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死 筆寫

천관(天冠) 외 2편/이대흠

시치 2018. 10. 12. 01:24

천관(天冠) 2편/이대흠
 
 
강으로 간 새들이
강을 물고 돌아오는 저물녘에 차를 마신다
 
막 돋아난 개밥바라기를 보며
별의 뒤편 그늘을 생각하는 동안
 
노을은 바위에 들고
바위는 노을을 새긴다
 
오랜만에 바위와
놀빛처럼 마주 앉은 그대와 나는 말이 없고
 
먼 데 갔다 온 새들이
어둠에 덧칠된다
 
참 멀리 갔구나 싶어도
거기 있고
 
참 멀리 왔구나 싶어도
여기 있다
 
 
 
베릿내에서는 별들이 뿌리를 씻는다
 
 
 
    이 여윈 숲 그늘에 꽃 피어날 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작은 방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서 당신의 무릎을 바라보며 세월이 어떻게 동그란 무늬로 익어가는지 천천히 지켜보다가 달빛 내리는 언덕을 쳐다보며 꽃의 고통과 꽃의 숨결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가만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먼 데 있는 강물은 제 소리를 지우며 흘러가고 베릿내 골짜기에는 지친 별들이 내려와 제 뿌리를 씻을 것이다 그런 날엔 삶의 난간을 겨우 넘어온 당신에게 가장 높은 난간이 별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그래서 살아 있는 새들은 하늘 한 칸 얻어 집을 짓는 것이라고 눈으로 말해주고 싶다
 
    서러운 날들은 입김에 지워지는 성에꽃처럼 잠시 머물 뿐 창을 지우지는 못한다 우리의 삶은 쉬 더러워지는 창이지만 먼지가 끼더라도 눈비를 맞더라도 창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으니 뜨거운 눈물로 서러움을 씻고 맨발로 맨몸으로 꽃 세상을 만드는 저 동백처럼 더 푸르게 울어버리자고 그리하면 어둠에 뿌리내린 별들이 더 빛나듯 울 일 많았던 우리의 눈동자가 더 반짝일 것이라고
 
 
 
당신은 북천(北川)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힘들어도 아파하지는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당신의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사랑을 할 줄만 알아서
무엇이든 다 주고
자신마저 남기지 않는다
 
 
 이대흠

1968년 전남 장흥 출생. 1994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시집 물 속의 불』『상처가 나를 살린다』『눈물 속에는 고래가 산다』『귀가 서럽다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