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관련글

늘 먼 데를 보는 시인 -김추인_

시치 2022. 1. 25. 13:08

늘 먼 데를 보는 시인,-김추인_

 

오늘은 말고, 여기도 말고!-대담 및 정리 박완호 시인

 

 

 

 

박완호: 선생님, 반갑습니다.

김추인: , 저도 제가 좋아하는 박완호 선생님과의 대담 자리는 많이 기쁘고 설레기까지 하네요.

 

늘 혼자에 진저리치면서도 중독인 듯

눈발이라도 날리면

어딘가로 떠날 것을 꿈꾸는 존재

 

박완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어수선한 시절을 어떻게 건너고 계시는지요? 궁금해할 분들을 위해 근황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시지요.

 

김추인: 그렇죠.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는데 지구 온난화로 인한 폐해까지 이어지다 보니 걱정이 됩니다. 시베리아 같은 곳은 30도를 넘어간 적이 별로 없었는데 올해는 38도를 기록, 기상관측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데요. 이런 더위가 지속되면 땅속에 죽은 듯 엎드려있는 동토층의 좀비(메탄)가 녹아 나와 지구 온난화를 더욱 가속 시킬 거라고 합니다.

저 자신도 엄청 힘든 여름을 보냈어요. 우리 집 생명체(?)  1순위가 식물()들인데 얘들이 심한 더위를 먹었어요. 애를 썼는데도 귀한 다육식물이나 철화들이 상하거나 소생 불능에까지 이르기도 해서 속이 많이 상했지요.

 

박완호: 철화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데 그게 어떤 건가요?

 

김추인: 다육식물이 외부의 영향(온도나 빛, 열 등)을 받아서 생장점이 띠처럼 넓적해지는 변이종이 되는 거라, 더 귀함을 받죠(사진을 보여준다). 이 철화는 20, 30년 된 에오니움철화라는 것인데 상이군인처럼 이렇게 제가 목발을 받쳐주었어요. 너무 더워 축 늘어지고 벌어지려고 해서요. 팬데믹 동안 분재를 몇 개 제작하고, 방콕 하는 동안 기억, 평행우주, 나혜석의 세계 일주기, 100명의 특별한 유대인, 3 인류 등 책을 한 보따리 사다 놓고도 모두 읽기를 시작하다 덮는 경우가 많았어요. 모기와 더위와 씨름하느라고요.

 

박완호: 경남 함양이 고향이신데요. 우리 문학에서는 공간(장소)을 바탕으로 작품을 읽어내려는 경향이 적지 않고, 특별히 공간성과 연관 짓지 않더라도 고향 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호모 노마드라고 부르시는 선생님의 시에서 고향,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요.

 

김추인: , 저는 지리산이 고향인데 제 시의 많은 부분에서 숲, , , 들판, 산 그림자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을 작품을 다 쓰고 나서 발견하곤 합니다. 그것들이 제 고향 산천이고 어머니라고나 할까요. 어머니는 평생을 누워계시다시피 한 분이어서, 저는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적막한 집을 빠져나가 산이고 들판이고 산돌이처럼 쏘다녔죠. 그러다 보니 숲, 나무, , 벌레들이 친구들이라 쓸쓸한 줄을 몰랐어요. 지금도 어릴 적 버릇 그대로 혼자 들판을 거닐거나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 자장면 그릇 앞에 홀로 앉아 있는, 늘 혼자에 진저리치면서도 중독인 듯 눈발 날리면 어딘가로 떠날 것을 꿈꾸는 여자. 그게 바로 저이지요.

 

박완호: 어린 시절, 또는 학창 시절의 선생님은 어떤 아이였는지요?

 

김추인: 제 유년의 특이점이라면 동화의 시기가 없었어요. 초등학교에서 바로 성인의 세계로 진입했다 할까요. 아홉 살 터울 오빠의 세계 명작 소설집들, 오빠가 읽던 통속소설이며 포르노 잡지까지 모두 읽어 치웠지요. 그런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은 들었는지 꼭 벽장 속에 숨어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제 학창 시절은 정적이면서도 동적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초등학교 땐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전학을 많이 다니다 보니 진도는 안 맞고 공부는 싫어지고. 머슴아처럼 외사촌들과 총싸움 칼싸움하며 놀기도 하고 오빠의 성인 만화책이나 외할머니의 춘향뎐’, ‘숙영낭자뎐’, ‘놀보뎐 등 이바구책을 읽었지요. 구성진 외할머니의 목소리 풍으로. 참 버라이어티했다고나 할까요.

 

박완호: 시골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언제 올라오셨는지요?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언제 어떤 계기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김추인: 고향을 떠나온 아이는 늘 창가에 혼자 섰거나 학교 늙은 등나무 밑에서 4층 음악실을 목이 빠지게 바라보곤 했는데요. ‘김금환 음악 선생님의 멋진 테너 목소리. 당시 선생님은 오페라 토스카의 주인공을 맡아 포스트에서 자주 뵙는 분으로 제가 짝사랑에 빠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숙명에서의 고교 시절이 꿈처럼 지나가고 대학도 낙방을 먹었네요.

제 최초의 시인지는 모르겠는데, 어머니 말씀이 한글을 겨우 뗀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구긴 종이쪽지에 삐뚤빼뚤 글씨로 하늘에는 구름이 동동하고 물에는 오리 새끼가 동동하고라고 썼더랍니다. 그래서 야가 소설가가 될라 카나?’하고 생각하셨답니다. 5학년 때 다알리아란 시를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고 그 후 대학 졸업하기까지는 소설에 빠져 살았습니다. 첫 소설 하얀 태양을 써서 김우종 선생님께 보였더니 군이 무슨 카뮈나 사르트르라고 이렇게 어렵게 쓰는가? 소설은 쉬워야 해요.” 하시는 바람에 소설을 꺾고 시로 돌아섰지요.

 

박완호: 동생 분께서 국악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매를 국악인과 시인이라는 예술가로 키워내신 시인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지 궁금합니다.

 

김추인: 어머니께선 심장병을 앓은 분이라, 유난히 막내(여동생)를 애닳아 하신 것이 당신께서 일찍 세상을 뜰 것으로 생각하신 듯해요. 가야금으로 인간문화재이신 김윤덕 선생께 막내의 재능을 보여드리게 된 인연으로 그분의 수제자가 되었지요. 저더러는 너는 뭐든 혼자 잘했으니 걱정 안 한다. 꿈에 내가 드럼통 속에 갇혀 앉았는데 하늘에 주먹뎅이만한 별이 하나 유난히 빛난다카이. 니가 서울로 갈 때 꾼 꿈이다. 잘 될 기다 하시며 하얗게 미소를 지으셨죠.

 

박완호: 등단하신 지 37년 된 중견 시인이신데, 1986년에 나온 첫 시집 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에서 2017년에 나온 오브제를 사랑한에 이르는 기나긴 시의 노정에서 꾸준히 보여온 치열한 시작 태도는 후배 시인들이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아내, 엄마, 며느리, 교사라는 여러 정체성을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살아오신 걸로 아는데요. 그런 중에도 시 쓰기의 공백 없이 수십 년 세월을 건너오셨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이유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것과 관련한 말씀이 듣고 싶네요.

 

김추인: 참으로 기나긴 시의 노정이겠지요? 가정, 직장, 또 사회에서 여러 역할을 해내며 대학원 공부까지 하느라 잠 속에서도 달렸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언젠가 김상미 시인이 농담처럼 툭 던지는 말이 , 김추인 선생님은 참 신비로워요.”라더라고요. 제가 ? 뭐가?” 하니, “보통 여성 시인들이 등단하여 활동하다가 어느 날엔가 슬그머니 사라지는데 샘은 처음부터 계속 쉬지 않고 발표하시잖아요.”라고 했던 게 생각납니다. 젊어서는 청탁을 받으면 시 쓸 공간이 없어 독서실로 갔어요. ·고등학생들과 나란히 앉아서도 쓸 수 있다는 게 행복했습니다. 등단하고 나서 3년쯤 지났을 때인가, 등단지의 전봉건 선생께서 처음 만난 저를 보고 매년 시를 청탁하면서도 김추인 시인이 남성인 줄 알았습니다. 허허라고 하셨지요.

 

사막은 많은 것을 보여주진 않지만 귀한 것을 보여준다지요.

장엄한 불용不用의 용이라고나 할까요.

 

박완호: 선생님의 시에 나타난 사막은 초기 시에서부터 집중적으로 다뤄온 도시라는 공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모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는 점에서 두 공간이 갖는 접점을 확인할 수도 있겠고요. ‘사막이라는 특정 공간을 집중적으로 시화詩化하는 시인으로서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사막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김추인: , 잘 보셨어요. 저만큼 사막 시를 많이 쓴 시인도 드물 것 같네요. 사막은 많은 것을 보여주진 않지만 귀한 것을 보여준다지요. 텅 빈 충만이랄까요. 아늑한 유년의 자연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게 된 저에게 도시는 부조리와 불순으로 병든 사회의 삭막한 병동이었으며 사막이었습니다.  떠나야 한다. 어디로든 여기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도 떠나야 한다.’라고 중얼거리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갑상선을 앓느라 빼빼 말랐고 병원에서는 중증 신경과민이란 진단으로 요양을 적극 권했지요. 그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 긴 세월 빼도 박도 못하던 일상의 담을 뛰어넘어 저 아프리카의 나미브사막을, 사하라사막을, 고비사막을 혼자 헤매는 여자(시인)에게 그곳은 도시의 팍팍한 사막이 아니라 신이 창조하신 원초적 사막이었습니다. 순결한 처녀의 땅이었죠.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막은 우유니 소금사막’.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흙 한 줌 없이 텅 빈 곳. 나를 중심으로 수많은 원형의 굴렁쇠가 돌고 있는 듯, 한참 섰으면 하얗게 어지러운데(제 주관적 느낌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곤 했습니다. ‘는 함이 없으면서도 하지 못함이 없다(道常無爲而無不爲)’라는 노자의 혜안을 떠 올렸습니다. ‘저 장엄한 불용不用의 용을 봐봐, 사람들아하고 중얼거렸지요. 소금사막의 바닥은 수억만 개의 육각형들! 치명적이었어요. 사막이 나를 사랑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찌르찌릇, 알람 소리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등엔 꾹꾹 눌러 담은 45리터들이 배낭, 앞엔 새끼 배낭, 그렇게 해마다 사막으로 떠났습니다.

 

박완호: 선생님의 시에는 음악, 미술 등 인접 예술의 모티프가 자주 등장하는데요. 최근에는 미술, 음악 등 타 예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보이는 시인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특별히 즐기시는 예술 분야가 있는지요? 예술가적 기질이 뛰어난 분이니 남다른 재능을 지닌 분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추인: 아뇨, 문학 외에 따로 특별한 재능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제 개인적 욕심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악기 하나쯤 배우고 싶었지만, 실현 불가였어요. 제 개인의 성향이 같은 행동의 반복을 못 견뎌 하거든요. 단 두세 소절을 몇 날 며칠 같은 것을 치거나 부는 일이 지옥 같아서요. 그래도 유화나 수채화 데생은 혼자 한 것이 몇 점 있고 혹시 연극을 했다면 잘했을 거 같기는 해요. 어느 해 모 잡지에서 우리 시대의 창조적 시론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산문 청탁이 왔습니다. 고민이 되었지요. 직관은 남들보다 발달했다 싶은데 논리라곤 전혀 없거든요. 생각 끝에 희곡 형태로 전개해보자 결정했지요. 그때 나온 것이 제 최초의 레제드라마 시인의 유레카를 위한 리허설입니다. 젊어서는 현대무용을, 어려서는 고전무용을 조금 한 적 있어 어떤 자리에서든 신명이 걸리면 탈춤판이나 사막의 현지 악기 선율에 제 나름의 춤사위를 보이며 취합니다(아이고 민망!).

 

내 시의 중심 테마는 목숨들의 쓸쓸한 행진,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꼭 실천해야겠지요.

 

박완호: 선생님의 시에서는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개성 있는 안목을 지녔는가,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에 담아냈는가 하는 점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선생님의 시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 문제를 다루는 자기만의 방식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김추인: 지구촌에서의 우리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신생대 중에서도 홀로세에 속하는데 더 구체적으로 인류세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는 게 사실이지요. 50년대 초, 처음 원자폭탄이 터진 이후부터 갖게 된 이름, 그것이 인류세의 시작점입니다. 거북이나 비둘기 배 속에서 플라스틱이 나오고 많은 종이 지구에서 사라집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시작되었고 자연이 역습해오고 있음을 보죠. 실천적 삶은 못 살더라도 세상에 알려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의 중심 테마는 목숨들의 쓸쓸한 행진이고, 그래서인지 제 시의 화법이 남성적 기질에 가깝게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쉽게 버린 쓰레기, 플라스틱, 비닐 등 잘게 부서진 미세플라스틱 문제,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꼭 실천해야겠지요. 플라스틱 스푼, 나무젓가락 등을 모아 돌려주고 플라스틱을 안 써보려 노력하면서도 페트병으로 재생된 옷을 입고, 신고,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호모사피엔스, 그게 바로 우리입니다.

 

박완호: 과학, 수학 같은 분야에서 다루는 개념이나 용어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꽤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할 텐데요. 최근에는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요. 선생님의 시에서는 상대성 이론, 진화론, 소립자, UFO, DNA 등 다양한 개념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같은 시인으로서 선생님의 다양한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대단히 부러운 점입니다. 독서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지식을 쌓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 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추인: , 우주, 천문 등이 제 시에서 이나  다음으로 자주 등장한 것 같습니다. DNA, UFO 역시 자주 나오는데 딸이 과학자(유전공학자)라 토론을 자주 하는 까닭도 크다 하겠습니다. ‘우주라는 말은 중국 전한시대 철학자인 회남자가 말하기를,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라 하고 사방과 위아래를 우라 한다.” 했는데, 이는 시공간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여기서 우주라는 말이 유래했다지요. 외계인은 있을까요? 이 넓은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공간의 낭비다.”, 코스모스를 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말입니다. 과거 지구에 외계인이 다녀간 흔적에 대해 과학자, 역사학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저는 신비주의자에 이상주의자라 UFO, 외계인 같은 것을 찰떡같이 믿는데요. 모든 존재는 시간에 의해 그 꽝꽝하던 질서가 무질서화 된다는 것. 어떤 새 옷도 해지고 집도 점차 삭고 자식들도 크면 흩어져가고, 그 모든 것이 우주의 일이지 싶습니다.

 

박완호: 선생님의 경우, 사이버 현실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크지 않았던 1990년대 이미 사이버 클리닉 같은 작품을 통해 미래 사회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셨는데요. 최근 발표하신 2040, 소크라테스와의 문답, AI, 까마득한 날에 이미, 대략에 대한 담론, 미래의 나에게 말 걸기, 내일의 친구들에 고 등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주제 의식을 집중적으로 담아내려는 태도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지금 쓰고 계시는 작품들과 연관해서 미래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김추인: 미래란 미지의 아직 닿지 않은 시간이기에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안을 가미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거기에다 사이버 현실이라니, 없는 가상의 세계라니. 아직 이 세상에 닿지 않아야 할 미래는 이미 당도하여, 어제오늘 속에서 0 1이라는 디지털 세계를 등에 업고 활보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앞으로 15년 내 수명연장 속도가 노화 속도보다 빠르고 21C 중반에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없어진다.”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학자가 말이죠. 이 말은 인간 수명이 불멸에 가까운 장수를 누릴 것이며 휴머노이드 애인, 로봇 도우미, 로봇 셰프, 로봇 비서, 로봇- 로봇- 등등. 어쩌면 사람과 결혼하는 대신 예쁘고 맘씨 곱고 부드러운 로봇 아내가 그 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르지요. 한계가 있는 인간의 신체에 기계가 융합되어 못하는 것 안되는 게 없을 테니 위의 예언은 좀 빠르고 늦고가 있을지언정 100% 실현될 것입니다. 선생님께선 생뚱맞은 제 발언에 불만이십니까? (대담자, 웃음)

 

아픈 시대를 지켜보는 견자見者로서

로 이 시대를 증언하자는

 

박완호: 지난 세기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여러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이 양적, 질적으로 변화해온 것 같아요. 최근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 요인이기도 한 페미니즘 문제와 관련하여 선생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답을 찾아 나가야 할 테니까요.

 

김추인: 페미니즘이라, 저는 페미니스트는 아닙니다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불평등이라는 문제는 앞 세대로 올라갈수록 정도가 심했었고, 현재 역시 아직 완전한 평등을 이루었다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현실에 분개합니다. 얼마나 많은 여성이 희생의 삶을 견디었습니까. 단적인 예로, 조선의 이옥봉은 감히 여자가 시를 쓴다는 이유로 쫓겨나 온몸에 두루마리 시를 감고 바다에 뛰어듭니다. 중국까지 흘러간 시체에서 시신에 감긴 시들이 너무 뛰어나 중국의 고관대작이 이옥봉 시집이라는 책으로, 또 허난설헌의 시집 역시 중국에서 출간하였으니 한국인으로서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유럽에서도 수학 같은 학문을 남자 이상으로 잘하거나 너무 똑똑하면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에 처했으니, 이런 사실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임을 우리가 다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심리학자 피터슨은 어떤 인생이 잘 살았다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을 비롯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는데, 얼마나 적절한 답인가요.

 

박완호: 저 개인적으로는, 시인이란 이쪽과 저쪽 어느 쪽으로도 두 발을 다 내딛지 않고, 끊임없이 경계를 서성이는 존재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에서 ‘inside-outside’에 대한 사유를 읽어내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주목할 점은 경계 주변을 서성이다 마는 게 아니라 이곳을 넘어 저곳에 닿으려는 적극성, 용기가 시의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겠지만요. 바로 그런 점이 선생님 시의 지평을 열어가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계라는 개념과 연관해서 시인이 존재하는, 존재해야 하는 자리는 어떤 지점인지,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오랫동안 시인의 길을 걸어가야 할 후배()에게 한 말씀 건네주시겠어요.

 

김추인: 저는 어디에서나 나약한 경계인입니다. 흑백논리는 부정합니다. 흑만도 아니고 백만도 아니니 회색 주의자라 할까요. 그렇다 보니 경계를 해체하고 이쪽의 담을 혹은 저쪽의 담을 넘는 경우가 많아요. 양쪽이 다 일리가 있고 비등점에 가깝다 해서 끓어 넘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토론보다는 토의가 마음에 들어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역시 진보 쪽에 정신의 다리가 건너가 있는 어디서도 어정쩡한 저는 경계인입니다. 채만식이 말한 현대의 나약한 인텔리겐치아’, 바로 그런 저 자신을 보며 그래 이 아픈 시대를 지켜보는 견자見者로서 시로 이 시대를 증언하자(많이 우회적이겠지만)’라고 마음먹었지만 얼마나 이뤄냈는지 모르겠습니다. 후배들에게는 뭐든 소신껏 행동하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박완호: 개인적인 시 쓰기와 더불어 등등시사’ ‘여여 같은 모임을 통해 다른 시인들과 교류해가며 여러 권의 책을 묶어내기도 하셨는데요. 어떤 분들과 어떤 형태로 모임을 이어가시는지, 그러한 교류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나 선생님의 시 쓰기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김추인: 그동안 누구에게 시를 배운 적 없지만, ‘정신적 스승들이 사물들이 다 시의 스승이다 생각하며 혼자 엎드려 쓰다가 늦은 나이에 동인 영입을 청해와 얼마나 감사하던지. ‘여여 동인은 몇 년에 걸쳐 각자 제 목소리가 있다고 생각되는 좋은 시벗들로 추진했는데 성공이라 생각됩니다. 예술의 꽃, 모든 예술은 자신만의 목소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생과 사, 익숙한 세계와 낯선 세계, 여기와 저기, 사물계와 인간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에 시방세계가 하나의 카오스임을 아는 우리 동인들은 경계 너머의 세계를 보아낼 훌륭한 시인들입니다. ‘등등시사’ ‘사막의 형제, 뚜벅이들’ ‘여여가 모두 그렇습니다. 현대시는 현실의 다양성만큼 각자 다른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동인들은 어떤 형식, 어떤 주제의 시도 어떤 상황에서도 서정으로 귀환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박완호: 몇 년 전 선생님 댁에 있는 화분, 분재를 보고 놀랐던 일이 기억납니다. 하나하나가 더없이 깔끔하고 아름다운 화분과 분재가 그렇게 많은 실내 정원을 본 일이 없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의 시에 깊이 스민 생명성에의 추구, 생명 의식이 일상의 삶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많은 꽃과 나무를 가꾸시려면 많은 수고와 시간이 필요할 텐데, 혹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드신 적은 없었는지요. 가꾸시는 중 특별히 귀애하시는 식물도 있으시겠죠?

 

김추인: 저는 식물 경배자입니다. 남을 해치지 않고도 자신을 발전시킬 줄 알고 멀리까지 제 자손을 퍼트릴 줄 아는데요. ‘식물의 기억력’,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식물은 두뇌가 없는 대신 그 기능을 잎과 줄기, 뿌리 등 몸 전체에 네트워크로 연결해 수행한다고 하네요. 인간도 자신을 복제하는 존재라 할 수 있는데 식물의 복제 능력은 인간을 뛰어넘지요. 줄기 하나 이파리 하나만 흙에 묻어도 뿌리를 내리고 성체로서 자랍니다. 함안 연못 터에서 발견된 연의 씨가 700년 만에 싹을 틔워 옛 모습 그대로의 연꽃을 피웠지요. 유전자는 신의 암호라 생각되는데 얼마나 신비롭습니까? 우리 집은 수많은 식생植生들로 가득 찬 실내 뜰인데요.

그중에서도 흑송 분재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살기 시작했으니 마흔 넘은 제 아들보다 나이가 많고 지금도 청청하게 식물들의 터줏대감 노릇을 수행하고 있죠. 이렇게 아름다운 식물들이 자연에서 매년 14만 종이 멸종하고 있다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요. 종자 저장소인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의 발표입니다. 우리나라도 이 땅의 토종종자 1만 개를 스발바르에 보내 영구보존 하고 있다니 다행스럽고요.

 

시인은 자기 목소리를 지켜나가야만 한다

 

박완호: 선생님에게서는 리얼리스트와 모더니스트의 기질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리얼리스트의 기질이 엿보인다면, 언어를 대하는 태도에서는 모더니스트의 기질이 드러난다고나 할까요. 제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시인 본인으로서는 그것과 관련해서 어떤 생각을 지니고 계시는지요.

 

김추인: 딱히 제 시가 어떤 문예 사조에 경도되어 있다는 생각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는데요. 별다른 생각 없이 느낌이 부르는 대로 써서 발표하고 난 후에 가까운 시인이나 선배로부터 김 선생, 이번 시는 모더니즘적 시풍이 많이 배어 있네.”라든가, “선생님, 시가 아주 리얼해서 생동감과 현장성이 너무 좋았어요.” 등의 얘기는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김기림, 정지용, 김승희, 김춘수, T.S. 엘리엇 등 제가 좋아하던 시인들이 다 모더니스트 시인들이네요. 아마도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제가 고교 때 추상 화가이신 외숙부님 댁에서 기숙했고, 그림을 좋아하고 색채에 민감하여 회화적, 시각적, 이미지즘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 현실적 세태를 희화화하곤 하다 보니 리얼리즘적 구석이 많았을 거라는 느낌도 듭니다. 모더니스트라 할 김수영 시인은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다. 이는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정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목숨 걸고 불온한 시를 발표했던 시인을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박완호: 문단을 둘러보면, 그때그때 주목받는 스타일의 시를 따라 쓰고 싶어 하는 성향을 보이는 시인들이 적지 않은 듯합니다. 물론 누가 알아주든 말든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가며 자기만의 시를 써 가는 시인들이 더 많겠지만요. 그런 문단의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김추인: 세상이 앓고 있으니 내가 춥고 아프니, 해서 시인에 따라서는 고통을 질료로 독한 언어의 집을 짓기도 합니다. 모래의 집인 줄 알면서요. 시인은 편 가르기에 열중하는 세상이 못마땅합니다. 어떤 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더 굴욕입니다. 대소 무리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쓸쓸하지만 감내해야 할 덕목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어느 정도 감수성적 영향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자기 목소리를 지켜야 한다 생각합니다.

 

박완호: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들은 저마다 독특한 상상력의 결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스스로 제 상상력을 연날리기의 형태에 빗대어서 이해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어떤 형태로 바라보시는지, 적당한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김추인: 선생님의 시적 상상력을 연날리기 형태에 빗댄다는 말씀, 정말 재미있네요. 연실을 감고 푸는 시인의 상상력이나 긴장된 창작 과정을 떠올리게 돼요. 저의 시 쓰기는, 그런 의미로 대비해 본다면 멍 때리며 빗소리 듣기라 할까요. 잔잔한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 물무늬, 파문의 아름다움과 백색 소음, 그 위로 휙- 이미지 하나 날아든다면. 꽃은  라 생각됩니다. 꽃이나 시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서야 한 송이의 꽃을 한 편의 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유를 투옥해야 한다라고 갈파한 마그리트 뒤라스의 에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공감이 컸던 때가 떠오릅니다. 안일한 작시보다 이렇게 태어난 시가 역시 좋은 시일 거고요. 완호 선생님의 시 아내의 발’-꽃신 주마 했는데 서로가 돌길-이란 시에서 시인의 진심과 사랑이 얼마나 따스하고 투명하던지요.

 

박완호: 독자로서, 같은 시의 길을 걷는 동지로서 볼 때, 선생님은 여러 권의 시집을 내며 활발하게 시를 써오는 동안 매번 달라진 모습을 보여, 끊임없이 변신의 길을 모색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시뿐 아니라 삶에서도 큰 폭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요.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서울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로 시작해서 고교 국어 교사로 퇴직하셨던데,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거든요. 최근의 시집을 살펴보더라도 프렌치키스의 암호, 행성의 아이들, 오브제를 사랑한 등에서는 시집마다 낯설어진 시인의 모습이 읽히거든요. 오브제를 사랑한을 내신 지 사오 년이라는 시차가 있으니 곧 새 시집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듭니다. 다음 시집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지, 궁금해할 독자들에게 살짝 한마디 해 주시겠어요.

 

김추인: 제 시편들은 1 4집을 제외하고는 자타가 공인하듯 껌껌하고 까다로운 것들이 많다고 여겨집니다. 1 온몸을 흔들어 넋을 깨우고에서는 유년의 소묘와 개인 서정, 2·3집은 80년대 후반 전후 한국의 부조리한 사회상황과 갈등, 4집은 3집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것으로 사회성 짙은 3집에 비해 제법 말랑하고 서정성 짙은 시들이라 일반 독자들은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지요. 5집인 모든 하루는 낯설다는 화자의 상황적 괴리가, 6·7집은 지구촌의 부조리함을 풍자, 8·9집은 매혹적인 생명의 소묘와 우주적 서사 정도로 간략히 요약되겠네요. 새로 선보일 시집 해일은 나와 타자라는 존재를 통해 나의 양면성을 성찰하고 미시적 생명의 동태나 거시적 우주 혹은 미래 상황에 접근한다고 할까요. 앞으로 사막 기행 산문집 서사적 장시집(長詩集)도 꿈꾸고 있습니다

 

박완호: 지금까지 내신 시집 가운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집을 한 권만 고르신다면요? 간단한 이유를 덧붙여 주시면 더 좋겠고요. 또 그동안 쓴 작품 중에 본인의 대표시라고 할 만한 것을 몇 편만 골라 주시겠어요.

 

김추인: 여러 시집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제 개인적 감수성이 가장 깊게 파고 들어간 5 모든 하루는 낯설다에 실린 광대 일기 연작들인데요. 화자는 거의 전편에서 붉게 웃는 커다란 입을 그려 넣은 피에로입니다. 피에로는 슬퍼도 웃는 입 웃어도 울어도 웃는 입이라는 이중적 자아 분열, 현실 속의 와 내 안의 슬픈 를 희화화하는 자성적 서사 기법을 취하고 있지요. 대표작이라기보다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시라면 서울 아리랑 연작, ‘광대 일기 연작, ‘나는 빨래예요 연작,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그냥, 학춤, 스피노자의 아이들 같은 작품을 들 수 있겠네요.

 

나의 짝사랑들,

생애를 두고 내게 고개 끄덕여주고 가로저어 줄 영혼의 친구

 

박완호: 선생님의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그런 예술가나 학자, 시인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김추인: 여러 질문항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항목이네요.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킨 존재들이 누구냐하는 것은 다른 말로, ‘너의 끼에 기름을 부어준 예술가 혹은 사상가를 대보라하는 말씀이죠? 늘 저를 설레게 하는 이름들 자코메티나 앙리 루소, 채플린의 작품들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아- 자코메티! - 루소! - 채플린이여! 하게 되지요. 그 외에 라흐마니노프, 네루다, 베이컨, 랭보, 나스레딘 호자, 니체, 스피노자, 우리의 이상(李箱)까지 제 짝사랑들입니다.

 탕- 까마귀 떼 일제히 튕겨 올랐을 크로평원, 형 고흐의 죽음과 동시에 생의 의미를 놓아버린 테오가 생각나네요. 영혼의 친구였던 그들 형제. 생애를 두고 내게 고개 끄덕여주고 가로저어 줄 영혼의 친구는 있는가? 저 자신에게 물어보게 됩니다.

 한 시대를 살았던 이형기 시인은 자주 나는 시인과 시 외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허무주의자다. 내 허무 뒤에는 에밀 시오랑이 버티고 있지. 시인은 1인 공화국이야.”라고 하셨지요. 장 콕토는, 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 화가 숱한 이름으로 불리어도 단 하나 시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지요. “나는 글을 쓸 때는 그림을 그리며 쉬고 그림을 그릴 때는 글을 쓰며 쉰다라고도 했고요. 구스타프 밀러와 여동생 유스티네도 영혼의 친구라 할 만해요. 말러의 작곡을 위해 집 주변의 모든 길을 없애버린 누이,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말이죠. 그리하여 말러의 교향곡들, 세상 어느 작곡가보다 섬세한 영혼의 악곡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지요. 저는 무언가에 미쳐있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이들은 모두 미친 천재들이었거든요.

 

박완호: 그동안 선생님을 만나오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넘치는 참 따뜻한 분이시라는 걸 느꼈어요. 저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고인이 된 분들, 박서원 시인이나 박석수 시인 같은 분들을 대하시는 모습에서는 진한 인간애를 엿보곤 합니다. 두 시인과 관련해서, 그분들의 시를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하시고픈 말씀이 있는지요.

 

김추인: 제가 아는 박서원, 박석수 두 시인의 번득이는 아우라를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두 분 다 자매나 남매처럼 지냈는데, 둘 다 천재성을 지닌 요절 시인이지요. 천재는 세상과의 괴리나 부조리를 참아낼 수가 없는 감수성을 지녔기에 미치지 않으면 요절케 된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김명서 시인까지 다들 그립고 그립습니다. 그들은 평생 몸이 아팠고, 몸보다 더 영혼을 앓는 작은 짐승들이었고, 가난을 단벌옷처럼 몸에 감고 살다 갔지요.

 

박완호: 끝으로 선생님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지요.

 

김추인: 꿈을 놓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꿈을 안고 걷고 걷다 보면 길이 나게 되어있습니다. ‘태양을 겨눈 화살촉은 나무를 겨눈 화살촉보다 멀리 날아간다라는 것 또한 잊지 마시길 바라고요. 저는 제 안의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노마드입니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제 버킷리스트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웃음)

 

박완호: 오랜만에 얼굴을 뵙고, 진지하고도 폭넓은 사유가 담긴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김추인: 저도 완호 시인과 뜻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인사)

 

 

                                                                         - 시사사 2021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