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해시의 대표주자인 황병승.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그에 대해 " ‘시가 아닌 것’들을 그러모아 ‘시’가 될 때까지 밀고 나간다"고 평했다.
황병승(43)은 한국 시단의 최전위에 서 있다. 그의 시는 일반인에게 난수표와 같다. 당연 그의 작품을 읽어낼 독법을 찾는 작업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그의 시에 이르는 길을 내는 작업이 다양하게 시도됐다.
올 가을호 여러 문예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에 대한 평론을 실었다. 올 5월, 그가 6년 만에 내놓은 시집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을 비롯 그의 시 세계를 집중 조명했다. 2013년 미당문학상 본심에 오른 작품도 대부분 이 시집에 실려 있다.
그의 시는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난해시’ ‘해석 불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황병승과 함께 ‘미래파’의 앞자리에 서있던 시인 김행숙도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서 “황병승의 텍스트는 생과 사의 언덕과 낭떠러지를 오르내리는 호흡처럼 극단적인 자리들로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황병승의 시집을 읽는 일은 숨이 찬다”고 고백했다. 물론 “내가 최고의 문학적 경험으로 꼽는 것은 바로 숨이 차고, 숨이 막히고, 호흡이 바뀌는 것”이라며 칭찬을 덧붙였지만.
김행숙의 말처럼 황병승의 시를 따라가기는 버겁다. 그럼에도 그의 근작에는 독자가 비빌 언덕이 조금씩 생긴 듯하다. 3인칭 위주로 이뤄지던 화법이 1인칭으로 바뀌면서 자기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서정적 색채도 조금씩 스며들었다.

예심위원인 문학평론가 강계숙은 “메타시(시에 관한 시) 등 시인으로서 자신이 집중하고 매달렸던 것에서 자유로워진 듯한 느낌이다. 황병승의 시는 여러 겹의 수수께끼로 만들어진 미로였는데, 시인이 자유로워지며 독자 입장에서는 찾아가기 쉬워진, 짐작하기 쉬워진 미로가 됐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표현대로 그가 ‘실패의 성자’를 자처한 것도 독자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 동력으로 여겨진다.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내일은 프로’ 중)
강계숙은 “거창하거나 거대한 실패가 아니라 매일, 일상에서 실패하는 자의 내면이 시에 들어가면서 공감을 얻는 듯하다”고 말했다.
실패를 자인하면서도 황병승은 자신의 시에 대해 말을 덧대려 하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시로 충분히 이야기했다고 생각한다”가 그의 변(辯)이다.
시인 손택수는 황병승을 가리켜 ‘그는 우리 시의 가려운 등짝이다. 손을 뻗어도 잘 닿지 않는 그의 시는 그늘지고 외롭지만 늘 그리운 시의 뒤란’이라 했다. 그의 신비주의에 가려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지만 감수할 수밖에. 시인이 독자에게 선사한 새로운 순간일 테니.
하현옥 기자
◆황병승=1970년 서울 출생. 2003년 ‘파라21’로 등단.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육체쇼와 전집』. 박인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