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가르마/안상학

시치 2007. 2. 13. 16:56
가르마/안상학

단골집 이발사는 머리를 깎다 말고
가르마 쪽 머리가 잘 빠지는 법이라고 했다.
나는 성긴 가르마를 비춰 보며 문득
가장 가까운 머리카락끼리 헤어진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필 빛바랜 금강산 사진이 걸려 있는 이발소에서
또 나는, 지금 이 나라도
그런 가르마를 곱게 빗어 넘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누군가 빗겨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깎으며 자꾸만
허전한 가르마가 거슬려
차라리 빡빡 밀어버릴까
아니면 올백을 해버릴까 궁리 중인데
내 생각을 눈치 챈 듯, 잡생각 말라는 듯 어느새
나를 누이고 목에 칼을 들이대는 이발사의 콧구멍이 벌름거리고 있었다. 거울에 거꾸로 박힌 낡은 텔레비전에서는 평택 대추리에 미군 기지를 마련해 주겠다고 이 나라 군인들이 철조망으로 가르마를 타고 있었다. 순하디 순한 논바닥에서는 가장 가까운 흙들끼리 헤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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