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밸브 / 안희연

시치 2019. 7. 2. 10:42

밸브 / 안희연


열면 하염없이 쏟아지고

닫으면 꼼짝없이 갇히는 몸을 가졌다

여름 내내 한 일이라고는

바닥과 포옹하는 일, 흥건해지는 일.

그렇다 그렇다의 마음으로 살아도

아니다 아니다의 마음은 잡초처럼 자라난다

매미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혼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수를 피할 길은 없다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할 때에도

몇 방울의 나는 발등 위로 떨어지고

나는 나를 자주 들키는 사람

발끝은 언제나 젖어있다

겨울은 겨울대로 혹독해서 젖은 발을 빠르게 얼리고

도끼를 든 사람이 찾아와 발을 깨뜨리고 가는 꿈을 자주 꾼다

겨울 내내 할 일이라고는

춥다고 말하는 일, 창틀에 내려앉는 눈송이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는 일,

나는 다시 녹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열어도 닫아도 결국 썩어 들어가는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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