을 수 있었다.

비유로 만들어진 정서가 아니라 소설적 체험(리얼리티)의 행간을 통과하면서(빠듯이) 묻혀 가지고 나온 정서, 그 끈끈함이 산문시라고 믿는다.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