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돌에 입 닦고 잠드는 뱀처럼 / 장옥관

시치 2018. 11. 8. 06:33

돌에 입 닦고 잠드는 뱀처럼 / 장옥관

 

 

 

 
  뱀은
  동면에 들어가기 전에 몇 번이나 허물을 벗는다고 해 벗은 허물 머리 부분은 꼭 제가 먹는다지 옛사람들
  그 허물 머리 부분을 거둬 쌀뒤주 아래 두려 했다는 거야


  허물 다 벗은 뱀은 돌에 입을 닦는데,
  입 닦은 돌에 입을 대면 동지섣달 겨우내 밥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모른다는 거야
  배고파보지 못한 사람은 정녕 모를 거라, 그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몸은 염치가 없어


  뱀이 입 닦은 돌 구하려는 건
  다석 선생*처럼 밥 안 먹고도 살 방도 찾자는 게 아니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는 거야 왜 그런 광고도 있었잖아 새해 첫날에 귀엽고 어여쁜 탤런트가 손나발 대고 '부자 되세요오오' 소리치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더라
  부자가 얼마나 좋기에 그 드물다는 뱀 허물이나 입 닦은 돌 구하려는 걸까 뱀이 되고 싶다 그거잖아 뱀이 되어
  늘 축축한 구멍이나 파고 싶다는 거잖아


  하지만 뱀이 돌에 입 닦는 건
  염치없는 입 달래기 위해서가 아닐까 제 머리 허물 먹는 건 잡념 잡풀 속 쓰레기더미 누가 볼까봐 얼른 먹어치우는 것일 테고


  그게 염치를 아는 거지 그래, 나는 뱀이 되고 싶어, 이슬에 몸 씻고 돌에 입 닦는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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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영모(1890-1981) 선생의 호 다석(多夕)은 저녁() 한 끼만 먹어도 많다()는 뜻이다.

 

 

 

             ⸺월간 시인동네2018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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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1987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황금 연못』『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