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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와 나비/박지웅

시치 2016. 12. 20. 20:54

망치와 나비/박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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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 방울 없이 새로운 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탕, 탕 망치로 나비를 만든다 청동을 때려 그 안에 나비를 불러내는 것이다

 

청동은 꿈틀거리며 더 깊이 청동 속으로 파고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망치는 다만 두드려 깨울 뿐이다 수없는 뼈들이 몸속에서 수없이 엎치락뒤치락한 뒤에야 하나의 생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

 

청동을 붙들고 있던 청동의 손아귀를 두드려 편다 청동이 되기까지 걸어온 모든 발자국과 청동이 딛고 있는 땅을 무너뜨린다

 

그러자면 먼저 그 몸속을 훤히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단단한 저편에 묻힌 심장이 따뜻해질 때까지, 금속의 몸을 벗고 더없이 가벼워져 꽃에 앉을 수 있을 때까지 청동의 뼈 마디마디를 곱게 으깨고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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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출렁이던 무거운 소리까지 모두 불러내면 사지를 비틀던 차가운 육체에 서서히 온기가 돌고 청동이 떠받치고 있던 청동의 얼굴도 잠잠하게 가라앉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두드리면 청동은 가볍게 펼쳐지고 그 깊숙한 데서 바람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금속 안에 퍼지던 맥박이 마침내 심장을 깨우는 것이다

 

비로소 아 비로소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 한 올 한 올 핏줄이 새로 몸을 짜는 것이다 그 푸른 청동의 무덤 위에 나비 하나 유연하게 내려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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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웅 시집,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문예중앙시선, 2016)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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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이름으로 태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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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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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의 이름으로 태어나는 나비의 신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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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시인의 망치와 나비는 시 자체가 지닌 탁월한 아름다움은 물론 한 편의 시가 태어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 시에서 나비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가 태어나는 과정과 그 궤적이 겹쳐지면서 한 시인이 추구하는 시 세계의 미적 본질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준다.

‘(청동으로) 나비를 만드는 일은 바로 ‘(물 한 방울 없이) 새로운 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시인이 인간의 창조 작업이 갖는 성격(‘에서 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다른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청동나비가 되는 변화 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시인)한 방울 없이 망치새로운 종을 불러일으키는존재이다. 청동을 때리는 망치는 사물의 가려진 부분을 자극해 그 본질을 일깨우는 것(매개)으로 볼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한밤내 우는 것처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애쓰는 시인의 정신또는 노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들겨도 그것(청동)꿈틀거리며 더 깊이 청동 속으로 파고들뿐이다. 그것은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제 본질을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사물의 뼈아픈 몸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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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와 나비에 나타난 청동에서 나비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굳이 순서를 말하자면 (청동의) 몸속을 훤히 읽을 줄 알고 나서, (청동이 되기까지) 걸어온 모든 발자국과 청동이 딛고 있는 땅을 무너뜨리고 난 뒤, (청동을 때려) 그 안에 나비를 불러내어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 새로 몸을 짜는 것 (푸른 청동의 무덤 위에) 나비 하나 유연하게 내려앉는 것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하지만 거기엔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생략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속에 나비가 깃든)청동을 얻기까지의 과정이다. ‘청동은 시의 가능성을 내포한 사물(시적 대상)이며, 시 쓰기는 그러한 존재와의 마주침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의 오랜 기다림이다. 그 순간에 도달하기 전까지 시인은 얼마나 오래, 수많은 길을 돌아왔을까. 하지만 지금은 시인의 손길을 기다리며 그 속에 깃들어 있을 나비를 불러일으켜야할 때다.

나비=의 가능성을 품은 청동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청동을 때려 나비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그 몸속을 훤히 읽을 줄아는 눈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보고 그것의 본질(의미)을 헤아릴 줄 아는 힘(능력)이다. 그렇게 두 눈을 부릅뜨고 기다리는 순간이 다가올 때까지 끊임없이 망치로 청동을 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인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어떤 존재가 새로운 종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존재가 되기까지 걸어온 모든 발자국과 그(그것)가 딛고 있는 땅을전부 무너뜨려야만 한다. ‘하나의 생을 완전히 소멸시키지 않고서는 새로운 종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 곳”, 바로 그곳이 나비가 태어나는 자리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청동을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깊숙한 데서 바람소리가 나, “금속 안에 퍼지던 맥박이 마침내 심장을 깨우는지점에 다다를 수 있게 된다.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 곳에서 한 올 한 올 핏줄이 새로 몸을 짜는그 순간, 비로소 한 존재가 지녔던 모든 것을 완전히 지워낸 그 푸른 청동의 무덤 위에 나비 하나 유연하게 내려앉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는 것 역시 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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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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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웅 시인에게 있어 나비는 시작이면서 끝이고, 끝이면서 또 시작이다. 그의 나비는 어딘가에 내려앉음으로써 그것이 이 되게끔 한다. ‘청동나비에서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종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제 새로운 신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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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손가락이 피었다

- 인연人戀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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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가락은 자아의 결핍을 의미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자아에게 주어진 육체적, 물질적, 정신적 측면에서의 결핍 상태를 가리키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단순한 결여를 넘어선 어떤 것, 다시 말해 무언가를 생성하기에 적합한 상태인 비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빈 손가락의 인식은 마침내 손가락이 피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그 속에는 나비가 날아와 앉는 뜻깊은 과정(나비는 꽃에 내려앉는 것이므로 나비가 날아와 앉은 빈 손가락은 자연히 의 의미를 지니게 되는)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한 빈 손가락의 변화는 ‘(꽃의)피어남이라는 황홀한 시적 체험으로 이어지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탁월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 편의 시로 태어나는 것이다.

빈 손가락, 망치와 나비에 나오는 하나의 생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 “청동이 되기까지 걸어온 모든 발자국과 청동이 딛고 있는 땅을 무너뜨린다”,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 곳등의 표현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는데, 이는 눈밭에 찍힌 손바닥이 늑대 발자국이다/ 나는 발 빠르게 손을 감춘다(늑대의 발을 가졌다)”에서 볼 수 있듯, ‘빈 손가락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겪었을 불행의 정도(크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불행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청동을 마주치기 위해 시인이 필연적으로 뛰어넘어야 하는, 고통의 크기만큼 행복한과정이기도 하다. 그에게 있어 시는 바로 불행 없이는 울리지 않는 악기”(박지웅, 심금心琴)이기 때문이다.

인연因緣이 아닌 인연人戀, 이 시의 제목 인연人戀은 그런 의미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빈 손가락이 되는 일은, 바로 인연人戀의 궁극에 다다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깨달음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것은 (인간)’를 온전히 끌어안는 일, 곧 사랑의 완성(충족)을 뜻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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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향한 시인의 욕망은 달성되는 순간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은, 모순투성이의 그릇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의 생이 완전히 소멸하는것이며, ‘한 줌의 청동도 남아 있지 않은곳이다. 다시 그 자리에 서지 않고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종을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다. “푸른 청동의 무덤 위에 나비 하나 유연히 내려앉는찰나, 시인의 망치는 이미 새로운 것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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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신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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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토피아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