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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林悌)와 기생 한우(寒雨)의 풍류(風流) _ 한우가(寒雨歌)

시치 2017. 4. 10. 00:59
임제(林悌)와 기생 한우(寒雨)의 풍류(風流) _ 한우가(寒雨歌)
사색당쟁이 싫어서 벼슬도 버리고 산골에 묻혀 살다 죽은 천재시인 임제(林悌).
조선 팔도 전역의 많은 기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또 한편으로는 많은 기녀들을 울리고

눈물 짓게 했던 임제는 풍류한량이자 자유 분방한 시인이다.

가는 곳마다 여인이 있고, 술이 있고, 시가 있었다. 안 가 본 색주가가 없고, 모르는 기생이 없고,

그의 발길이 가지 않은 명승지가 없었다.

산수로 오유(娛遊)하며 풍류 속에서 살았다.

마치 조선 최후의 풍류남아 안민영(安玟英)과 대비 될만하다고나 할까? 

 
수 많은 여인들과 염정을 뿌렸던 그는 한우에게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사랑도, 세상도, 인생도 한 갓 뜬구름 같다며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의 여인

기생 한우(寒雨)가 붙잡는 옷소매를 뿌리친 것을 보면....

 기생 한우(寒雨)는 재색을 겸비하고 시서에 능했으며, 거문고와 가야금이 뛰어났고,

노래 또한 명창이었다.

그녀는 풍류남아 임제가 부르는 한우가(寒雨歌) 한 곡조에 마음의 빗장을 풀고 깊고도

불같이 뜨거운 정염의 밤을 보내고 일편단심으로 풀 섶의 바람처럼 스쳐간 짧은 한 순간의

사랑을 간직한 채 임제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다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북천이 맑다커를 우장 업시 길을 나니
산의는 눈이 오고 들에는 챤비 온다
오늘은 찬비 마자시니 얼어 잘가 하노라
임제(林悌)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
원앙침 비취금을 어듸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맛자신이 녹아 잘까 하노라
한우(寒雨)

 
임제의 한우가(寒雨歌)에 화답하여 기생 한우가 곱디 고운 손으로 퉁기는 가야금 선율에 맞추어

부른 노래로 뜨겁고도 은근한 열정단심(熱情丹心)이 잘 드러나 있다.

이만한 멋과 연심(戀心)을 은근하고 적나라 하게 표현한 시가 동서고금을 통하여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시조는 그 수변(修辨)의 솜씨에서도 뛰어난다.

 

기생 이름인 한우의 순수한 우리말은 곧 찬비가 된다. 따라서 '찬비'는 기생 '한우(寒雨)'를 은유한 것이고,

'마자시니''비를 맞다'는 뜻도 되지만  '맞이한다()'의 은유이다.

'오늘은 그리던 한우 너를 맞았으니'의 뜻이다. 찬비 맞았으니 얼어 자게 되었다찬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니

얼마나 차가운 여인이겠으며 그러니 얼어 잘 수밖에 더 있겠는가 라는 직역도 가능하지만, '얼어 잘까'

'임 없이 혼자 웅크리고 자는 이불 속의 쓸쓸함' 을 암시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한우의 화답은 더욱 뛰어난다.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무엇 때문에 찬 이불 속에서 혼자서 주무시렵니까.

저와 같이 가슴 맞대고 따뜻하게 주무십시요,' 하는 은근한 정담(情談)이다.

찬비 맞았으니 마땅히 언 몸을 녹여 자야지요 하고 임제의 꽁꽁 언 손을 자기의 고운 손으로 감싸 쥔 채

뜨거운 가슴에 묻게 하는 기생 한우의 다정다감한 모습은 우리의 숨결을 일 순 멈추게 한다.

비록 이름은 찬비이지만 실제로는 뜨거운 가슴을 지녔기에 아무리 꽁꽁 언 몸이라도 포근히 녹여 드릴 수 있다는

기생 한우의 풍류와 사랑........

 
불타는 뜨거운 가슴을 지닌 여인이 어찌하여 한우(찬비)라는 이름을 가졌을까?
그 면면(綿綿)한 정한(情恨). 이런 경우를 백낙천은 '비취금 차가운데 누구와 같이 잘까

(鴛鴦瓦冷霜華重 翡翠衾寒誰與共)'라고 탄식했으나 한우의 시에 미치지 못한다.

이쯤 되면 도저히 남자들에게 노래와 춤과 웃음과 하룻밤 풋사랑을 파는 기생이랄 수 없다.

뛰어난 시인이다. 진정 낭만을 알고 사랑을 불태울 줄 아는 그런 여인상이다.
!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의 한이여.......

낭만도, 정취도, 사랑의 향기도 잃어버린 채 현재를 메마르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저 두 연인의 짧은 하룻밤의 사랑의 뜨거움 속에 맴도는 그 사랑의 절절함이

또 그 아련함이 너무나 멀기만 한 것 같다. 

400여 년 전의 이들의 로맨스야말로 가히 시대를 넘나드는 사랑의 압권이 아닐까.

오늘의 숨 쉴 틈도 없이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휩쓸려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본청구영언(珍本靑丘永言) 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임제는 자를 자순(子順), 호는 백호(白湖)라 하며 금성인(錦城人)이다.

선조 때에 과거에 급제, 벼슬은   예조정랑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를 잘 타며, 노래를 잘 불러 호방한 선비였다.

이름난 기생   한우를 보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날 밤 한우와 동침하였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음은 아쉬운 일이다.

그녀에 대한 기록으로는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에는 '규수(閨秀)', 해동가요 에는

'명기구인(名妓九人)'이라 하여, 아홉 기생 중에 넣은 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