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은 즐겁다/이근화
보이지가 않아서
밥을 먹지 않아서
슬픔과 분노를 풍선처럼 터뜨려서
인간의 공포를 비웃어서
가볍고 고요해서
신발을 신지 않아서
덥거나 춥지 않아서
파편으로
절단되어
움직이므로 이동하기 때문에
먼지와 함께 떠오르고
돌과 함께 가라앉아
여러 나라 말을 동시에 한다
미지의 언어로 울 수가 있다
장롱 속에 우물 속에 골목길에 벽 뒤에
매일 녹는 기분으로
자극적이고 촉촉하므로 격렬하므로
돌연 굳어져서
무엇이나 알 수 있고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창백하다
사랑하지 않으므로 열렬하므로
아침 점심 저녁이 없고
순간과 연속이 하나이므로
귀신들은 즐겁다
⸺계간 《딩아돌하》 2019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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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화 /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칸트의 동물원』『우리들의 진화』『차가운 잠』『내가 무엇을 쓴다 해도』, 동시집 『안녕, 외계인』『콧속의 작은 동물원』, 산문집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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