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찾은 시의 세계 상처도, 치유도 거기 있네

차주일은 늦깎이 시인이다. 사업에서 실패한 뒤 시와 만났다. 그래서일까. “겉으로 화려한 시보다 속이 큰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차주일(52) 시인은 문단의 ‘야인(野人)’이다. 소위 문단 질서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올 봄에 시 전문지 ‘포지션’을 창간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는 창간사에서 ‘기존의 문예지들은 신인을 추천할 때 작품성보다 문예지에 대한 향후 충성도나 특정 단체의 패권 구축을 우선으로 삼는다’고 꼬집었다. 어떤 외압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차주일의 시 세계 역시 이런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2000년대 이후 등단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과 다른 길을 간다.
예심위원들은 “‘순수서정’과 ‘미래파’로 양분된 가운데 담론의 교집합 안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단단하게 자기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인터뷰를 위해 16일 만난 그는 이런 평가에 대해 담담하게 말했다. “저처럼 주지적이고 겉보다는 의미 쪽에 집중하는 사람이 외로웠던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는 등단부터 독특했다. 어린 시절 ‘문청’ 소리를 듣고 관련 학과에서 공부를 한 뒤, 20~30대에 등단하는 보편적인 코스를 밟지 않았다. 사업에 실패한 후 쫓기듯 산천을 떠돌다가 40대가 돼서야 시를 만났다.
덜컥 시인이 됐으니 밑천도 없었다. 습작한 시가 13편뿐이라 투고를 하지도 못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시를 써야 했다. “제 색채가 워낙 옅다 보니 영향을 받을까 봐 다른 시집은 잘 읽지 않았어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 외에 모든 시간을 시 쓰는 데 집중했어요. 지금도 보면 볼수록 개작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심지어 시집에 실은 시도 개작을 하니까, 욕심이 있는 거죠.”
그의 시에는 거센 풍랑을 겪고 난 어른이 있다. 이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도 있다. 그것은 밑바닥까지 떨어져본 사람에게서 우러나오는 진정성 같은 거다.
예심위원인 허혜정 문학평론가는 “작품이 굉장히 동양철학적이다. 시어에 장식이 많지 않고 토박이 말을 잘 굴리면서 일상 안에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고통이 있지만 그걸 회복하는 치유력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민망해했다. “제 문학을 광고하는 것이 시인의 의무이기도 한데, 저는 소극적인 편이예요. ‘권력’이 스스로 쟁취해서 만들어내는 힘이라면 ‘매력’은 남이 나에게 주는 힘인데, 철저하게 후자를 지향하고 싶어요.”
이번 후보작 중에 ‘장편(掌篇)소설의 여백’이란 시를 보면 그의 가치관을 읽어낼 수 있다. ‘내 얼굴에 여백이 없다. (…)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여백은 타인의 손바닥이 내 어깨를 두들겨 줄 때 확정된다. 그것이 사후의 내 표정이다.’
홀로에 도착하지 못했다
홀로면 보게 되는 땅바닥에, 홀로면 보이는 제 걸음 간격으로, 발자국화석이 찍혀있다 오늘 그의 사연이 내게로 배달되었다 주소지가 내려다보는 발치라는 것, 외로움이 몸을 옮겨 놓는 배달부란 것 알겠는데, 오직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사연만은 풍화된 지 오래다 누가 자기를 버린 겉봉인가? 행방불명인지, 지금도 제자리에서 헤매고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자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를 땅거미가 힐끔댄다 그는 아직도 수취인을 찾지 못해 배달 중이고, 발자국 깊이에 담긴 어둠 한 홉을 읽지 못해 밝은 나는 아직 홀로에 도착하지 못했다